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11장~20장)

노자 도덕경 제15장

나무와 까치 2013. 6. 30. 19:56

제15장. 도자道者

 

 

 

 

고지선위사자 미묘현통 심불가식 부유불가식 고강위지용

古之善爲士者 微妙玄通 深不可識 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

옛날의 참된 지도자라는 것은 미묘현통하여 깊이를 알 수가 없다. 오로지 알 수가 없어 애써 그 모습을 나타내어 본다.

 

- 古之善爲士者: 여기서 ‘士’는 ‘지도자’로 새긴다. ‘士’는 본래 고대에 부족의 왕이나 왕자, 제후, 귀족 등의 신분을 의미하며, 대체로 ‘지도자’나 ‘인사人士’, ‘선비’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士’는 고대 갑골문 및 금문에서 ‘王’과 모양이 매우 흡사한 글자이다. ‘王’은 ‘士’에 가로획(一)을 하나 더하였을 뿐 ‘士’와 유사한 모양이며, 커다란 도끼의 날을 밑으로 향한 형태로서 권위를 나타낸다.

‘王’과 함께 ‘士’나 ‘父’도 마찬가지로 도끼를 가지고 권위와 권력을 나타내는 문자인데, 중국의 은허 유적지에서 아름다운 조각장식을 한 의장용 도끼가 많이 출토된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한자의 세계(시라카와 시즈카)』 참고)

善爲士’는 ‘참되게 행하는 지도자’로 새길 수 있는데, 곧 ‘(옛날의) 참된 임금’ 혹은 ‘성인聖人’을 뜻한다.(제41장 ‘상사上士’ 및 제68장 ‘善爲士者’ 참조)

『노자』에서 쓰이는 ‘善’은 현대적 의미의 착함 혹은 능숙함, 능통함과는 차이가 있다. 여기서 ‘善’은 ‘참됨’ 혹은 ‘꾸밈없이 자연스러움’으로 새겨야한다.

(善: 2,8,15,20,27,30,41,49,50,54,58,62,65,66,68,73,79,81장)(제20장 善ㆍ惡 및 제27장 善人ㆍ不善人, 제62장 善人ㆍ不善人ㆍ不善 참조)(제68장 善爲士者 참조)

‘者’는 ‘~것’, ‘~면’, ‘~은(는)’ 등으로 읽어야 한다.(者: 제1,3,7,15,22,23, 24,27,29,30,31,33,68,61,70,74장)

 

- 微妙玄通: (지극히) 미묘하며 가마득하게 통한다.(玄: 제1,6,10,15,51, 56,65장) (妙: 제1,15,27장)

 

 

예언약동섭천 유혜약외사린 엄혜기약용 환혜약빙지장석 돈혜기약박 광혜기

豫焉若冬涉川 猶兮若畏四隣 儼兮其若容 渙兮若冰之將釋 敦兮其若樸 曠兮其

약곡 혼혜기약탁

若谷 混兮其若濁

미리 조심하는데 겨울에 언 내를 건너는 것 같고, 다만 머뭇거리는 것이 사방 이웃(의 의견)을 두려워하는 것 같고, 점잖고 의젓한 것이 모든 것을 용납하는 것 같고, (자유로이) 흩어지려는 것이 얼음이 곧 풀어질 것 같고, (몸가짐의) 두터운 것이 나무둥치 같고, (마음이) 넓게 비어있는 것이 계곡 같으며, (뭇사람과 어울려 함께) 섞이는 것이 마치 혼탁한 것 같다.

 

- 노자는 세상에서 도와 가까운 모습으로 ‘谷(골짜기, 제6장)’과 ‘水(물, 제8장)’를 언급한바 있는데, 이 부분은 제14장의 ‘도’를 정확히 알고 참되게 좇아 행하는 지도자의 일상적인 모습을 (도를 모르는) 일반의 시각으로 것이다.

옛날의 참된 지도자란 성스럽고 장엄한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조심하여 머뭇거리는 것 같고, 이웃을 어렵고 두려워하는 것 같다. 기품은 점잖고 의젓하며, 마음은 자유롭고 몸가짐은 돈독하며, 가슴을 넓게 텅 비우고 때로는 세속과 함께 섞여 혼탁한듯하다.

