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제35장
제35장. 대상大象
집대상천하왕 왕이불해안평대
執大象天下往 往而不害安平大
큰 형상을 지키며 천하는 (이루어져)간다. (그렇게 움직여)가므로 해롭지 않고 평안함이 크다.
- 執大象天下往 往而不害安平大: 큰 형상을 지키며 천하는 (이루어져)간다. 즉, 세상은 큰 모양으로서 이루어져간다. 여기의 ‘大象’은 ‘천지자연의 큰 형상’이며, ‘天下’는 ‘천지자연으로서 세상’을 일컫는다. ‘往’은 이 세상에서 사회가 흘러가듯 ‘이루어져감’을 일컫는다.
천지자연은 그렇게 큰 형상을 지키며 움직여가므로 해롭지 않고 안정과 평화로움이 크다는 것이다. 결국 원대한 천지자연의 천연한 조화로움과 그 유익함을 강조한다.(執: 제14,29,35,64,69,74장)(象: 제4,14,21장)(大象: 제35,41장)
악여이과객지 도지출구 담호기무미 시지부족견 청지부족문 용지부족기
樂與餌過客止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旣
풍류와 음식에는 과객이 멈추지만 도가 나오는 곳은 담담하여 아무런 맛이 없다. (도는) 보고 있으되 완전하게 볼 수 없고, 듣고 있으되 충분히 들을 수 없으며, 그 작용은 (의식하여 느끼기엔) 이미 흡족하지 않다.
- 樂與餌過客止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풍류와 음식이 있는 자리엔 과객이 멈추어 찾아들지만, 도가 나오는 출구(즉, 도가 행하여지는 곳)는 밋밋하고 아무런 맛이 없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 視之不足見: 보고 있으되 그 실체를 완전히 볼 수 없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하늘과 땅, 해, 달, 별, 구름, 바람, 물 등의 존재와 운행은 모두가 도의 일부이지만 그 온전한 실체를 전부 다 볼 수는 없다.(제14장 視之不見 참고)
≪참고: 도는 (세상의) 깊숙이에 있으면서 (늘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으나 (사람들은 그것이) 가득차지 않은 것으로 의심한다(제4장 道沖而用之或不盈). 도의 작용은 부지런하지 않다(제6장 用之不勤). 도의 작용은 미약한 듯하다(제40장 弱者道之用). 도는 이 세상 어떤 일이든 하지 못함이 없고 또 (도가) 하지 않음이 없다(제37장 道常無爲而無不爲). 도는 (분별하는) 이름이 없이 숨어 있다(제41장 道隱無名). 도는 인간이 사사로이 도구나 기술처럼 명리를 위해 소유하거나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道는 결국 스스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무한한 섭리로 심원하게 작용하는 것이다(제25장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 聽之不足聞: 듣고 있으되 충분히 들을 수 없다. 누구나 듣고 있으되 천지자연과 같은 천연한 도의 소리를 온전히 들을 수는 없다.
- 用之不足旣: 현실의 모든 일상에서 누구나 의지하여 살아가는 해와 달의 운행부터 극히 미세한 먼지에 이르기까지 이미 도의 작용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러나 도의 그러한 작용을 온전히 의식하여 느끼기에는 원래부터 흡족하지 않다.
무한히 크고 심원한 도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세상의 아주 깊숙한 곳에서 언제 어디에서나 끊임없이 작용하며 미약한 듯 늘 위함이 없으나 하지 않는 것이 없다.
[章注] 제35장 역시 상자연한 천지자연의 천연한 조화로움과 그 유익함을 말한다.
원문 執大象 天下往에서 ‘하상공’은 ‘執 守也 象 道也 聖人守大道 則 天下萬民移心歸往也 治身則天降神明 往來於己也<‘집’은 ‘지키다’이다. ‘상’은 ‘도’이다. 성인이 대도를 지키면 천하 온 백성이 마음을 옮겨 (의탁하여) 돌아간다. (대도를 지켜) 몸을 다스리면 하늘이 신명을 내려 자기에게 오가게 한다.>‘라고 주석하는데, 이는 선도의 관점이다.
원문 樂與餌過客止에서는 ‘餌 美也 過客 一也 人能樂美於道 則一居止也 一者 去盈而虛 忽處如過客<‘이’는 ‘아름다움’이다. ‘과객’은 ‘하나’이다. 사람이 능히 도의 아름다움(맛)을 즐긴다면 곧 하나가 머문다. 하나는 가득 참을 버려 텅 빈 것이니 홀연히 처하여 길손과 같다.>’이라 주석한다. 여기의 ‘일一’은 ‘원기元氣’이며 선도의 개념이다.
원문 用之不足旣는 「하상공장구」에 用之不可旣로 되어 있고, ‘旣 盡也 謂用道治國 則國富民昌 治身則壽命延長 無有旣盡之時也<‘기’는 ‘다하다’이다. 도를 이용해 나라를 다스리면 국가가 부유해지고 백성이 풍성해짐을 일컫는다. (도를 이용해) 몸을 다스리면 수명이 연장되며 다할 때가 없다.>’라고 하며 황로학의 입장으로 풀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