반야심경 개요

반야심경 개요

나무와 까치 2019. 10. 7. 17:59

□ 般若波羅蜜多心經반야바라밀다심경(반야심경) 개요

불교는 석가모니 때에 이미 논리적으로 체계가 갖추어진 종교이며 그렇게 오랜 세월 수많은 경서가 일관되게 저술되어왔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반야심경』은 불교의 원리가 체계적으로 집약되어 있는바 기존의 논리나 용어를 새로이 대체하거나 독창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대단히 제한적이다. 게다가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로 된 원전을 한문으로 번역한 중국 등 동아시아의 불경으로 그 불교의 본의와 실질을 밝혀내고자 하는 데에는 분명 일정한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본서는 이러한 현실에서 전문불교인이 아니더라도 정신적, 심리적인 공부에 관심이 많은 일반의 사람들이 쉽고 간단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그 정신세계와 의식체계, 심리구조 같은 것에 중점을 두고 수행자의 입장에서 그 근본에 접근하고자 노력하였다.

불교 교리의 학술적 의미나 체계적 분류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마음공부를 하는 수행자의 입장에서 무상ㆍ무아에 대한 근본적 의미와 실체, 특히 ‘공空’의 개념과 구조, 그리고 그에 접근하는데 가로놓인 현실적 문제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제거하는 것이 지금에 있어서 가장 현실적 방향이 아닌가 생각된다.

 

 

1. 석가모니釋迦牟尼 소략

석가모니는 불교를 창시한 인도印度의 성자聖者로서 ‘석가釋迦’는 샤키야Sākya라는 민족의 명칭을 한자로 음사한 것이고 ‘모니牟尼(muni)’는 ‘성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석가모니’라 함은 ‘석가 족族(또는 샤키아 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으로 석가모니釋迦牟尼, 석가문釋迦文 등으로 음사되었고 ‘능인적묵能仁寂默’으로 한역되기도 하였다.(출생 BC 563년?-사망 BC 483년?)

석가모니의 원래 성은 고타마(Gautama, 구담瞿曇)이고, 이름은 싯다르타(Siddhārtha, 실달다悉達多)이다. 후에 깨달음을 얻어 붓다(Buddha, 불타佛陀)라 하여 고타마 붓다라고 불리게 되었다.

사찰 등에서는 진리의 체현자體現者라는 의미의 여래如來(Tathāgata), 그리고 존칭으로서 세존世尊(Bhagavat), 석존釋尊, 사주師主 등으로도 불리며, 보통은 부처님 혹은 석가여래, 석존釋尊, 석가釋迦, 불佛, 붓다 등으로 부른다.

옛날 지금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부근인 히말라야산 기슭의 카필라성迦毘羅城(Kapilavastu)을 중심으로 샤키야족(석가족釋迦族)의 작은 나라가 있었다. 석가모니는 그 나라의 왕 슈도다나(Śuddhodāna, 정반왕淨飯王)와 마야부인(Māyā, 마야摩耶) 사이에서 태어났다.

샤키야족은, 왕의 호칭이 정반왕淨飯王으로 번역되고, 정반왕의 동생이 백반白飯ㆍ감로반甘露飯 등으로 불리는 점 등으로 미루어 미작米作 농경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석가모니는 크샤트리아 계급 출신이라고 하나 샤키야 족 내부에 카스트의 구별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으며, 또한 그가 순수한 아리아인人이라는 것도 확실치 않다. 오히려 네팔 계통의 민족에 속하는 종족이라는 추측이 우세한데, 다만 그가 아리아 문화의 영향 하에 있었던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마야부인은 출산이 가까워짐에 따라 당시의 습속대로 친정에 가서 해산하기 위해 고향으로 가던 도중 룸비니 동산에서 석가를 낳았다. 이는 석가모니의 후대 사람인 아소카 왕(아육왕阿育王)이 석가모니의 성지를 순례하면서 이곳에 세웠던 석주石柱가 1896년에 발견되고 해독됨으로써 비로소 확인된 것이다.

