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개요

『노자』 개요

나무와 까치 2018. 11. 7. 17:48

□ 『노자』 개요

1. 노자 소략

『사기史記(사마천司馬遷)』 63권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 의하면 “노자는 초楚나라 고현苦縣 여향勵鄕 곡인리曲仁里 사람으로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이고 자는 담聃이며, 주周나라 장실藏室(왕실 도서관)을 관리하는 사관史官이었다. 당시 젊은 공자가 주나라에 가서 노자에게 예禮를 물었는데 노자는 (공자에게) 교기驕氣ㆍ다욕多欲ㆍ태색態色ㆍ음지淫志에 대하여 충고하였다.

노자가 주나라에 산지 오래되었는데 왕실이 쇠하는 것을 보자 주나라를 떠나서 서쪽의 함곡관函谷關(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신안현新安縣 동쪽에 있는 관문.) 이르렀다. 이때 관령關令 윤희尹喜가 말하길 ‘선생님께서는 장차 은거하려 하시는 것이니 부디 저를 위해 서책을 남겨주십시오’하고 간청하였다. 이에 노자가 도덕道德의 뜻을 기록한 상ㆍ하편 오천여五千餘 자의 책 남기고 떠났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생을 마친 곳은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또 “혹은 말하기를 노래자老萊子 역시 초나라 사람으로 십오 편의 책을 남겨 도가의 작용을 말하였는데 공자와 같은 시기의 사람이라고 한다... (또) 공자가 사망한지 129년 후에 주周나라의 태사太史 담儋이 진秦나라 헌공獻公을 뵈었는데... 혹은 말하기를 담이 곧 노자라 하고 혹은 아니라고 하는데 세상에서는 그것이 그러한지 아닌지를 알지 못하는바 노자는 숨은 군자이다.”라고 하였다.

당나라 사람 사마정司馬貞은 「사기색은史記索隱」에서 후한 허신許愼의 설이라 하여 “담聃이란 귀가 늘어졌다는 뜻이며 그래서 이름은 이耳, 자를 담聃이라 하였다. 자를 백양伯陽(동한 환제桓帝 때의 사람 위백양魏伯陽)으로 알고 있으나 바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노자’는 사람의 이름임과 동시에 ‘노자’란 사람이 지은 도와 덕에 관한 책 『노자』를 말한다. 노자는 대체로 춘추시대 말기의 초楚나라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확히는 楚에 병합되기 전의 진陳나라 사람이다. 진陳나라는 순임금의 자손으로 제후를 봉한 나라이다. 초나라 고현苦縣 여향勵鄕 곡인리曲仁里는 현재 중국의 허난성河南省 저우커우시周口市 루이현鹿邑縣이다. 노자의 성은 이李이고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으로 당시의 원로학자라는 의미에서 ‘노담老聃’이라 불렸다는 것이 통설이다.

노자는 주나라의 원로사관으로 왕실의 장서를 관리하는 책임자로 있으면서 당시 관학官學의 핵심적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춘추시대 말기에 주나라가 혼란을 거듭하자 노자는 관직에서 물러나 주나라 서쪽의 국경관문인 함곡관에 이르렀고, 그곳 관령인 윤희의 간곡한 요청으로 오천여 자의 도와 덕에 관한 글을 적어 남겼다고 한다. 당초에는 그것이 노자의 글이란 의미로 『노자』라 하였으나 노자가 사망한지 수백 년이 지난 후에 도가의 학자들에 의해 『도덕경』으로 경칭되었다.

노자의 생몰 시기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는다. 다만 「노자한비열전」에 노자와 공자가 만난 이야기가 전해지며, 이때는 34세의 젊은 공자가 이미 세상에 원로학자로 널리 알려진 노자에게 예禮에 대하여 자문코자 찾아간 것으로 되어있다.(공자, BC 551년-BC 479년)

「노자한비열전」에는 또 노자에 대하여 “노래자는 초나라 사람으로 도가의 저서 십오 편을 지었고, 공자와 동시대 사람이라고 혹자는 말한다.”라고 하는데, 여기의 ‘老來子’라는 이름을 ‘돌아온 노자 선생’ 정도의 의미로 풀이한다면 ‘노래자’는 은거했다가 돌아온 노자 혹은 은거한 노자로부터 직접 사사한 사람으로 추측할 수도 있다. 또 한편으로 “혹자는 공자가 사망한지 129년이 지나서 주周나라의 태사太史 담儋이 진헌공秦獻公을 만났는데... 그 태사 담을 노자라고 한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바 ‘노래자’나 ‘태사 담儋’은 어쩌면 노자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하나의 계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서는 노자가 후학을 전승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여겨지며, 기록상으로도 드러나는 제자가 없다. 혹여 있었을 수도 있을 것이나 그 교육의 대상이 바로 지존의 군주인 것을 감안하면 어쩌면 제자가 없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노자』는 왕의 입장에서, 지도자가 천하를 자연의 섭리처럼 온전히 다스리는 이치를 기록한 글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노자』의 본래 뜻이 후세에 그대로 계승되거나 사회현실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등의 흔적은 노자이후 역사적 어떠한 사실史實이나 자료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결국, 노자는 도가의 종조宗祖가 아니라 처음 그가 주창한 ‘도덕사상’의 시조始祖이자 그 마지막 스승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고구려 때 중국 도가의 영향으로 오두미도五斗米道를 신봉하였고, 당唐으로부터 『도덕경』과 도사가 왔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미루어 도교의 형태로 『노자(도덕경)』가 전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때에는 예종이 청연각淸燕閣에서 한안인韓安仁에게 『도덕경』을 강론토록 하였던바 당시의 『노자(도덕경)』에 대한 연구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이 절대시되었던 시기인바 『노자(도덕경)』에 관한 연구나 노력이 크게 위축되었는데, 다만 대유학자 이이李珥가 『순언醇言』이라는 『노자(도덕경)』의 주석서를 직접 지었던 등으로 미루어보면 그 중에도 개인적 차원의 연구는 꾸준히 이어졌을 것으로 짐작한다.

