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11장~20장)

노자 도덕경 제11장

나무와 까치 2013. 6. 3. 07:49

제11장. 무지용無之用

 

 

 

삼십복공일곡 당기무유차지용 연식이위기 당기무유기지용 착호유이위실 당

三十輻共一轂 當其無有車之用 埏埴以爲器 當其無有器之用 鑿戶牖以爲室 當

기무유실지용 고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

其無有室之用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서른 개의 바퀴살을 하나의 바퀴살통에 함께 모은다. 당장 수레가 없으므로 (지금 만든) 그 수레를 사용한다. 점토를 이겨 그릇을 만든다. 당장 (미리 만들어 저장해둔) 그릇이 없으므로 (지금 만든 그) 그릇을 사용한다. 방문과 창틀을 깎아 방을 만든다. 당장 (만들어 놓은) 방이 없으므로 그 방을 사용한다. 그 이유는 (많은 양을 미리 만들어 저장하고) 있음으로써 (사사로운) 이득을 짓게 되며, 없음으로써 (실용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 三十輻共一轂: 30개의 바퀴살을 하나의 바퀴살통에 함께 가지런히 모으는 일은 바퀴를 제작한다는 의미이며, 바퀴를 제작함은 곧 수레의 제작을 가리킨다.

여기의 ‘一’은 ‘하나’ 혹은 ‘한 곳’을 의미하는 숫자로서 명사이며, 바퀴살이 30개인 것에 대하여는 1달의 날 수가 30이란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등 여러 설이 있으나 바퀴의 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숫자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당시의 상황에서 권력자를 위한 기능과 의례적 명분이 잘 갖춰진 최고급 바퀴로 보이며, 실제로 진시황의 무덤에서 발견된 동거銅車의 바퀴살 숫자가 30개인 것이 확인되고 있다.

 

- 當其無有車之用: 당장 (기존에 만들어 쌓아둔) 수레가 없어 (지금 만든) 그 수레를 사용한다. 임금이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의 재화를 미리 대량으로 만든다는 것은 백성의 일상을 위해서라기보다 그로써 재리財利를 지어 부귀권세와 사치향락의 욕망을 채우고자함인바 생활용품이 필요하면 그때그때 조달하여 쓰는 것이 검소함의 첫째인 것이다.

여기서 바퀴ㆍ그릇ㆍ방은 의ㆍ식ㆍ주의 기본이 되는 일상의 생활용품이다. ‘當其無有’의 ‘無’는 사물의 유무, 즉 ‘있다ㆍ없다’를 나타내는 단순 수식어로서, 당장에 바퀴나 그릇, 방 등의 가용물품이 없다는 의미이다.

한편, 왕필이나 ‘하상공’은 여기의 ‘無’를 ‘허虛’나 ‘공空’의 개념으로 이해하여 바퀴나 그릇, 방 등을 만듦에 있어서 ‘無’와 ‘공허(없음, 텅 빔)’가 작용함으로써 그 용도로 쓰임이 가능하다고 풀이한다.

 

-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내가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닌데 그것을 대량으로 만들어 둔다는 것은 결국 재리를 위한 것이며, 이는 임금의 권위를 과시하거나 사치, 향락, 전쟁 등의 용도로 쓰이게 되는바 검소한 생활을 위한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결국 도의 밝음에 결정적 장애가 될 뿐이다.

 

 

[章注] 본장에서의 키워드는 ‘임금의 검소한 일상’이다. 검소는 참된 정신의 기본이며, 도의 밝음에 이르는 필수요건이자 도에 다가가는 수많은 방법 중 최단거리코스이다. 검소는 제67장에 나오는 삼보三寶(검소ㆍ자애ㆍ무위)의 하나이다.

 

왕필은 원문 三十輻共一轂 當其無有車之用에서 轂所以能統三十輻者 無也 以其無能受物之故 故能以寡統衆也<바퀴살통이 서른 개의 바퀴살을 거느릴 수 있는 까닭은 아무것도 없기(無) 때문이다. 그 無로써 만물의 사정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적음으로써 많음을 통괄할 수 있다.>라고 주석한다.(無의 쓰임)

또, 원문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에서는 木埴壁所以成三者 而皆以無爲用也 言無者 有之所以爲利 皆賴無以爲用也<나무와 찰흙, 벽이 세 가지 용기用器를 이루는 까닭은 모두 無(아무것도 없음)로써 用(작용)하기 때문이다. 無는 有가 이롭게 되는 이유이니 모두 無로써 작용함에 의지한다는 말이다.>라고 주석한다.

여기서 왕필은 바퀴나 그릇, 방에는 無(텅 빔)가 있기 때문에 그로써 그 기구器具의 이로움이 있다는 ‘以無爲用(무로써 작용한다)’의 개념을 보이고 있다.

한편, ‘하상공’은 원문 當其無有車之用을 無謂空虛 轂中空虛 輪得轉行 轝中空虛 人得載其上<‘무’는 ‘공허’를 가리킨다. 바퀴살통 가운데가 비었으니 바퀴가 굴러가고, 수레 가운데가 비었으니 사람이 위에 탈 수가 있다.>이라 주석하고,

또, 원문 故有之以爲利는 利物也 利於形用 器中有物 室中有人 恐其屋破壞 腹中有神 畏其形消亡<이로운 물건이다. 형체의 작용이 이로우므로 그릇 가운데 물건이 있다. 방 가운데 사람이 있어 그 집이 무너질까 두려워한다. 배안에 오신이 있어 몸의 형체가 사라져 없어질까 두려워한다.>이라고 주석하는데, 왕필의 ‘以無爲用’은 이 부분과 많이 닮아있다.

원문 無之以爲用에서는 言虛空者乃可用盛受萬物 故曰虛無能制有形 道者空也<텅 빔은 곧 만물을 풍성히 담는데 쓸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비어 아무것도 없음이 형체가 있음을 능히 제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도는 빔이다.>라고 주석한다.

여기서 ‘하상공’은 ‘無가 空虛이며, 道가 空이다. 허무가 유형을 제어한다.’라고 仙道의 개념으로 풀이한다.

위에서 ‘하상공’의 ‘無’와 왕필의 ‘無’는 모두 ‘텅 빔(空ㆍ虛ㆍ無)’의 개념으로 풀이되고 있는데, 이는 ‘無’를 ‘空ㆍ虛’로 풀이한 ‘하상공’의 (도는 텅 빔이라는) 선도의 논리를 왕필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