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제6장
제6장. 현빈玄牝
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면면약존 용지불근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곡신은 죽지 않느니 이를 일컬어 현빈이라 한다. 현빈의 문, 그것을 천지의 근본이라 일컫는다. (그것은) 실처럼 면면히 이어져 존재하며 그 작용은 부지런하지 않다.
[注] 谷神不死: ‘谷’은 골짜기이며, ‘神’은 (대자연으로서) 골짜기의 천연한 생명력을 말한다. ‘谷神’은 텅 빈 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늘 낮은 곳으로 흐르며 한없이 이어지는 골짜기(谷)의 천연한 속성과 그 생명력을 말한다.
神: ‘神’이란 본래 상제上帝(또는 천제天帝)의 사자使者를 뜻하는 글자로서 바람이나 비, 번개, 큰 산과 강과 호수, 계곡 등처럼 대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자연물을 지칭하였다. 이는 특별한 동식물이나 거대한 자연물을 하늘로부터 특별한 생명력을 부여받은 독립적 유기체로 보는 관점이며, 그 독립적 생명활동을 주관하는 ‘대자연의 신성한 정기精氣(곧 신령神靈)’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에 있어서 그것은 곧 천연한 그대로의 정신精神이며, 맑고 순수한 성품性品(천성天性)이자 영靈(영혼靈魂)인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신神을 정신精神이라 하고, 죽어서는 그것을 영靈이라 한다. 즉,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다가 죽어서 내가 왔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영혼靈魂(상나라 때 왕조의 선대 조상의 영혼은 귀鬼)인 것이다.
『노자』나 『주역(십익)』, 『논어』 등에서 ‘神’은 대체로 천지대자연처럼 천연한 정신 곧 지극히 맑고 순수한 정신을 의미하며, 그로부터 성인의 지극한 정신이나 청정淸靜한 정신精神 등으로 사용된다. 이는 오늘날 한의학의 교과서로 통하는 『동의보감(허준)』이나 한의학에서 쓰고 있는 정精, 기氣, 신神, 정기精氣 등의 개념과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精: 제21,55장)(氣: 제10,42,55장)(神: 제6,29,39,60장)(命: 제16,51장)(靈: 제39장)(魄: 제10장)(鬼: 제60장)
是謂玄牝: 여기서 ‘玄’은 가마득하고 아득함이며, ‘玄牝’은 가마득하고 아득한 암컷이다. 텅 빈 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늘 낮은 곳에 처하며 한없이 이어지는 골짜기(谷)의 속성을 ‘가마득한 암컷(현빈玄牝)’이라 표현하며 천지만물을 낳아서 먹이고 기르면서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도道’의 모성적 특성에 비유한 것이다.
(玄: 제1,6,10,15,51,56,65장)(牝: 제6,55,61)(牡: 제55,61장)(雌: 제10,28장)(雄: 제28장)(配: 제68장)(母: 제1,20,25,52,59장)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玄牝之門’은 가마득한 암컷의 문. 그것은 텅 빈 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늘 낮은 곳에 처하며 한없이 이어지는 골짜기의 본성(玄牝)과 통하는 문이며, 이를 노자는 ‘도의 근본’이라 하였다. 결국, 텅 빈 채 늘 낮은 곳을 흐르며 한없이 이어지는 골짜기의 본성을 ‘현빈’이라 하였고, 그 ‘현빈의 문’이 곧 道로 통하는 문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天地根’은 천지의 뿌리, 곧 천지만물을 생성하고 되돌리며 또 품어 안는 실체로서 ‘道’의 근본을 일컫는다.
綿綿若存 用之不勤: (天地根, 즉 천지의 근본으로서 도는) 실처럼 면면히 이어져 존재하며 그 작용은 부지런하지 않다. 여기서 ‘勤’은 쉬지 않고 부지런히 애씀, 즉 쉼 없이 바쁨이다.
도는 담담하여 아무 맛이 없으며, 보아서 완전하게 볼 수 없고 충분히 들을 수도 가질 수도 없다. 도의 작용은 미약한 듯하며 흡족하지도 않고 부지런하지도 않다. 도는 인간이 사사로이 도구나 기술처럼 명리를 위해 소유하거나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道는 무한한 섭리에 의하여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독립적으로 지극히 크고 심원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제6장 用之不勤, 제35장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旣, 제40장 弱者道之用, 제25장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참고) 귀鬼와 신神: 고대 상商나라(은殷나라의 본명) 때의 갑골문 등에서 ‘鬼’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뜻하는데, 이는 원래 상왕조가 성립되기 이전의 선대 조상이나 왕조의 선왕들을 의미하였던 것이다. 그 ‘鬼’ 중에서도 왕해王亥, 왕긍王亘, 상갑미上甲微 등을 ‘제帝’라 하였으며, 특히 시조인 설契(또는 설卨, 현왕玄王)을 ‘상제上帝’라 하였다.