 

2. 귀鬼와 신神

神’이란 본래 상제上帝(또는 천제天帝)의 사자使者를 뜻하는 글자로서 바람이나 비, 번개, 큰 산과 강과 호수, 계곡 등처럼 대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자연물을 지칭하였다. 이는 특별한 동식물이나 거대한 자연물을 하늘로부터 생명력을 부여받은 독립적 유기체로 보는 관점이며, 그 독립적 생명활동을 주관하는 ‘대자연의 신성한 정기精氣(곧 신령神靈)’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에 있어서 그것은 곧 천연한 그대로의 정신精神이며, 맑고 순수한 성품性品(천성天性)이자 영靈(영혼靈魂)인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신神을 정신精神이라 하고, 죽어서는 그것을 영靈이라 한다. 즉,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다가 죽어서 내가 왔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영혼靈魂(상나라 때 왕조의 선대 조상의 영혼은 귀鬼)인 것이다.

『노자』나 『주역(십익)』, 『논어』 등에서 ‘神’은 대체로 천지대자연과 같은 천연한 정신 즉 지극히 맑고 순수한 정신을 의미하며, 그로부터 성인의 지극한 정신이나 청정淸靜한 정신精神 등으로 사용된다. 이는 오늘날 한의학의 교과서로 통하는 『동의보감(허준)』이나 한의학에서 쓰고 있는 정精, 기氣, 신神, 정기精氣 등의 개념과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고대 상商나라(은殷나라의 본명) 때의 갑골문 등에서 ‘鬼’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뜻하는데, 이는 원래 상왕조가 성립되기 이전의 선대 조상이나 왕조의 선왕들을 의미하였던 것이다. 그 ‘鬼’ 중에서도 왕해王亥, 왕긍王亘, 상갑미上甲微 등을 ‘제帝’라 하였으며, 특히 시조인 설契(또는 설卨, 현왕玄王)을 ‘상제上帝’라 하였다.

상商 대의 갑골문에 나오는 ‘神’의 초기문자는 번개를 형상화한 ‘신申’인데, 풍백風伯, 우사雨師 등 上帝의 사자신使者神과 하河, 악岳 등의 자연신이 이에 해당한다. ‘상제’는 이러한 신을 포함한 백신百神을 거느렸다고 하는바 우주의 모든 신神 중에서 최고 으뜸신이 상제이다(갑골문ㆍ금문 및 『한자의 세계(시라카와 시즈카)』 참고).

이처럼 ‘鬼神’은 상왕조의 조상과 선왕을 뜻하는 ‘鬼’와 풍백, 우사, 하, 악 등의 百神을 뜻하는 ‘神’을 포괄하는 의미이다. ‘鬼神’이라는 용어에서 ‘鬼’자가 ‘神’자보다 앞자리에 위치하는데 이를 음양의 순서에 따른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으나 먼저 문자의 어원에서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찾을 수가 있다.(『논어』 ‘태백泰伯’편 제8-21장 ‘(禹)而致孝乎鬼神’ 및 ‘선진先進’편 제11-11장 ‘季路問事鬼神’의 鬼神 용례 참고)

‘鬼’와 ‘神’이 합쳐진 ‘귀신’은 상제와 상제가 부리는 우주의 백신을 포괄하는 말로서 결국은 상제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상나라가 멸망하고 주周왕조가 들어서면서 ‘上帝’는 ‘天帝’ 또는 ‘天神’의 개념으로 바뀐다. 말하자면 당시에는 ‘귀신’과 ‘상제’, ‘천제’, ‘천신’ 등이 동의어로 함께 쓰였던 것이다.