그의 생몰연대에 관하여는 이설이 많으나 그 중 유력한 것은 스리랑카의 『도사島史, Dīpavasa』, 『대사大史, Mahāvasa』에 근거하여 불교학자 W. 가이거가 주장한 ‘BC 563년-BC 483년’ 설이다.

이 설은 중국의 『역대삼보기歷代三寶紀』에 전하는 중성점기衆聖點記, 즉 불멸佛滅 후 최초의 율장律藏이 결집되었을 때 제1점을 치기 시작하여 매년 1점씩 쳐서 제齊나라 영명永明 7년(AD 490)까지 975점에 이르렀으므로 불멸이 BC 485년이라는 설(BC 565년-BC 485년)과도 대략 일치된다. 그 외에 BC 624년-BC 544년 설, BC 463년-BC 383년 설 등이 있으나 한국에서는 가이거의 설을 채용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석가모니가 태어났을 때 히말라야산에서 아시타라는 선인仙人이 찾아와 왕자의 상相을 보고 집에 있어 왕위를 계승하면 전 세계를 통일하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이며, 만약 출가하면 반드시 불타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한다.

석가모니는 생후 7일에 어머니 마야부인과 사별하였다. 그 후 이모에 의하여 양육되어 왕족의 교양에 필요한 학문, 기예 등과 전통적인 바라문婆羅門(브라만Brahman의 음역)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고, 당시의 풍습에 따라 16세에 야쇼다라(야수다라耶輸陀羅)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라후라羅睺羅)도 얻었다. 이같이 평안한 생활을 보내던 중 석가모니는 인생의 밑바닥에 잠겨 있는 괴로움의 문제와 직면하게 되는데, 그 내용은 ‘사문유관四門遊觀’의 고사에 잘 나타난다.

석가모니는 29세 때 고苦의 본질 추구와 해탈解脫을 구하고자 처자와 왕자의 지위 등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였다. 그리고 남쪽의 갠지스 강을 건너 마가다 왕국의 왕사성王舍城(Rājagha)으로 갔다. 여기에서 알라라칼라마와 우다카 라마푸타라는 2명의 선인仙人을 차례로 찾아,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ㆍ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이라는 선정禪定을 배웠다.

그것은 일종의 ‘정신통일’에 의하여 하늘에 태어나 보려는 것이었는데 석가모니는 그들의 방법으로써는 생사의 괴로움을 해탈할 수 없다고 깨닫자 그들로부터 떠나 부다가야 부근의 산림으로 들어갔다. 여기에서 그는 당시의 출가자의 풍습이었던 고행苦行에 전념하였으나 신체가 해골처럼 되었어도 해탈을 이룰 수는 없었다. 고행은 육체적인 입장의 극소화를 통하여 정신의 독립을 구하는 이원적 극단론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6년간의 고행 끝에 고행을 중단하고 다시 보리수菩提樹(Bodhi-tree) 아래에 자리를 잡고 깊은 사색에 정진하여 35세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대오성도大悟成道).

이 깨달음을 정각正覺(abhisambodhi)이라고 하며, 그 내용에 대하여 『아함경阿含經』에는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사제四諦ㆍ십이인연十二因緣ㆍ사선삼명四禪三明 등을 깨달았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선정에 의하여 ‘법法(dharma-달마達磨, 여기서는 불법佛法, 진리)’을 깨달았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선정은 그 본질이 마음의 안정과 집중이므로 그로써 생긴 지혜는 신비적 직관直觀이 아니라 본래의 여실지견如實知見(실질을 그대로 보고 앎)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는 성도成道 후 5주간을 보리수 아래에서 해탈의 기쁨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범천梵天의 간절한 권청勸請이 있어 설법을 결심하였다. 석가모니는 베나레스 교외의 녹야원鹿野苑(gadāva)에서 일찍이 고행을 같이 하였던 5명의 수행자에게 고락의 양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와 사제四諦에 관하여 설하였던바 이를 특히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한다. 그들은 모두 법을 깨달아 제자가 되었고, 이로써 최초의 승가僧伽(sagha, 불교교단)가 성립되었다.

