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71장~81장)

노자 도덕경 제80장

나무와 까치 2014. 10. 20. 09:04

제80장. 소과小寡

 

 

 

소국과민 사유십백지기이불용 사민중사이불원사

小國寡民 使有什伯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작은 나라의 (아주) 적은 백성으로 하여금 여러 사람이 (충분하게) 쓸 수 있는 생활도구를 갖추도록 하되, (백성을 공역 등에 징발하여) 쓰지 않는다. 백성으로 하여금 죽음을 중시토록하고 (백성을 지금 사는 곳에서) 멀리 옮기지 않는다.

 

- 小國寡民: 작은 나라의 아주 적은 백성. 여기서 ‘소국’은 글자그대로 아주 작은 나라로서 사실상 소규모지방자치를 의미한다. 주나라의 개국당시 천하에는 72개의 제후국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사방 50리 정도의 나라도 있었다고 한다.(제57장 ‘人多伎巧 奇物滋起’에 대한 「하상공장구」 ‘人 謂人君百里諸侯也’ 참고)

큰 나라를 지향한다는 것은 그 본질이 나라의 백성을 잘살게 하려는 것보다는 임금이나 귀족 등 극소수 권력자의 사사로운 야망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반드시 파괴와 육살이 동반되었던 것을 역사는 증언한다.

≪참고 1. 마음의 빔을 지극하게 하고 성정을 고요히 함으로써 노자는 스스로 참된 본성을 닦아 사물의 근본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였고, 그 물아일체의 바탕에서 한 치도 어김이 없는 무한한 섭리로 도도히 운행하는 우주대자연의 어떤 실체를 통찰하였던바, 이것이 곧 ‘도道(의 존재)’이다.(제14장 및 제16장 靜ㆍ命ㆍ常ㆍ明, 제25장 道法自然ㆍ獨立不改 참고)

개인의 사사로움을 온전히 내려놓음으로써 천연한 본성으로 스스로를 경계할 수가 있고, 그러한 물아일체의 입장에서 ‘도의 밝음’에 다가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로써 왕은 모든 것을 긍정하고 포용하며 천하를 무위로 아우르게 되는바 바야흐로 세상의 질서는 천지자연의 섭리처럼 조화롭게 안정되는 것이다.

덕德이란 그러한 도의 밝음을 인간이 그대로 좇아 참되게 이행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직접 도를 행할 수는 없다. 도의 밝음을 사람(왕)이 그대로 좇아 행하는 그것 사람의 도이며, 이는 곧 참된 덕(上德)이다. 상덕이야말로 천하를 아우르는 성군의 본분이다. 만물이 나서 늙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모두 德의 운영에 따른다. 성군은 그러한 섭리를 참되게 따를 뿐이며, 이를 현덕이라 이른다.(제10,51장 玄德 참고)

그로써 왕은 천지자연의 섭리 같은 조화로운 질서 속에서 모든 것을 긍정하고 포용하며 백성과 더불어 자유롭게 살아가고, 백성은 모두가 부귀권세를 모른 채 그저 생업에 충실하며 소박하나마 맛나게 먹고 맵시 있게 입으며 화목하게 이웃과 더불어 마음껏 자유로운 일상을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게 사람은 마음껏 자유롭게 천수를 누리다가 다시 道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도덕사상’이다.

2. 내가 살아가는 삶의 본질은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다(제39장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참고). 사람은 맹수나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여 먹고 자고 입으며 스스로 건강하게 생명을 유지함으로써 최선을 다해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본래부터 삶의 근본실질이며 복된 일상의 원형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웃과 더불어 서로를 배려하며 자유롭고 평화롭게 생명을 즐기면서 자유롭게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복福인 것이다. 복(행복)이란 본시 넘치는 재물이나 남다른 지위, 불후의 영예 같은 것이 아니라 천재지변이나 전쟁, 질병 같은 환난이 없이 나와 가족의 건강과 화목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그 핵심인 것이다.

그렇다면 삶의 밑바탕에 항상 깔려있는 그 ‘재화災禍’는 복이 의지하는 것임이 분명하며, 복은 환란이 잠시 엎드려있었던 것일 뿐이다. 그처럼 화는 복이 의거하는 바탕이고 복은 화가 엎드린 것인데, 누가 그 지극한 근본실질에 대하여 아는가? 안타깝게도 천하에 사람들은 누구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제58장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참고)

참된 삶이란 결국 막강한 권세, 고귀한 신분, 넘치는 재화로 인한 화려하고 풍족하며 거룩한 삶이 아니라 소박하게 생업에 충실하며 필요한 만큼의 음식을 맛나게 먹고, 검소하나마 맵시 있게 옷을 입으며, 이웃과 더불어 화목하게 풍속을 즐기면서 마음껏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다.(본장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참고)≫

 

- 使有什伯之器而不用: 여러 사람이 충분히 쓸 수 있도록 생활도구를 갖추도록 하되, 백성을 (전쟁이나 공역 등에 징발하여) 쓰지 않는다.

‘什伯’은 ‘10인의 우두머리’로서 그에 딸린 식솔들을 포함한 ‘여러 사람’ 혹은 ‘많은 사람’을 의미한다. 고대 주나라 초기의 금문金文에 보이는 ‘백伯’은 농경지의 관리자로서 그 아래에 150명 정도의 농민이 소속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이후 생겨난 여러 봉건계급 중 하나인 ‘백작伯爵’의 원형으로 여겨진다.