상나라 때부터 서주 무렵까지의 은 帝(곧, 鬼)의 사자使者였으므로 당시로서는 鬼와 神이 ‘鬼神’이라는 하나의 일반명사로 쓰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으며, ‘神’이란 곧 상제의 사자로서 천연한 생명력을 지닌 거대한 자연물을 의미하였던 것이다. 사실, 주나라 초기에 지어진 『주역』의 경문에는 ‘鬼’와 ‘帝’란 말은 나오는데 ‘神’이나 ‘鬼神’이란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주역』에서 ‘神’이나 ‘鬼神’이란 글자가 나타나는 시기는 공자가 지었다는 「십익」 이후부터이다. 이는 결국 『주역』의 64괘에 괘사와 효사가 붙여질 당시인 주나라 초기까지도 ‘鬼神’은 상제와 그 사자신, 즉 상제의 존재 그 자체였던 것으로 神의 위상이나 영향이 鬼에 비교될 바가 아니었다는 의미일 수가 있는 것이다.

이후 ‘鬼神’의 본래 의미는 주로 상제, 천제, 천신 등으로 남게 되고, 귀신이라는 용어는 사악한 이족異族의 神이나 제 잡신을 망라하는 의미로 변전하게 된다. 소위 물귀신이나 몽달귀신, 달걀귀신, 도깨비 같은 것들은 그렇게 귀신이 토속화하고 미신화한 것이다.

주나라가 창업될 당시에는 천제(곧 귀와 신)가 우주를 지배하는 주체로 숭앙되던 시기였던바 그러한 귀신(곧 천제)과 직접 소통하는 사람인 왕王이나 그 아래 제후들이 천하를 지배하는 지도자였다. 왕은 당연히 ‘天子(天帝의 아들)’로서 천하에 존귀한 존재이며, 천하의 모든 神 가운데 으뜸 神인 것이다.

 

3. 도덕사상

이후 서주시대에서 동주로 넘어가면서 춘추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이때부터 천자인 왕의 절대권위는 바닥에 떨어지고 그 자리를 신선神仙이나 잡귀신 등이 대신하며 현실의 일상에서 막강한 실력을 발휘한다. 노자가 활동하던 춘추시대 말기는 가히 말세라고 할 정도로 천제와 왕(천자)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귀족정치가 붕괴되고 바야흐로 제자학파와 미신이 횡행하며 질서를 어지럽히던 상황이라 무너진 기존의 질서를 대체할 이념적인 무언가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대자연의 천연한 운행원리를 통찰하고 그 바탕에서 삶의 원리와 가치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도덕사상’이다. 『노자』에서 도道란 한마디로 ‘천지자연이 순행하여가는 법도, 즉 우주대자연의 천연한 순행원리’를 말한다. 노자는 이를 물아일체의 입장에서 관찰하였고, ‘대도大道’ 또는 ‘천지도天之道’라고 하였다.

머리의 텅 빔을 지극히 하고 마음의 고요함을 독실하게 지킴으로써 노자는 스스로 참된 본성을 닦아 사물의 근본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였고, 그러한 물아일체의 바탕에서 한 치도 어김이 없는 무한한 섭리로 도도히 운행하는 우주대자연의 어떤 유기적인 실체를 통찰하였던바, 이것이 곧 ‘도道(의 존재)’이다.(제14장 및 제16장 靜ㆍ命ㆍ常ㆍ明, 제25장 道法自然ㆍ獨立不改 참고)

즉, 지도자는 개인의 사사로움을 온전히 내려놓음으로써 천연한 본성으로 스스로를 경계하며 절제할 수가 있고, 이를 바탕으로 물아일체의 입장이 되어 ‘도의 밝음’에 다가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로써 왕(곧 성인)은 모든 것을 긍정하고 포용하여 천하를 무위로 아우를 수가 있으며, 바야흐로 세상의 질서는 천지자연의 섭리처럼 조화롭게 안정된다는 것이다.

‘道’라는 말은 노자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있었던 것으로 고대 금문金文에서 ‘道’는 ‘도導’의 형태이다. ‘道’는 큰 도로에서 부정한 것을 깨끗이 정화하며 나아가는 계행啓行이나 선도先導의 의례가 본래의미이다. 그로부터 ‘도’는 앞장서서 길을 열어가는 일 또는 사람이 가야하는 마땅하고 올바른 길 등을 뜻하며, ‘도로써 행하다.’ 등의 용례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노자 당시에도 ‘도’라는 것이 이미 성행하고 있었으나 그 도라는 것은 여전히 귀신이나 천제, 천신, 신선 등이 지배하는 전통적 가치관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혼융되어있거나 그로부터 파생된 것들이다. 즉, 천지대자연의 엄연한 질서와 같은 공명정대한 도(곧 大道)’가 아니라 사람의 주관이 작용하여 가치를 규정하는 상대적 개념의, 소위 신선도神仙道 같은 ‘자잘한 도’였던 것이다.

<노자』에는 그러한 노자의 뜻이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제1장 및 제67장에서는 “(세상의 여러) 도를 도라고 하지만 (그것이) 늘 한결같은 (참된)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나의 도는 다른 자잘한 도와 다르다(似不肖 若肖久矣 其細也夫).”라고 말한다.