상商 대의 갑골문에 나오는 ‘神’의 초기문자는 번개를 형상화한 ‘신申’인데, 풍백風伯, 우사雨師 등 上帝의 사자신使者神과 하河, 악岳 등의 자연신이 이에 해당한다. ‘상제’는 이러한 신을 포함한 백신百神을 거느렸다고 하는바 우주의 모든 신神 중에서 최고 으뜸신이 상제이다(갑골문ㆍ금문 및 『한자의 세계(시라카와 시즈카)』 참고).
이처럼 ‘鬼神’은 상왕조의 조상과 선왕을 뜻하는 ‘鬼’와 풍백, 우사, 하, 악 등의 百神을 뜻하는 ‘神’을 포괄하는 의미이다. ‘鬼神’이라는 용어에서 ‘鬼’자가 ‘神’자보다 앞자리에 위치하는데 이를 음양의 순서에 따른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으나 먼저 문자의 어원에서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찾을 수가 있다.(『논어』 ‘태백泰伯’편 제8-21장 ‘(禹)而致孝乎鬼神’ 및 ‘선진先進’편 제11-11장 ‘季路問事鬼神’의 鬼神 용례 참고)
‘鬼’와 ‘神’이 합쳐진 ‘귀신’은 상제와 상제가 부리는 우주의 백신을 포괄하는 말로서 결국은 상제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상나라가 멸망하고 주周왕조가 들어서면서 ‘上帝’는 ‘天帝’ 또는 ‘天神’의 개념으로 바뀐다. 말하자면 당시에는 ‘귀신’과 ‘상제’, ‘천제’, ‘천신’ 등이 동의어로 함께 쓰였던 것이다.
상나라 때부터 서주 무렵까지의 神은 帝(곧, 鬼)의 사자使者였으므로 당시로서는 鬼와 神이 ‘鬼神’이라는 하나의 일반명사로 쓰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으며, ‘神’이란 곧 상제의 사자로서 천연한 생명력을 지닌 거대한 자연물을 의미하였던 것이다. 사실, 주나라 초기에 지어진 『주역』의 경문에는 ‘鬼’와 ‘帝’란 말은 나오는데 ‘神’이나 ‘鬼神’이란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주역』에서 ‘神’이나 ‘鬼神’이란 글자가 나타나는 시기는 공자가 지었다는 「십익」 이후부터이다. 이는 결국 『주역』의 64괘에 괘사와 효사가 붙여질 당시인 주나라 초기까지도 ‘鬼神’은 상제와 그 사자신, 즉 상제의 존재 그 자체였던 것으로 神의 위상이나 영향이 鬼에 비교될 바가 아니었다는 의미일 수가 있는 것이다.
이후 ‘鬼神’의 본래 의미는 주로 상제, 천제, 천신 등으로 남게 되고, 귀신이라는 용어는 사악한 이족異族의 神이나 제 잡신을 망라하는 의미로 변전하게 된다. 소위 물귀신이나 몽달귀신, 달걀귀신, 도깨비 같은 것들은 그렇게 귀신이 토속화하고 미신화한 것이다.
주나라가 창업될 당시에는 천제(곧 귀와 신)가 우주를 지배하는 주체로 숭앙되던 시기였던바 그러한 귀신(곧 천제)과 직접 소통하는 사람인 왕王이나 그 아래 제후들이 천하를 지배하는 지도자였다. 왕은 당연히 ‘天子(天帝의 아들)’로서 천하에 존귀한 존재이며, 천하의 모든 神 가운데 으뜸 神인 것이다.≫]
[章注] ‘현빈의 문’이란 곧 천지의 근본인 도로 통하는 문이며, 이야말로 도에 다가가는 요체이다.
본장에서는 왕필과 「하상공장구」의 주석이 서로 전혀 다르다. 왕필은 원문 谷神不死에 대하여 ‘谷神 谷中央無者也<곡신이란 골짜기 가운데가 無(없음)인 것이다.>’라고 주석하며 谷에 無의 개념을 적용하고 있다.
한편, ‘하상공’은 본장 전체를 신선사상에 의한 仙道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원문 谷神不死에 대하여 ‘하상공’은 ‘谷 養也 人能養神則不死 神謂五臟之神也 肝臟魂 肺臟魄 心臟神 脾臟意 腎臟精與志 五臟盡傷 則五神去<‘곡’은 ‘기른다’는 뜻이다. 사람은 神을 기르면 죽지 않는다. 신은 오장의 神이다. 간장에는 혼이 있고, 폐장은 백, 심장은 정신, 비장은 생각, 신장에는 정과 의지가 있다. 오장이 모두 손상되면 곧 다섯 신은 떠난다.>’라고 주석한다.