이렇게 석가모니는 적극적으로 설법을 계속하여 그 교화의 여행은 갠지스 강 중류의 넓은 지역에까지 미쳤고 제자의 수도 점차 증가하면서 각지에 교단이 조직되었다. 45년간의 긴 세월에 걸쳐 여러 차례의 중병에도 불구하고 혹서의 인도 중부지역 각지를 돌아다니며 설법과 교화敎化여행을 계속하던 석가모니는 80세의 고령에 이른 어느 날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여러 가지 유언을 하였다.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하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하여 수행하라” 그리고 “(자기가 죽은 뒤에) ‘교주敎主의 말은 끝났다. 우리의 교주는 없다’고 생각하여서는 아니 된다. 내가 설한 교법敎法과 계율이 내가 죽은 후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등이 그것이다.

마침내 쿠시나가라(Kuśinagara)의 숲에 이르렀을 때, 석가모니는 심한 식중독을 일으켜 기력이 쇠진하였다. “나는 피로하구나. 이 두 사라수沙羅樹 사이에 머리가 북쪽으로 향하게 자리를 깔도록 하라”고 말하자 제자들은 석가모니의 운명이 가까웠음을 알고 눈물을 흘렸다.

석가모니는 “슬퍼하지 마라. 내가 언제나 말하지 않았느냐. 사랑하는 모든

것은 곧 헤어지지 않으면 아니 되느니라. 제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말하리라. 제행諸行은 필히 멸하여 없어지는 무상법無常法이니라. 그대들은 중단 없이 정진하라.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니라.”라고 설한 후 눈을 감았다.

석가모니의 유해는 다비茶毘(화장)되고, 그 유골(śarīra, 사리舍利)은 중부 인도의 8부족에게 분배되어 사리탑에 분장分藏되었다. 이후 이 사리탑은 중요한 예배대상으로 되어 나중에 불탑신앙으로 발전하게 된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아함경』, 『율장』 등의 원시불교 경전을 통해 전하여지고 있는데, 이는 구전口傳되어 오던 것을 후세에서 편집한 것으로 정형화된 교설을 통하여 그 가르침의 원형 혹은 핵심을 알 수가 있다. 즉, 삼법인三法印ㆍ사제四諦ㆍ팔정도八正道ㆍ무기無記(외도, 즉 일체의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답하지 않음)ㆍ법法ㆍ오온五蘊ㆍ육근六根ㆍ연기緣起ㆍ열반涅槃ㆍ일체중생의 평등 등이 그것이다.

그의 탄생지 룸비니 동산, 성도지 부다가야, 최초의 설법지 녹야원(사르나트), 입멸지 쿠시나가라는 4대 영지靈地로서 중요한 순례지가 되고 있다. 석가모니의 탄생ㆍ성도ㆍ입멸의 시기에 관한 정확한 기록이 문헌에는 없으나 중국, 한국 등지에서는 탄생을 4월 8일, 성도를 12월 8일, 입멸을 2월 15일로 하고 있다. 또한 남방불교에서는 탄생ㆍ성도ㆍ입멸이 모두 바이샤카 월(Vaiśākha月, 곧 4∼5월)의 보름날이라 하여 이 날에 성대하게 기념식을 봉행한다.

<사선四禪: 색계色界에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네 단계의 선정禪定으로 사선정四禪定, 사정려四靜慮 등으로 말하기도 한다.

1. 초선初禪: 모든 탐욕과 악을 여의고 개괄적으로 사유하는 마음작용(각覺)과 세밀하게 고찰하는 마음작용(관觀) 그리고 욕계를 떠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선정으로, 곧 대상을 명료하게 관조하여 탐욕을 떠나는 관선觀禪이다.

2. 제2선第二禪: 개괄적으로 사유하는 마음작용과 세밀하게 고찰하는 마음작용이 소멸되고 마음이 청정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는 선정으로, 곧 청정한 지혜로써 번뇌를 점점 정화시키는 연선練禪이다.

3. 제3선第三禪: 기쁨을 소멸하여 마음이 평온하며 몸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선정으로, 곧 모든 선정을 스며들게 하고 성숙시켜 걸림 없는 경지에 이르는 훈선熏禪이다.