제4장에서는 ‘象帝之先’이라 하여 (노자가 말하는 道는) 천제天帝가 있기 이전에 이미 있었던 것이라 하는데, 여기서 ‘천제’는 ‘천제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 혹은 ‘천제의 道’를 의미하고 있다. 제60장에서는 ‘鬼’와 ‘신神(곧 살아있는 사람의 대표로서 성인)’은 모두 도와 덕의 운행이치를 따르는 천지자연의 한 현상일 뿐이라고 한다(夫兩不相傷 故德交歸焉).

제70장에서는 “나의 말은 매우 알기 쉽고 매우 행하기 쉬운데, 천하가 알지 못하고 행하지도 못한다. (내가 자애, 검소, 천연함으로 도의) 근본을 가지고 말하며 임금을 모시어 일을 받드는데, 천하의 누구도 (그 뜻을) 앎이 없다. 이는 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言有宗 事有君 夫唯無知 是以不我知)”라고 하며 이러한 상황을 직설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덕德이란 천지대자연의 천연한 작용이나 속성 같은 도의 밝음에서 비롯한 행동’을 말한다. 고대 갑골문 등에서 ‘덕德’은 ‘성省’과 그 자형이 매우 가깝다. ‘省’은 ‘(왕이 지방의 형편을) 친히 살핀다.’는 의미이며, ‘德’은 ‘(왕이) 눈을 부릅뜨고 (사람의 내면적 심성을) 유심히 살핀다.’는 의미의 글자다.

인간이 직접 도를 행할 수는 없다. 도의 밝음을 사람이 그대로 좇아 행하는 그것이 성인(성군)이 행하는 도이며, 곧 참된 덕(상덕上德)이다. 참된 덕(상덕)이야말로 천하를 아우르는 성군의 근본자질이자 본분이다. 또한 만물이 나서 자라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모두 그러한 德의 운영에 따른다. 성군은 이러한 섭리를 엄정하고 원만하게 따를 뿐이며, 그것을 현덕이라 이른다.(제10,51장 玄德 참고)

이로써 왕은 천지자연의 섭리 같은 조화로운 질서 속에서 모든 사물을 긍정하고 포용하며 백성과 더불어 자유롭게 살아간다. 백성은 또한 모두가 부귀권세를 모른 채 그저 생업에 충실하며 소박하나마 맛나게 먹고 맵시 있게 입으며 화목하게 이웃과 더불어 마음껏 자유로운 일상을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게 사람은 자유롭게 천수를 누리다가 다시 道로 돌아가는 그것이 ‘도덕사상’이다.

도는 만물이 살아가는 각자의 삶을 특별히 차등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만물의 자유롭고 행복할 권리는 지극히 평등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당연히 도를 본받는 천지天地와 성인 또한 무위無爲ㆍ무욕無慾ㆍ불인不仁이 그 본분일 수밖에 없다.

참고 ①. 상商의 기원: 상商은 탕湯 임금이 하夏나라를 멸하고 세운 나라로서, 왕조의 말기에 수도를 은殷으로 옮겼으므로 주周나라가 격을 낮추어 ‘은’이라 부른 명칭이다. 상商의 시조는 설契(또는 설卨)이며 건乾이라 쓰기도 하는데, 설은 황제黃帝의 증손 제곡帝嚳의 두 번째 부인인 간적簡狄이 현조玄鳥(제비)의 알을 삼키고 낳은 아들이라 하여 후세에서 현왕玄王이라 칭하기도 한다.

설은 우禹의 치수를 도운 공이 있으므로 제순帝舜이 사도司徒라는 벼슬과 함께 상商에 봉하고 자子라는 성姓을 주어 백성을 다스리게 하였다. 그로써 백성은 평화를 되찾았고, 성탕成湯(태을太乙) 시대에 이르러 상은 하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했다.

. 과 백: 『예기』 「교특생」편 ‘魂氣歸于天 形魄歸于地(혼의 정기精氣는 하늘로 백의 형해形骸는 땅으로 돌아간다.)’ 참고.

. 신선사상神仙思想: 신선神仙을 뜻하는 선仙의 본 자는 선僊이다. 지금까지 신선神仙에 대한 기록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갈홍(284년-363년)의 『신선전』과 『포박자』가 있는데, 이후 『포박자』는 도교 사상의 성립에 핵심적 요소로 자리한다.

그 외에 『사기』「봉선서封禪書」, 『열자』「탕문편湯問編」 등에서도 단편적으로 언급하고 있고, 후기의 황로학에서도 노자를 가탁한 신선사상이 보인다.

한편, 이와는 무관하게 신선 사상은 이미 고대 상商ㆍ주周 시대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왕조의 제齊나라와 초楚나라에서 특히 신선 사상이 성행했던 것으로 여겨지는바, 실제로 그 두 지역에서는 신선 사상과 관련된 그림, 벽화, 유물들이 다른 지역보다 많이 발견되고 있으며, 춘추 전국 시대 각지의 묘지 부장품에서도 신선사상을 표현한 그림들이 적잖게 출토된다.