여기서 ‘五臟之神’이란 사람의 간장ㆍ폐장ㆍ심장ㆍ비장ㆍ신장의 다섯 주요 장기에는 각각 그 장기 고유의 기능을 담당하는 생명력이 있다고 보아 이들 맑은 생명의 기운을 오장의 신이라 하는데, 이는 『노자』원문이나 왕필 등의 주석에는 없는 「하상공장구」만의 독특한 개념이다.
또, 원문 是謂玄牝에서는 ‘言不死之道 在於玄牝 玄天也 於人爲鼻 牝地也 於人爲口 天食人以五氣 從鼻入藏於心 五氣輕微 爲精神聰明 音聲五性 其鬼曰魂 魂者雄也 主出入人鼻 與天道通 故鼻爲玄也 地食人以五味 從口入藏於胃 五味濁辱 爲形骸骨肉 血脉六情 其鬼曰魄 魄雌也 出入於口 與地通 故口爲牝也<불사의 도는 현과 빈에 있다는 말이다. 현은 하늘이며, 사람에 있어서는 코가 이에 해당한다. 빈은 땅인데, 사람에 있어서는 입이 이에 해당한다. 하늘은 사람에게 오기를 먹이며, 오기는 코를 통해 심장에 저장된다. 오기는 가볍고 미세하여 정신의 총명이 되고, 음성의 오성이 된다.
그 귀신을 혼이라 하는데, 혼은 수컷이고 그것은 주로 사람의 코로 출입하며 하늘의 도와 통한다. 그러므로 코는 현이 된다.
땅은 사람에게 오미를 먹이며, 오미는 입을 통해 위에 저장된다. 오미는 혼탁한 것으로서 몸체의 골육이 되고, 혈맥의 육정이 된다. 그 귀신을 백이라 하는데, 백은 암컷이고 그것은 입을 통해 출입하며 땅과 교통한다. 그러므로 입은 빈이 된다.>’라고 주석하며, 선도의 개념인 양생론으로 풀이한다.
여기의 음성 오성은 궁ㆍ상ㆍ각ㆍ치ㆍ우의 오성으로 맑은 자연 본성의 소리를 의미하며, 혈맥 육정은 희ㆍ로ㆍ애ㆍ락ㆍ애ㆍ오의 육정을 말하여 탁한 육감의 성정을 뜻한다.
‘하상공’은 또, 원문 玄牝之門 是謂天地之根에서 ‘根 元也 言鼻口之門乃是通天地之元氣所從往來<근은 本元(근원)을 뜻한다. 코와 입의 문(콧구멍과 입구멍)은 곧 천지의 원기가 가고 오는 곳(즉, 도의 본원)과 통한다는 말이다.>’라고 주석하여 ‘콧구멍과 입구멍은 곧 천지의 근본이라 한다.’라고 풀이하는데, 여기서 ‘元’은 선도의 개념인 ‘元神’을, ‘從往來’는 ‘도의 뜻에 따라 가고 옴’을 말한다.
원문 綿綿若存에서는 ‘鼻口呼吸喘息 當綿綿微妙 若可存 復若可無有<코와 입으로 호흡(깊고 고요한 호흡으로 정기를 축적)하고 천식(거센 숨으로 신체를 단련)하므로 그 미묘함이 끊임없어 마치 존재하는 듯 한편으로는 없는 듯하다.>’라고 주석하는데, 여기의 ‘呼吸喘息’은 ‘정신을 기르고 신체를 튼실하게 한다.’는 의미가 된다.
원문 用之不勤은 ‘用氣當寬舒 不當爲急疾勤勞<기운을 사용함(운기運氣)에 있어서는 마땅히 느긋하고 서서히 하며, 급작하게 애써 힘들여 하지 않는다.>’라고 주석하여 ‘(기를) 사용함에 있어서 급하게 애쓰지 않고 고요히 자연스럽게 한다.’라고 풀이한다. 이상과 같이 ‘하상공’은 본장 전체를 양생론이나 仙道수련과 관련하여 풀이하고 있다.
도를 가까이하기 위한 몸을 기르는 섭생이라면 당연히 필요하겠으나, 養生과 運氣로써 도통을 이루고 스스로 道를 행하여 장생불사할 수 있다는 관점은 노자의 개념이 아니다.
이러한 ‘하상공’의 해석은 노자의 원의를 연구하여 온전히 따르고자하기보다는 『노자』에 가탁하여 仙道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모습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