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제31장
제31장. 불상不祥
부가병자 불상지기 물혹오지 고유도자불처 군자거즉귀좌 용병즉귀우
夫佳兵者 不祥之器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君子居則貴左 用兵則貴右
무릇 (성능이) 훌륭한 병기라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기구이다. (이는) 세상이 아마도 혐오하므로 도가 있으면 (그것으로) 대처하지 않는다. 군자가 (일상의) 거주함에는 왼쪽을 귀하게 여기나 병장기를 씀에 있어서는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 物或惡之: 여기서 ‘物’은 ‘萬物’ 혹은 ‘物情’으로서 사물의 정상이나 세상물정을 일컬으며, ‘세상’ 혹은 ‘세상만물’로 새길 수 있다.(物或惡之: 제24장)(物或損之而益: 제42장)(物: 제14,16,21,24,25,27,29,30,31,42,51,55, 57,65장)
- 有道者不處: 도가 있으면 (훌륭한 병장기로) 대처하지 않는다. 여기서 ‘도가 있다(有道)’는 것은 ‘도의 밝음을 알며 그것을 그대로 좇아 행함’을 말하는데, 이처럼 ‘사람이 행하는 도’는 곧 ‘덕(上德)’을 의미한다.
- 君子: ‘子’는 고대 상商(은殷의 본명)왕조의 무정武丁 때 아我ㆍ여余와 함께 왕자의 호칭으로 사용된 글자이다. ‘君子’는 그 당시 왕자王子나 귀족으로서 지방이나 변방의 군장으로 봉해진 지도자 혹은 훗날의 제후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군자’, ‘임금’ 혹은 ‘지도자’로 새긴다.
- 君子居則貴左 用兵則貴右: 임금이 평상시 좌정하여 남면하면 그 왼편이 동쪽이고 오른편은 서쪽이 된다. 동東은 해가 뜨는 곳으로 출생出生(삶의 시작)의 의미가 있으며, 서西는 해가 지는 곳으로 입사入死(삶의 마무리)의 의미가 있다. 실제로 임금의 왼쪽에는 생명을 일으키고 보살핀다는 의미로 문관을 두고, 오른쪽에는 죄인을 단죄하여 다스린다는 직분의 무관을 두었다.
≪참고: 우리나라의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 근정전의 조정 품계석에도 동반ㆍ서반으로 나뉘어져 동쪽에는 문반을 두고 서쪽에는 무반을 두어 문반인 좌측을 중시하였던 당시의 직제가 남아있으며, 당시 정승의 서열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순서로 이어지는 점 또한 참고할 만하다.≫
병자불상지기 비군자지기 부득이이용지 염담위상
兵者不祥之器 非君子之器 不得已而用之 恬淡爲上
병장기란 상서롭지 못한 도구라서 군자의 기구가 아니다. 부득이하게 사용한다면 조용히 담담하게 함이 최상이다.
- 兵者不祥之器: 병장기란 상서롭지 못한 기구이다. 여기서 ‘상서롭다’함은 흔히 ‘길하다’거나 ‘복되다’는 말처럼 일상의 삶이 평화롭고 화목하여 즐겁고 행복함을 일컫는다.
승이불미이미지자 시락살인 부락살인자 즉불가이득지어천하의
勝而不美而美之者 是樂殺人 夫樂殺人者 則不可以得志於天下矣
(전쟁에서) 승리함은 아름다운 것이 아닐진대 이를 찬미한다는 것은, 이는 살인을 즐기는 것이다. 무릇 살인을 즐긴다면 천하에 (그) 뜻을 얻을 수 없다.
- 則不可以得志於天下矣: 여기서 ‘志’는 ‘의지意志’이며, ‘천하를 취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의지’란 자기가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며,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나의 욕구’가 작용한다.
『노자』에서 ‘意志’란 대부분 부귀권세나 명예에 대한 의지이며, ‘그 의지를 약하게 한다(弱其志, 제3장)’는 것은 부귀공명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버리고 검소하며 겸손한 본래의 심신을 유지한다는 것이다.(志: 제3,31,33장)
길사상좌 흉사상우 편장군거좌 상장군거우 언이상례처지 살인지중 이애비
吉事尙左 凶事尙右 偏將軍居左 上將軍居右 言以喪禮處之 殺人之衆 以哀悲
읍지 전승이상례처지
泣之 戰勝以喪禮處之
길한 일에는 왼쪽을 중시하고, 흉한 일에는 오른쪽을 중시한다. 편장군은 왼쪽에 있고 상장군은 오른쪽에 있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상례로 대처한다는 것이다.
(전쟁으로) 많은 사람을 죽였다면 비애로 눈물을 흘리며, 전승은 상례로 대처한다.
- 偏將軍居左 上將軍居右: 상장군은 편장군을 통괄하는 직위이다. 그러함에도 (주군의) 좌측에 편장군이 서고 상장군은 우측에 자리하는 것은 군대의 직제가 상위 서열이 오른쪽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평소 일반관료의 직제는 좌측에 상위서열이 위치하나 상례에서는 반대로 자리하는 것 역시 군대의 직제와 같다.
- 殺人之衆 以哀悲泣之: (전쟁으로) 많은 사람을 죽였다면 애통하게 눈물을 흘린다.(제69장 哀者勝矣 참고)
[章注] 제31장은 제26장-제31장의 도의 천연함을 본받아 왕이 참되게 덕을 행하는 사례들의 마지막부분이다. 본장에서는 不祥, 非君子, 殺人, 喪禮 등의 부정적인 단어들을 언급하며 제30장에 이어서 도의 천연함에 극단적으로 대척하는 병력의 사용을 직설적으로 거침없이 충고한다.
그러면서 굳이 부득이하게 병장기를 사용한다면 조용히 담담하게 할 것이며, 전쟁으로 많은 사람을 죽였다면 비애로 눈물을 흘리되 전승은 상례로 임해야할 것이라 한다.
흔히들 본장의 내용이 앞의 것과 겹치고 천박하다며 이는 『노자』의 원문이 아니라 옛날의 주석이 잘못 끼어든 것이라 의심한다. 그러나 제30장ㆍ제31장은 제26장-제29장에서 강조하였던 ‘도의 천연한 밝음을 그대로 좇는 임금의 참된 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극단적인 사례를 거론한 것으로, 그것을 지금 작심하고 경계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이다. 부드럽고 정중하며 모든 것을 포용하되 공적으로는 대쪽같이 분명한 노자의 정신과 면모를 그대로 보는듯하다.
원문 (勝而不美) 而美之者 是樂殺人에서 ‘하상공’은 ‘善得勝者 是謂喜樂殺人<진심으로 (좋아하며) 승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살인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라고 일컫는다.>’이라고 주석하며 ‘善’을 진심, 진정 등의 뜻으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