 

4. 『노자』의 개요

가. 인문학적 의미

참된 왕(곧 성인)이 도의 밝음을 참되게 깨우쳐 성인聖人의 자질을 갖춤으로써 천하는 자연의 섭리 같은 큰 질서로 다스려질 수 있는 것이며, 그로써 백성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사상이 시종 『노자』의 관통하는 주제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노자』는 왕을 위한 정치교본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왕도 하나의 인간이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개인의 인격 수양을 위한 지침서라 할 수도 있다.

노자는 우주대자연의 천연한 운행과 현상을 자연과학적인 시각으로 통찰함으로써 도와 덕을 파악하였고, 그 바탕에서 삶의 가치와 원리를 현실적 논리로 정리한 것이 ‘도덕사상’이다. 그로써 노자는 당시 세상의 주인을 귀鬼와 신神에서 인간으로 바꿔놓으며 인간을 하늘나라에서 지상의 세계로 구출해낸 것이다. 이는 당시 천제(곧 鬼와 神)가 지배하는 세계관에서 인간중심의 평등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인본주의 세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천제天帝나 신神은 인간이 스스로 창조해낸 존재이되 인간은 그에게 자신을 내맡기고 지배당하고 있다면서 세상의 주인이 천제나 왕이 아니라 곧 백성이고 모든 인간은 누구나 존귀하고 평등하다는 것을 2500여 년 전에 이미 노자는 ‘도와 덕’이란 주제로 『노자』란 책에 정확히 기록하였던 것이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야 귀신이나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에 가까운 일이지만 노자 당시에는 천제나 신의 의미가 해나 달의 존재만큼 엄연하고 명백한 현실이었던바 천제天帝와 천자天子(왕)의 권위를 정면으로 부정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노자가 세상의 밖으로 은둔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숨은 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노자를 찾아본 젊은 공자가 그를 일컬어 용과 같다고 말한 것도 어쩌면 이를 두고 한 말인지 모르며, 기존의 선도仙道적 이념과 타협하고 소요유逍遙遊를 읊조리며 유유자적하던 장자莊子의 머릿속 까맣게 비어있는 부분일 수도 있다.

동양의 인문학 역사는 노자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고 해도 결코 과하지 않을 것이, 노자는 개인의 삶과 정체성에 대하여 천연한 그대로를 관조하면서 ‘나는 누구이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결국 인간 삶은 처음과 끝이 무엇인지’를 단아한 어조로 그 바탕에서부터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노자』는 이처럼 성인이 직접 저술하여 전하는 최고最古의 철학서이자 그 자체가 인문학의 기원적 역사이다.

 

나. 구성과 판본

①. 전체의 구성

현존 통행본으로 『노자 도덕경』이라 불리는 노자의 글은 본래 전체가 약 5천여 자의 문장으로 각 장의 구분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노자』라고 불리다가 『하상공장구』이후에 현재의 형태로 분장되어 상권에는 「도경」, 하권에는 「덕경」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노자』 전체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으로 다섯 장을 꼽는다면 대체로 「도경」의 제1장ㆍ제14장ㆍ제16장ㆍ제21장ㆍ제25장이 된다. 이 부분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아마도 노자를 안다고 말해서 크게 잘못이 없다.

이 중에서 다시 셋을 꼽는다면 제14장ㆍ제16장ㆍ제21장으로 말할 수 있으며, 둘로 한다면 제14장ㆍ제16장이 되고, 단 한 장으로는 제16장이 된다. 그리고 제16장을 네 글자로 압축한다면 정靜ㆍ명命ㆍ상常ㆍ명明으로 말할 수가 있다. 즉, 『노자』 전체를 단 네 글자로 줄여 말한다면 정ㆍ명ㆍ상ㆍ명이라고 요약할 수가 있는 것이다.

상권인 「도경」은 이미 그 자체로 한편의 완전한 논문이 되고 있다. 만물의 근본바탕을 직시하는 청아한 정신세계,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관통하며 일관된 주제를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군더더기 없는 논리체계, 명쾌하면서도 단아한 문체와 절제된 용어선택 등으로 볼 때 다수의 견해가 혼재할 여지는 극히 적어 보인다.

『노자』의 제1장부터 제6장까지는 대체로 「도경」의 서론으로서 도의 상자연常自然한 속성과 그 모습에 대한 설명이다. 이름(名)에 의한 상대적이고 주관적 관념 그리고 그에 따른 욕망과 집착은 ‘도의 실질’에 다가가는데 있어서 결정적 장애요인이다. 사욕과 집착이 없는, 즉 이름 없는 소박함으로 사물의 근본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도를 이해하는 기본이라 역설하고 있으며, 끝 장인 제37장에서 ‘無名之樸’이라 하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를 강조한다.

