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제17장
제17장. 태상太上
태상 하지유지 기차 친이예지 기차 외지 기차 모지
太上 下知有之 其次 親而譽之 其次 畏之 其次 侮之
태상은 아래 사람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아는 것이고, 그 다음이 좋아하며 칭예하는 것이고, 다음이 두려워 꺼려하는 것이며, 그 다음은 업신여기는 것이다.
- 太上: ‘태상’은 직역으로 ‘지극한 임금’이다. (옛날의) 지극히 참된 임금이며, 곧 ‘성군’을 일컫는다.(畏: 제15,17,20,53,72,74장)
신부족언유불신언 유혜기귀언 공성사수 백성개위아자연
信不足焉有不信焉 悠兮其貴言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믿음이 부족하면 불신이 있다. 멀리 보면 그것은 귀중한 말이로다! (성군이) 공을 이루어 일을 완수하면 백성들은 모두 ‘나 스스로 그러하게 있다’고 일컫는다.
- 信不足焉 有不信焉: (임금이 천연한 그대로의 성품으로서) 믿음이 부족하면 (백성 또한) 순수한 그대로의 믿음이 없다. 여기서 ‘信’은 사람이 참됨을 말한다는 믿음이며, 천연한 그대로의 진실에 대한 ‘믿음’이다.
천연한 자연처럼, 임금은 말로써 백성을 이끌려하지 말고 순수한 그대로 만물을 온전히 긍정하고 용납하며 한 점의 의심도 없이 백성을 믿음으로 대한다면, 백성 또한 순박한 본성 그대로 아무런 의심이 없이 임금을 믿고 따르게 되는 것이다.(제23장 ‘希言自然’ 참고)
또한, 임금이 스스로 만물의 근본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고 진실을 의심하게 되며, 결국 권모와 술수, 음모 등의 사악함을 구별 못하고 일을 그르치게 된다. 불의와 사악함이 횡행하는 환경에서는 백성이 임금을 온전히 믿고 따르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제23장 ‘信不足焉 有不信焉’ 참조)
-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태상이 공을 이루어 일을 완수하면 백성들은 모두 ‘나 스스로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한다. 성군이 천하의 질서를 자연의 섭리처럼 조화롭고 정연하게 아우른다면 백성들은 모두가 내 스스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지 임금이 무엇을 한다는 것인가라고 말한다.
천하가 그처럼 온전히 다스려지게 되면 백성은 위에 임금이 있어서 잘 다스리고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이야말로 이상적인 정치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功’은 자연의 섭리처럼 조화로운 천하의 질서를 뜻하며, ‘我’는 개인의 정체성과 관련한 ‘나’이다.(我: 제17,20,42,53,57,67,70장)
[章注] 여기의 제17장부터 제21장까지는 제14,16장에서 확인한 우주대자연의 상자연한 원리로서 ‘大道’를 그대로 좇아 행하는 ‘덕’을 설명하는 과정이다. 제22장부터 제25장까지는 그 ‘대도’를 그대로 좇아 이행하는 사람(왕)의 참된 덕(곧, 상덕上德)을 설명하는 과정이다. 즉, 우주대자연의 상자연한 원리인 ‘대도’가 ‘인간의 도(곧 上德)’로 연결되는 이치이다.
원문 太上 下知有之에서 ‘하상공’은 太上 謂太古無名號之君<‘태상’은 태고의 이름도 호칭도 없는 임금을 말한다.>라고 주석한다.
원문 悠兮其貴言에서 「하상공장구」에는 ‘悠’가 ‘猶’로 되어 있으며, 說太古之君 擧事猶猶 貴重於言 恐離道失自然也<태고 때의 임금은 일을 받듦에 있어서 (도와) 똑같이 하여 말을 아끼고 무겁게 하였다. (이는) 도를 벗어나 스스로 그러함을 잃을까 두려워한다는 설명이다.>라고 주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