4. 제4선第四禪: 즐거움과 괴로움이 소멸되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마음이 평온하여 생각이 청정한 선정으로, 곧 모든 경지를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수선修禪을 말한다. 4선은 선정禪定ㆍ삼매三昧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선에 의해 맑아진 마음 상태에서 세 가지 지혜, 즉 삼명三明을 얻고 성불하게 되는 것이다.>

<삼명三明: 삼명은 인생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여실지견如實智見을 뜻한다. 붓다나 아라한阿羅漢이 업보와 윤회, 번뇌를 정확하게 알고 벗어날 수 있는 세 가지의 자유자재한 지혜로서 숙명지명宿命智明ㆍ천안지명天眼智明ㆍ누진지명漏盡智明을 말하며 숙명통宿命通ㆍ천안통天眼通ㆍ누진통漏盡通이라고도 한다. 지명智明이란 전생을 보고, 내생을 보고, 현생에서 번뇌를 모두 끊을 수 있는 지혜의 밝음을 뜻하며, 삼명은 3달三達 또는 3증법三證法이라고도 한다.

삼명三明이라는 용어는 원래 브라만교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3베다, 즉 리그베다ㆍ사마베다ㆍ야주르베다를 아는 지혜를 말하는데, 붓다가 이를 차용하여 번뇌를 제거하는 지혜로 사용함으로써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초기 불교 경전에 의하면 붓다는 삼명으로 정각正覺을 성취하였다. 세 가지의 밝음을 순차적으로 증득하고 정각을 이루었는바, 초야에 자신의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인 숙명지를 성취하였고, 중야에 중생의 생사를 볼 수 있는 천안지를, 후야에 번뇌의 소멸을 이룰 수 있는 누진지를 성취하여 성불하였다. 삼명은 사선四禪에 의하여 발생하는데, 4선을 순차적으로 증득하여 마지막 제4선에서 삼명을 성취하게 된다.

1. 숙명지명宿命智明: 나와 다른 사람의 전생을 환히 아는 지혜이다.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상세하게 알 수 있다.

2. 천안지명天眼智明(또는 생사지증명生死智證明): 나와 다른 사람의 미래의 생사와 과보를 분명하게 아는 지혜를 말한다. 중생의 생사와 귀천, 선악 등을 환하게 볼 수 있다.

3. 누진지명漏盡智明: 번뇌를 모두 끊어내고 열반의 이치를 깨달아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지혜이다. 불교는 괴로움의 소멸을 목표로 하는바 최고의 통찰은 삶의 속박을 벗어나는 능력으로서 누진지가 가장 중요시 된다.

신라의 승려 원측圓測은 그의 저서 『인왕경소仁王經疏』에서 숙명지를 전생을 아는 지혜로, 천안지를 내생을 아는 지혜로, 누진지를 열반을 아는 지혜로 주석하고 있다.>

<삼법인三法印: 불교의 근본교리를 이루는 세 가지 진리를 말한다. ‘인印’이란 인신印信, 표장標章, 인장印章의 뜻으로 일정불변하는 진리를 말하며, ‘법인法印’은 ‘법의 표지’ 또는 ‘불법의 특성’을 의미한다. 법인사상은 석가모니의 정각正覺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어느 불경이든 법인사상에 합치되면 이를 석가모니의 진설眞說이라 인정하고, 만약 법인사상에 어긋나면 이를 바른 불설佛說이 아니라고 판정하였다.

삼법인三法印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ㆍ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ㆍ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을 말하며, 이 세 가지 법으로써 부처의 말씀과 마군魔軍의 말을 관장하는 인印으로 삼는다. 이상의 세 가지에 일체개고인一切皆苦印을 더하면 사법인이 된다.

대부분의 경전에서 사법인을 무상ㆍ고ㆍ무아ㆍ열반의 순으로 열거하고 있다. 원시경전에는 일반적으로 삼법인 또는 사법인을 체계화시킨 설은 없지만 무상ㆍ고ㆍ무아에 관해서는 많은 경전에서 설하고 있다. 이를 유위有爲의 삼상三相이라고 하는데, 이 유위를 벗어남으로써 열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상 네 가지로 사법인의 교설이 성립되게 된 것이다.