제7장부터 제31장까지가 본론이다. 제7장-제16장은 도의 실질 그리고 그 도에 다가가기 위한 기본요건이나 요체에 대한 설명이다. 제17장-제21장은 대도, 즉 우주대자연의 섭리와 같은 도가 덕으로 이어지는 이치를 설명한다. 제22장-제25장은 우주대자연의 섭리 같은 도가 사람의 도(곧 참된 덕)로 연결되는 이치이다. 제26장-제31장은 도의 천연함을 그대로 좇아서 (왕이) 참된 덕을 행하는 사례들을 열거하고 있다.

제32장부터 제37장까지는 결론부분으로 다시 한 번 더 상자연한 도의 속성과 그 실태를 강조하면서 「도경」을 마무리한다. 무한히 광원하고 심오한 도는 이 세상 아주 깊숙한 곳에서 언제 어디에서나 끊임없이 작용하면서도 스스로 드러나지 않으며, 미약한듯하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다.

「덕경」은 「도경」과 달리 왕이 백성의 지도자로서 덕을 참되게 이행하는 문제를 핵심으로 하여 상당히 구체적이며 상대적으로 많은 일상의 소재들로써 다루고 있다. 그 때문에 「도경」의 내용을 부연하는 부분도 가끔씩 눈에 들어온다.

인간이 도를 직접 행할 수는 없다. 다만 도의 밝음을 사람이 그대로 좇아 행하는 것이 사람이 행하는 도이다. 사람(성인)의 도란 상자연常自然한 하늘의 작용원리를 인간이 그대로 좇아 이행하는 것을 말하며, 이를 참된 덕(상덕上德)이라한다. 이 상덕이야말로 천하를 아우르는 성군의 본분이다.

「덕경」 역시 「도경」에서처럼 시종 일관된 논지와 정연한 논리, 단아한 문체, 절제된 용어선택 등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보다 산문적인 어투와 이따금씩 「도경」의 내용을 부연한다는 정도의 느낌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도경」과 「덕경」은 동일인의 저술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는데 상당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명쾌하고 탄탄한 전개방식과 일관된 논지, 단아하고 절제된 문체와 용어선택 등으로 볼 때 다수의 사람이 관여했을 가능성은 아주 적어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도경」의 저자는 ‘노담老聃’이고, 「덕경」의 저자는 노담을 직접 사사했거나 노담의 직후 세대로 추측되는 ‘노래자老來子’라는 가정은 어떨까 자문해본다.

 

②. 판본

『노자』의 판본은 현재까지 전문이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전해지는 것으로는 1993년 중국 호북성湖北省 형문시荊文市 곽점촌郭店村 초묘에서 발굴된 ‘죽간’이 전국시대 중엽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어 가장 오래 되었다. 그리고 1973년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의 한묘에서 발굴된 ‘백서본 갑ㆍ을’이 전국시대 말기에서 한나라 초기에 법가의 입장에서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그 다음이 되며, ‘하상공본’과 ‘왕필본’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현전하는 『하상공본 노자』는 대체로 동한시대 또는 그 후대에 도교 교단에서 저작에 관여했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며, 현행 『왕필본 노자』의 경우 대체로 위나라 정시正始 년간(240년-249년)에 활동한 왕필의 저작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사기』 「악의열전」에는 노자학문에 밝은 전국시대 말기 인물로 ‘하상장인河上丈人’을 언급하고 있는데, ‘하상장인’이 「하상공장구」를 저술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별도로 말이 없다.

서진 무제武帝 때의 인물 황보밀皇甫謐(215년-282년)이 지었다는 『고사전高士傳』에는 ‘전국시대 말기의 하상장인이라는 사람이 노자의 도술에 밝았으나 스스로 이름을 숨기고 강가에 살며 「노자 장구」를 지었으므로 그를 ‘하상장인’이라 불렀다고 한다.‘고 언급한다.

갈현葛玄(164년?-244년?)이 지었다는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 서결序訣에는 「하상공 장구」의 저자로서 서한西漢 초기 문제文帝(재위 BC 160년-BC 157년) 때의 인물로 ‘하상공’을 언급하면서 ‘하상공은 「노자도덕경 장구」 2권을 지어 문제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상을 종합하면 『사기』 ‘악의열전’에 나오는 ‘하상장인’과 『고사전』에 나오는 ‘하상장인’은 결국 동일인으로 「노자 장구」의 저자가 된다. 또, 『사기』 및 『고사전』의 ‘하상장인’과 갈현의 『도덕경서道德經序』의 ‘하상공’은 다소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그 행적이 유사한 등으로 동시대의 사람일 개연성이 다분하며, 그 셋이 모두다 동일인일 가능성 또한 높다. 결국, 『고사전』에서 말하는 「노자 장구」가 「하상공 장구」의 당초 원본일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 보인다.

또한, 『사기』 「악의열전」에 나오는 ‘하상장인’은 실제로 도가의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시 ‘도가’는 대체로 신선사상의 입장에서 『노자』를 받아들이고 있었으므로 본래의 『노자』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현전하는 「하상공 장구 노자」에는 여러 단계의 하늘ㆍ원신ㆍ원기ㆍ양생술 같은 선도의 개념이 다분하다. 이는 동한 중후기 무렵에 성행한 신선가神仙家나 도교 교단에서 서한 초기의 인물인 ‘하상공’의 이름을 빌려 직접 「하상공 노자」의 저작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에 힘을 더하는 부분이다.

