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제29장
제29장. 신기神器
장욕취천하이위지 오견기부득이 천하신기 불가위야 위자패지 집자실지
將欲取天下而爲之 吾見其不得已 天下神器 不可爲也 爲者敗之 執者失之
장차 천하를 취하고자 위하면 우리는 그것이 얻어지지 않을 뿐임을 본다. 천하는 신의 기구여서 (인위적으로) 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도하여 일부러) 위하면 실패하며, (천하를) 다잡으면 (전부) 잃는다.
- 將欲取天下而爲之: 장차 천하를 취하고자 (의도적으로 일을 벌이어 부추기며) 위하다.
- 天下神器: 천하는 신령한 기구이다. 세상은 천지자연이 유기적으로 작용함으로 인한 그 천연한 속성에 의해 운영되는 신령한 기구이므로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器’는 천지자연 그 자체를 하나의 ‘기구器具’로 보는 관점이다.
‘神’이란 본래 상제上帝(또는 천제天帝)의 사자使者를 뜻하는 글자로서 바람이나 비, 번개, 큰 산과 강과 호수, 계곡 등처럼 대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자연물을 지칭하였다. 즉, 특별한 동식물이나 거대한 자연물들을 각각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하나의 독립적 유기체로 보는 것이며, 이러한 입장에서 그 생명체를 직접 관리하고 운영하는 실체로서 (천연한) 정기精氣를 신神(또는 신령神靈)이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에 있어서는 곧 맑고 순수한 정신精神이며, 천연한 그대로의 성품性品(천성天性)이자 영靈(영혼靈魂)인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신神을 정신精神이라 하고, 죽어서는 그것을 영靈이라 한다. 즉,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다가 원래의 내가 왔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영혼靈魂(또는 귀鬼)인 것이다.
『노자』나 『주역(십익)』, 『논어』 등에서 ‘神’은 대체로 천지대자연과 같은 천연한 정신 즉 지극히 맑고 순수한 정신을 의미하며, 그로부터 순수한 그대로의 맑은 정신精神 또는 지극한 성인의 정신을 뜻한다. 이는 오늘날 한의학의 교과서로 통하는 『동의보감(허준)』이나 현행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정精, 기氣, 신神, 정기精氣 등의 용어와도 개념상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神: 제6,29,39,60장)(器: 제11,28,29,31,36,41,57,67,80장)(『장자』 ‘양왕’편 ‘天下大器也’ 참고)
- 爲者敗之: (천하 만물은 모두가 신기인지라 그 상자연한 본성을 무시한 채 사사로운 의도로) 위하며 (무엇을 취하고자 백성을) 부추긴다면 반드시 실패한다.
- 執者失之: 백성의 삶을 천연한 그대로 자유롭게 두지 않고 획일적으로 다잡아 통제한다면 모든 것을 잃는다.(執: 제14,29,35,64,69,74장)(爲者敗之 執者失之: 제64장)]
고물혹행혹수 혹허혹취 혹강혹리 혹좌혹휴 시이성인거심거사거태
故物或行或隨 或歔或吹 或强或羸 或挫或隳 是以聖人去甚去奢去泰
이는, (임금이 그리함으로써) 세상은 혹은 (앞서서) 행하고 혹은 뒤좇으면서 혹은 두려워하고 혹은 충동질하여, 혹은 강성하고 혹은 쇠약하며 혹은 꺾이고 혹은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인은 (취미 등의) 심함을 멀리하고, 사치를 멀리하고, (의식이나 건축의) 거창함을 멀리한다.
- 故物或行或隨 或歔或吹 或强或羸 或挫或隳: 그 이유는, (임금이 천하를 취하고자 사사로이 부추기고 다잡음으로써) 세상은 혹은 (앞서서) 행하고 혹은 뒤따르면서 혹은 두려워하고 혹은 충동질하여, 혹은 강성하고 혹은 쇠약하며 혹은 꺾이고 혹은 무너진다는 것이다.
즉, (임금이 사사로이 위하며 다잡음으로써 백성은 그렇게) 부귀권세와 영화를 추구하면서 (나라는) 좌절하고 무너진다. 이 부분은 앞의 ‘爲者敗之 執者失之’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의 ‘物’은 ‘만물萬物’ 또는 ‘물정物情’이며, ‘세상’ 또는 ‘세상사’로 새길 수 있다.(物: 제14,16,21,24,25,27,29,30,31,42,51,55,57,65장) ‘허歔’는 두려움에 숨이 ‘헉’ 막히는 모양이며, ‘취吹’는 귀에 입김을 불며 속삭여 충동하는 모양이다.]
[章注] 천하는 천지자연이라는 유기체의 천연한 속성에 따라 운영되는 ‘신기神器’인바 임금이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임금은 스스로 검소하되 백성을 부추기거나 획일적으로 통제함이 없음으로써 천하는 비로소 정상적인 작동이 가능한 것이다.
원문 或歔或吹는 「하상공장구」에 ‘或呴或吹’로 되어있고 ‘呴 溫也 吹 寒也 有所溫必有所寒<‘구’는 ‘따뜻함’이다. ‘취’는 ‘추움’이다. 따뜻한 곳이 있으면 반드시 추운 곳이 있다.>’라고 주석하며,
또, 원문 或挫或隳는 「하상공장구」에 ‘或載或隳’로 되어있으며 ‘載 安也 隳 危也 有所安必有所危 明人君不可以有爲治國治身<‘재’는 ‘안정됨’이다. ‘휴’는 ‘위태로움’이다. 안정된 곳이 있으면 반드시 위태로운 곳이 있다. 군주는 유위로 나라를 다스리거나 몸을 다스려서는 안 됨을 밝힌다.>’라고 주석하는데, 여기의 ‘치국’, ‘치신’은 황로학의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