1.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온갖 물物ㆍ심心의 현상은 모두 생멸변화生滅變化하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이것을 불변ㆍ상존한다는 것으로 그릇된 견해를 가지므로 이를 없애기 위하여 ‘무상’을 말한다.

‘제행’이란 생멸변화하는 일체의 형상법을 가리키며, 유위有爲와 같은 뜻이다. 모든 현상은 잠시도 정지하지 않고 생멸변화하므로 제행무상이라 한다. 제행이 무상하다는 것은 눈앞의 사실로서 누구나 경험하고 있는 것이며 특별한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법인 중에는 제행무상을 가장 앞에 두게 된 것이다.

무상하기 때문에 슬픈 일도 생기지만 무상하기 때문에 불행을 행복으로 돌릴 수도 있다. 고뇌를 해소하고 불완전한 것을 완전한 것으로 이끄는 종교의 가르침이 설해지는 것도 제행무상이라는 기본적인 진리가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 무상의 체득을 위한 실천행법을 불교에서는 무상관無常觀이라고 한다. 무상관이 설해지는 의의는 첫째로, 부모 형제나 이웃의 죽음에 의해 세상의 무상함을 느끼고 종교심을 일으키게 되기 때문이다. 부족함이 있을 때 자기반성을 하게 되고, 그 반성에 의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바른 눈이 트이며, 자기와 세상과의 결합관계를 알게 됨으로써 종교심이 움트는 것이다. 둘째로, 무상을 생각함으로써 집착이나 교만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사물을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는, 무상관에 의해 소박한 마음이 되어 시간을 아끼며 근검정진하게 된다.

2.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현상계에 존재하는) 만유의 모든 법은 인연으로 생긴 것이어서 실로 자아인 실체가 없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아我에 집착하는 그릇된 견해를 가지므로 이를 없애 주기 위하여 ‘무아’를 말한다.

‘제법’의 ‘법’은 무아성無我性의 어떤 것을 말하며, ‘제법’은 ‘제행’과 마찬가지로 현상으로서 일체법을 뜻한다. 여기서 ‘아我’는 스스로 존재하는 어떤 것, 즉 생멸변화를 벗어난 영원불멸의 실체 또는 그 본체를 의미하는바, ‘무아’는 ‘내가 없음’ 혹은 ‘나 스스로가 아님’의 가리킨다.

여기서 ‘영원불멸의 실체’ 혹은 ‘본체’는 경험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다. 그 때문에 불교에서는 ‘무기無記’라 하여 수행이나 해탈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문제로 삼는 것을 금하였다. 석가모니 당시의 인도 종교들은 모두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영원한 존재로서의 본체를 인정하여 우주적인 실체를 범梵(brahman)이라 하고 개인적인 실체를 아我(atman)라 하였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를 인식할 수도 없고 그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는 것이라 하여 무기無記라고 한다.

3.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 불교의 이상理想은 곧 열반적정이다. ‘열반’은 ‘취멸吹滅’ 또는 ‘적멸寂滅’을 말하는바, 번뇌의 불을 불어서 끄는 것이고 모든 번뇌가 사라져 고요한 상태이다. 열반적정인은 생사가 윤회輪廻하는 고통에서 벗어난 이상의 경지인 열반적정의 진상을 말한다.

4. 일체개고인一切皆苦印: 위의 삼법인에 더하여 사법인을 이루는 일체개고는 일체고행一切苦行 또는 제행개고諸行皆苦라고도 한다. 즉, 일체의 현상법이 고苦임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모든 현상법이 무상하기 때문에 고라고 한 것이다.

제행무상과 제법무아의 명제는 부정할 수 없는 진리로 받아들여졌지만 일체개고의 명제는 무조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상계는 고뿐만 아니라 낙도 있고 불고불락不苦不樂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고苦苦ㆍ괴고壞苦ㆍ행고行苦의 3고苦 가운데 일체개고에 해당하는 것은 행고뿐이라고 보았다.