『노자』 같은 고전에 있어서 판본이라든가 자구의 오탈에 관한 연구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노자』의 해석에 있어서는 기존의 통행본 중 어느 것으로도 그 원의原義를 충분히 알 수가 있는바 당장 중요한 일은 우선 노자의 원의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고, 그리하여 『노자』의 전체 의미가 분명해진 다음에 자구의 오탈이나 판본 같은 문제들을 살피는 것이 상식이고 순서일 것이다. 『노자』를 찬찬히 해석해보면 지엽적인 글자 몇 자로 인하여 『노자』 전체의 의미나 큰 흐름이 별로 달라지지 않음을 알 수가 있는데, 그럼에도 사람들은 판본이나 자구의 오탈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고전의 경우 발굴된 자료의 기록년도가 오래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히 중요하며 신뢰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자』의 가장 오래된 필사본으로 거론되는 곽점촌의 ‘죽간(노자)’이나 ‘백서본 갑ㆍ을’의 경우 단지 필사년도가 다른 판본보다 앞선다는 것만으로 『노자』의 원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가?

필사자의 성향이나 기술동기, 목적 등이 불명확한 상태에서는 필사된 연도의 원근 못지않게 논지의 일관성이나 순수성, 완성도 등이 보다 합리적인 판단요소일 수 있다. 어차피 『노자』의 원본이 아니라면, 그리고 원본을 가감 없이 그대로 필사한 것으로 확인된 것이 아니라면 단지 연도의 원근보다는 어떤 사람이 어떤 『노자』를 보고 어떤 동기와 목적으로 어떤 환경에서 필사했는가가 더욱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현존하는 통행본 『노자 도덕경』 전체를 통틀어 그 중 핵심이 되는 다섯 장을 꼽는다면 대체로 「도경」의 제1장ㆍ제14장ㆍ제16장ㆍ제21장ㆍ제25장을 말할 수가 있다. 그 중에서 다시 셋을 고른다면 제14장ㆍ제16장ㆍ제21장이 되며, 둘로 한다면 제14장ㆍ제16장이고, 단 한 장으로는 제16장이 된다. 그리고 제16장을 네 글자로 압축한다면 정靜ㆍ명命ㆍ상常ㆍ명明으로 요약할 수 있는바, 이는 곧 『노자』 전체를 관통하는 노자의 참뜻을 정ㆍ명ㆍ상ㆍ명이라는 단 네 글자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자』의 상권인 「도경」은 이미 그 자체로 한편의 완전한 논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노자 도덕경』의 제1장-제6장은 「도경」의 서론에 해당하며 제7장-제31장장은 본론, 제32장-제37장은 결론에 해당한다. 하권인 「덕경」은 대체로 「도경」의 내용을 부연하며 도에서 덕이 나오는 이치, 즉 대도가 사람의 도로 연결되는 원리를 설명한다.

이처럼 「도경」과 「덕경」의 의미와 논리구조를 제대로만 파악한다면 「덕경」을 중시하여 「도경」보다 앞에 두었던 『노자』 백서본 갑ㆍ을에 어떠한 목적과 의도가 작용하였을지 그 개연성을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곽점본 죽간 노자’의 경우 발굴당시 대부분의 유가儒家관련 부장품 중 일부로서 노자관련 자료가 발견되었는데, 글자 수는 현행본의 절반이 되지 않는 2000여 자로 「도경」의 내용과 「덕경」의 내용이 혼재하고 있으며, 「도경」의 시작인 제1장과 『노자』 전체의 핵심이 되는 제14장이 통째로 빠져 있다고 한다.

『노자』 제1장은 도경의 마지막장인 제37장과 연결되어 있다. 1장과 37장은 각각 ‘名(이름)’으로 시작하여 ‘名(이름)’으로 끝맺으면서 도경의 앞뒤 표지역할을 하고 있다. 뿐 아니라 ‘名(이름)’에 대한 이해는 제14장의 도기道紀(도의 근본바탕)에 접근하는 핵심이 된다. 사물을 상대적 관념으로 분별하는 ‘이름’이야말로 도에 있어 결정적인 장애요소인 것이다.

제14장은 ‘道紀(도의 근본바탕)’를 설명하고 있으며, 『노자』 전체를 통틀어 제16장과 함께 핵심을 이루는 부분이다. ‘도’와 ‘덕’을 논하면서도 정작 그 핵심이 되는 도의 근본바탕(道紀)에 대하여는 아무런 말이 없는 것이다.

만약 기존 통행본 『노자』의 제14장 ‘道紀’부분이 없는 ‘곽점본 노자’가 『노자』의 원본에 더 가깝다고 한다면 상권에 ‘도경’이라 이름을 붙일 명분 또한 없으며, 그것은 노른자 없는 계란이 노른자가 있는 계란보다 정상이라는 말과도 같다.