 

- 混兮 其若濁: (옛날의 참된 지도자가) 뭇사람과 함께 어울려 섞이는 것이 마치 혼탁한 것 같다. 가슴엔 고귀한 빛을 품되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세상과 함께 뒤섞여 동화하는 것이 마치 성정이 흐려진 범인처럼 보인다.(제4장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제23장 道者同於道 德者同於德 失者同於失, 제56장 是謂玄同 참고)

 

 

숙능탁이정지서청 숙능안이구동지서생 보차도자불욕영 부유불영 고능폐불

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久動之徐生 保此道者不欲盈 夫唯不盈 故能蔽不

신성

新成

누가 (스스로) 탁함으로써 (백성을) 고요히 하여 서서히 (그 성정이) 맑아지게 할 수 있으며, 누가 (스스로) 안정함으로써 (만물을) 오래도록 꾸준히 움직여 서서히 (참된 본성이) 살아나게 할 수 있겠는가?

(이는 도만이 할 수 있는 것인데,) 이러한 도를 보전하려면 (부귀공명의 욕망을) 채우고자하지 않는다. 오로지 채우지 않으므로 (죽어 흙과 풀에) 덮이도록 (덕의 치세를) 새로이 (고쳐) 이루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 孰能濁以靜之徐淸: 누가 (자기스스로 혼탁한 듯) 만물과 함께 섞여 동화함으로써 (백성의 성정이) 서서히 맑게 할 수 있는가?(제45장 淸靜爲天下正 참조) 여기서 ‘孰’은 ‘누가’이며, ‘善爲士’를 가리키고 있다.

 

- 保此道者 不欲盈: ‘此道’는 (옛날의) 참된 지도자가 이행하는 ‘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久動之徐生’의 도를 말하며, ‘保此道者’는 ‘이러한 도를 (지도자가) 보전해가려면’으로 새긴다.

갑골문, 금문에 ‘保’는 사람(보모)이 갓난아이를 업고 있는 모양인데, 이는 갓난아이가 조상의 영靈을 받아들이는 의례로서 왕위계승과 관련이 있다. 그로부터 보전하다, 이어받다, 지키다, 보호하다, 돕다, 기르다 등으로 쓰인다.

 

- 夫唯不盈 能蔽不新成: (성인은) 오로지 (부귀공명의 욕망을) 채우지 않으므로 죽어서 몸이 다하도록 (온전히 이룬 덕의 치세를) 새로이 고쳐 이루지 않을 수가 있다. 여기서 ‘蔽’는 ‘(죽어서 땅에 묻혀) 덮이도록’으로 새긴다.(제22장 弊則新 및 제45장 大成若缺 其用不弊 참조)(제34장 以其終不自爲大 故能成其大 참고)

 

 

[章注] 제15장은 제14장의 ‘도’를 사람이 그대로 좇아 실제로 이행하는데 있어 그 외관상의 모습을 설명한다. 즉, ‘도’를 정확히 알고 참되게 좇아 행하는 지도자의 일상적인 모습을 (도를 모르는) 일반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다. 이는 곧바로 이어지는 제16장 ‘도의 밝음에 실제로 이르는 과정’을 본격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예비단계로 이해할 수 있다.

 

원문 古之善爲士者에 대해 ‘하상공’은 謂得道之君也<(옛날의 선위사는) 도를 얻은 임금을 말한다.>라고 하고, 원문 微妙玄通에서는 玄 天也 言其志節玄妙 精與天通也<현은 하늘이다. 그 뜻함이 현묘하여 정기가 하늘과 통한다는 말이다.>라고 하며 선도의 개념으로 풀이한다.

또, 원문 孰能安以久動之徐生을 ‘하상공’은 誰能安靜以久 徐徐以長生也<누가 안정함을 오래하여 서서히 장생하도록 할 수 있는가?>라고 주석하며 장생과 관련하여 풀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