‘행고’란 현상의 모든 법을 고라고 한 것으로 현상의 법을 반드시 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불교적인 사고방식에 의하면 삼계육도三界六道의 윤회輪廻와 미혹의 생활 자체가 고일 수밖에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체개고는 미혹한 범부에게만 해당되며 미혹이 잔존하는 이상은 일체의 현상이 모두 고라고 보고 있다.

일체개고를 법인으로 설정한 까닭은 현실의 고와 무상과 부정 등을 관찰하여 현실의 고뇌를 벗어나서 안락한 이상의 경지를 얻게 하기 위한 것이다.>

 

2. 『반야심경』 요약

『반야심경』은 600권에 이르는 『대반야경』의 핵심부분(「학관품學觀品」)을 260자로 압축하여 편찬한 책으로 온전한 명칭은 『반야바라밀다심경』이며, 중생의 수행부터 부처의 수행까지 전 과정을 축약하여 대승불교 반야사상般若思想의 정수를 그대로 담고 있다.

『대반야경』은 대승반야 계통의 경전을 모두 망라하고 있으며 『금강반야바라밀경(약칭 금강경)』도 여기에 포함된다. 정식명칭은 『대반야바라밀다경』으로 기원전 1세기경 인도의 남부지방에서 처음 모습을 나타내어 인도서부와 북부로 전파되었고, 이후 중국에 들어와 당나라의 현장법사 등이 한자로 번역하였으며, 지금도 다수의 산스크리트어본(범본)이 남아있다.

『반야심경』의 유통본에는 비교적 짧은 약본略本과 상대적으로 긴 광본廣本 두 가지가 있으며 그 중 앞선 시기로 보이는 약본에도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중국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때 후진後秦의 구마라집鳩摩羅什(344년-413년, 약칭 나집羅什)이 번역한 『마하반야바라밀다대명주경(402년-412년)』이고, 다른 하나는 수ㆍ당 때의 승려 현장玄奘(602년-664년)이 번역한 『반야바라밀다심경(649년)』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원전을 한자로 번역한 『반야심경』은 현장玄奘의 번역본이 그 중 가장 많이 읽히고 있으며, 불교의 모든 경전 중 가장 짧은 것으로 한국불교의 모든 의식儀式 때 반드시 독송되고 있다.

『반야심경』은 ‘크나큰 지혜의 피안에 이르는 마음의 경전(또는 핵심 경전)’ 정도의 의미이며, 그 중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일체의) 현상은 공하(여 실체가 없)다. 공하(여 실체가 없)는 그것이 곧 현상인 것이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구절이다. 이의 산스크리트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일체의) 현상에는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으므로 현상일 수가 있다.’가 된다. 일체의 ‘색’은 본질적으로 자성自性이 없는 가상假相이며 허상虛像이고, 그 가상과 허상이 곧 현실에서 일체의 현상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반야심경』의 중심 사상은 ‘무상無常’, ‘고苦’, ‘공空’, ‘무아無我’이며, 그 중에서도 사상적으로 핵심이 되는 것이 ‘공’이다. 사제四諦ㆍ팔정도八正道ㆍ오온五蘊ㆍ십팔경계十八境界ㆍ십이연기十二緣起 그리고 지智와 득得, 일체의 관념과 현상, 객관적 존재는 본질적인 관점에서 ‘空’이라한다. 즉, 일체의 사물이나 현상은 모두 여러 조건들이 모여서 형성된 것이므로 그 조건이 변하게 되면 따라서 그 현상도 변하는 것인바 본래의 진정한 실체는 없다는 것이 ‘空’이다.

또한, 궁극으로는 空한 그것도 또한 空하여 결국 진공眞空에 이르고, 그로써 각행원만覺行圓滿의 무상정등정각(마음과 법이 모두 진실과 평등하여 더 이상 깨달을 바가 없는 경지)을 얻을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 구경열반의 불도佛道(부처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은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물체의 자성自性이 空하다는 것으로, 그 공성空性 혹은 공상空相을 말한다. ‘공’ 역시 하나의 실상이며 분명한 본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공’의 개념은 ‘색’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현재 알려지고 있는 이 경에 대한 한국인의 주석서로는 신라시대 원측圓測(613년-696년)의 『반야심경소般若心經疏』 1권과 『반야바라밀다심경찬般若波羅蜜多心經贊』 1권, 원효元曉의 『반야심경소』 1권, 태현太賢의 『반야심경고적기般若心經古迹記』 1권과 『반야심경주般若心經註』 2권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현존 본은 원측의 『반야심경소』 1권 뿐이며, 원효의 『반야심경소』는 최근에 복원되었다.