‘器’는 생활에 필요한 농기구 등의 기물을 뜻하므로 ‘使有什伯之器’는 여러 사람이 쓸 수 있는 다양한 생활도구를 (부족하지 않게 충분히) 갖추도록 한다.’가 된다.

한편, ‘而不用’은 ‘백성을 (전쟁이나 공역 등에 징발하여) 쓰지 않는다.’로 풀이 되는데, 이 때 ‘用’의 주어는 ‘왕’이고 목적어는 ‘民’이 된다. 즉, 이 문장은 ‘使有什伯之器而不用’의 의미로 쓰고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使民重死而不遠徙’의 구절에서도 마찬가지로 앞에 ‘使民’을 두어 ‘不遠徙’를 ‘不遠徙(백성을 멀리 옮기지 않는다.)’의 뜻으로 쓰고 있다.

여기서 ‘民’은 ‘백성’으로 새길 수 있다. 고대 금문에 ‘民’은 시력을 빼앗긴 사람을 표현한 모양의 글자인데, 정복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 씨족과 종속관계에 있는 ‘이족의 사람’ 곧 피정복 인을 뜻하는 글자이다. 이들은 여러 변방의 다양한 백성百姓으로서 처음엔 ‘人’과 종속관계의 하등신분이었다가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씨족적 질서가 대중화되면서 점차 평민화한 것으로 보인다.(民: 제3,10,19,32,57,58,64,65,66,72,74,75,80장)

 

- 器: 본래 ‘器’는 제사 때 쓰는 기물이나 일상의 그릇, 도구 등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농경생활과 관련한 도구나 가구로서 생활 기구를 일컫는다.(器: 11,28,29,31,36,41,57,67장)

 

- 使民重死而不遠徙: (백성으로 하여금 죽음을 소중히 여기도록 하며, 지금 사는 곳에서) 멀리 (거처를) 옮기도록 하지 않는다. 여기서 거처를 옮긴다는 것은 농지나 산지를 개간하기 위하여 백성을 척박한 오지로 강제 이주시키는 등의 행위를 일컫는다.

 

 

수유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 사인복결승이용지 감기식 미기복 안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使人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

기거 낙기속

其居 樂其俗

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그것을) 탈 곳이 없고, 비록 갑병(군대)이 있다 해도 진을 벌릴 곳이 없다.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줄매듭을 맺어 (셈법으로) 쓰도록 한다. (그로써 모두가) 음식을 달게(맛나게) 먹으며, 복식을 맵시 있게 하고, 거주가 안정되며 (서로 화목하게) 풍속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 雖有舟輿 無所乘之: 비록 배와 수레가 있다 해도 그것을 타고 다닐 만큼 땅이 넓지가 않다.

 

- 雖有甲兵 無所陳之: 비록 갑병(무장군대)이 있다 해도 진을 벌릴 만큼 나라가 크지 않다. 백성은 모두가 순박하여 각자 생업에 충실할 뿐이므로 서로 원한이나 미움을 가질 일이 없고, 이웃나라 또한 마찬가지이므로 온 천하가 서로 간섭함이 없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갑병’은 ‘갑옷과 병장기’, 즉 ‘무장한 군대’를 말한다(甲兵: 제50장).

 

- 使人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結繩’은 문자가 있기 이전의 옛날에 줄에 매듭을 지어 숫자나 약속, 비망 등을 표시하던 의사표시방식을 말한다. 여기서 ‘人’은 제후諸侯나 귀족 등 지도층 인사를 일컫는다.

결국, 참된 삶이란 화려하고 풍족하며 거룩한 삶이 아니라 소박하게 생업에 충실하며 필요한 만큼의 음식을 맛나게 먹고, 검소하나마 맵시 있게 옷을 입으며, 이웃과 더불어 화목하게 풍속을 즐기면서 마음껏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인국상망 계견지성상문 민지노사 불상왕래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 不相往來

이웃나라가 서로 바라보며 닭과 개 소리를 들으면서도 백성은 늙어 죽도록 서로 가고 옴이 없다.

 

 

[章注] 참된 삶이란 결국 화려하고 풍족하며 거룩한 삶이 아니라 소박하게 생업에 충실하며 필요한 만큼의 음식을 맛나게 먹고, 검소하나마 맵시 있게 옷을 입으며, 이웃과 더불어 화목하게 풍속을 즐기면서 마음껏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원문 使有什伯之器而不用을 「하상공장구」에서는 使有什伯之器而不用부분으로 분리하여 따로 주석하고 있다.

‘하상공’은 원문 使有什伯에서 ‘使民各有部曲什伯 貴賤不相犯也<백성으로 하여금 (생활에 필요한 물품 등의) 각 부문별 세목을 다양하게 갖도록 하여 귀함과 천함이 서로 침범하지 않게 한다.>’라고 주석하고;

또, 원문 之器而不用은 「하상공장구」에 人之器而不用으로 되어 있는데, ‘器 謂農人之器 而不用者 不徵實奪民之時<‘기’는 ‘농업인의 기물’을 말한다. ‘불용’은 ‘과실(수확물)을 징발하거나 백성으로부터 농사시기를 빼앗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주석한다.

원문 使人復結繩而用之은 「하상공장구」에 원문 ‘人’이 ‘民’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