판본版本으로는 고려대장경의 반야부에 있는 것이 대표적이며, 번역된 것으로는 1463년(세조 9년)에 한계희韓繼禧 등이 왕명에 의해 번역하여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간행한 『반야바라밀다심경언해般若波羅蜜多心經諺解』 1권 1책이 알려져 있다.

 

 

3. 경전 전문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사리자여!)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오묘한 참 지혜)의 바라밀다를 수행하면서, 오온이 모두 공한 것임을 (본래의 청정한 마음으로) 비추어보고 온갖 고통과 재액을 (타파하여) 건넜느니라.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여! 색(일체의 현상)이 공(실체가 없음)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느니라. 색이 곧 공 이것이고 공이 곧 색 이것인 것이다. (명온으로서) 수ㆍ상ㆍ행ㆍ식 역시 (근본적으로 색온과 같이 동일한 양상으로) 반복되느니, 이와 같다.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여! 이 모든 법은 공의 모습이니 (그로써 세상 만물은 본래) 불생불멸하고(생성도 소멸도 하지 않고) 불구부정하며(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부증불감하느니라(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의식계

意識界

이러하므로 공상空相(공성空性, 곧 공의 성질) 가운데에는 색온(일체의 물질적 현상)이 없고, 수온(감수感受작용)ㆍ상온(상념想念이나 단편적 생각)ㆍ행온(의식意識과 의지意志작용)ㆍ식온(분별分別이나 인식認識작용)의 사온(일체의 심리적 현상)도 없다.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의 6근)도 없으며,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의 6경)도 없다(곧, 12처도 없다). (18계의 첫 번째 요소인) 안계가 없고 그로부터 (18계의 마지막 요소인) 의식계까지도 (일체가 공성이라) 없다.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유전연기 십이연기의 첫 번째 지분인) 무명도 없고 (환멸연기 십이연기의 첫 번째 지분인) 무명의 멸함도 역시 없으며, 그로부터 (유전연기 십이연기의 마지막 지분인) 노사도 없고 (환멸연기 십이연기의 마지막 지분인) 노사의 멸함까지도 역시 없다.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성문승이 추구하는 경지로서) 고ㆍ집ㆍ멸ㆍ도(의 사제)도 없으며, (또한, 보살의 수행에 있어서) 지혜도 없고 (더 이상의) 증득할 것도 역시 없다.

 

이무소득 고보리살반야바라밀다 고심무괘애 무괘애고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以無所得 故菩提薩埵依般若波羅蜜多 故心無罣碍 無罣碍故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그렇게 달리 무엇을) 얻을 것이 없는바 그 때문에 (이러한 경지의)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큰 지혜의 피안에 다다름)에 의거한다. 그러므로 마음에 괘애(근심과 장애)가 없고, 괘애가 없으므로 공포(무섭고 두려움)가 없으며, 전도몽상을 영원히 멀리하여 저 끝의 (지극한) 열반(대열반, 성불)을 궁구하는 것이다.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 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도 『반야바라밀다(참 지혜의 피안에 다다름)』에 의거한다. 그리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상정등정각)를 체득하노라.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그리하여 아노니, 반야바라밀다는 바로 크게 신묘한 주문이며, 크게 밝은 주문이며, 보다 더 이상의 것이 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으로 일체의 괴로움을 없앨 수 있고 진실하여 허상이 아닌 것임을 (아느니라).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故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그리하여 (지금까지 드러나게) 반야바라밀다 주문(의 묘법)을 설하였던 것을 이제 (은밀하게) 주문으로 설하여 말한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가세, 가세 (진리의) 피안에 가세. 피안으로 모두가 다 함께 (진리에) 가세. (간절히 원하며) 깨달음에 정성을 다하리로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揭提揭提 波羅揭提 波羅僧揭提 菩提裟婆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