그 외에도 기존 통행본 『노자』의 일관되고 정연논리전개나 명쾌하면서 단아한 문체 등에 비해 곽점본 ‘죽간 노자’는 어딘가 느슨하고 산만하며 유가적 색채가 배어나는 등 기존의 통행본『노자』를 압도하는 믿음이 보이지 않는다.

죽간이 발굴된 분묘의 주인은 상사上士의 신분으로 태자의 학문교육을 담당한 스승이라고 하며, 출토된 노자관련 죽간은 많은 유가儒家의 부장품 중 일부였다고 하는바 아마도 개인적인 목적이나 특정인물의 교육을 위해 유가적 입장에서 『노자』를 편집한 경우일 수도 있다.

『노자』의 원의原義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지엽적인 자구의 오탈이나 판본 등의 문제에 집착하는 것은 선 목수가 연장만 나무라는 격이다. 그러면서 저마다 원래의 『노자』를 복원한다고 나선다면 이는 마치 생선을 썰던 어촌의 어부가 어느 날 갑자기 병원의 수술실에 나타나 심장병환자를 수술하겠다고 나서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존의 『노자』를 곽점본에 따라 수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상당한 세월이 지난 뒤 어쩌면 본래의 『노자』는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다. 해석에 있어서 주의할 점

수많은 학자들이 오랜 옛날부터 『노자』를 해석하여 왔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견해들은 더욱 분분해지고 본래의 노자에 가까워지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멀어져간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많은 원인이 있을 수 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이면서 간과하기 쉬운 몇 가지를 들어본다.

첫째, 『노자』에는 ‘성인’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노자』에서 ‘성인聖人’은 대체로 태상太上ㆍ군자君子ㆍ선인善人ㆍ선위사善爲士ㆍ상사上士 등과 함께 ‘(옛날의) 참된 임금’의 뜻으로 쓰인다.

또한, ‘성인聖人’은 『노자』에서 상당부분은 대화당사자인 왕王을 인주人主이며 하늘의 아들(天子)로 대접하여 과거 성인을 빗댄 3인칭어투로 예우하는 의미로 쓰인다. 즉, 3인칭대명사를 사용하되 실제로는 2인칭의 당사자를 예우하고 있는 것이다. 『노자』에서 ‘나 여(予, 余)’ 혹은 ‘너 여(汝)’가 전혀 사용되지 않은 것도 이와 같이 노자 스스로 임금에 대하여 자신을 대단히 삼가고 절제하는 입장 때문이다.

둘째, 『노자』에서 ‘善’은 대부분 ‘참된, 참됨, 참된 것’ 등의 뜻으로 쓰였다. 혹은 아주 드물지만 ‘~잘, 능숙한’ 등으로 쓰이는 예가 있기도 한데, 『장자』나 『논어』 등에서도 ‘善’의 용례는 대체로 비슷하다. 다만 『노자』에 비해 ‘잘’, ‘능숙한’ 등으로 쓰이는 횟수가 보다 많아진다는 차이가 있으며, 후대에 내려오면서 더욱 그러한 경향을 띠게 된다.

고대 문자인 금문金文에서 ‘善’은 양을 제물로 두고 두 사람이 하늘에 맹세하며 ‘사실 그대로를 꾸밈없이 고한다.’는 의미의 문자이다(『설문해자 주(단옥재)』 및 『한자의 세계(시라카와 시즈카)』 참고). 후대로 내려오면서 ‘善’은 인품과 학식을 갖춘 착한 사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면서 ‘유능한, 능통한, ~잘’ 등으로 의미가 변전되고, 최근에는 ‘어리석은 착함’의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무능한’ 뉘앙스를 띠기도 한다.

‘善’은 자기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나 행실, 성정性情 등을 (하늘에 맹세코) 꾸밈없는 그대로 드러내는 참됨이다. ‘眞’은 사물의 실질적 참됨 또는 대상이 되는 사물과 관련한 사람의 천연한 참됨이며, 지극한 것으로는 어린아이의 천진天眞함이 있다.(제21장 ‘其精甚眞’ 참고). ‘忠’은 (상대방에 대해여) 마음으로부터 정성을 다하는 참됨이다.

‘善’이 능통함ㆍ능숙함 등의 뜻으로 쓰이는 용례는 후대의 『하상공장구 노자』 제67장 ‘若肖久矣’에 대한 주석 ‘肖 善 謂辯慧也(초는 능통함이며, 능변의 지혜를 일컫는다.)’가 보이며, 왕필의 「노자지략老子旨略」에서는 ‘善速在不疾(참으로 빠른 것은 급하지 않음에 있다.)’, ‘不在善察(능통하게 잘 살피는데 있지 않다)’, ‘巧利 用之善也<교묘한 이익은 (재주의) 씀이 능통한 것이다.>’ 등에서 흔하게 볼 수가 있다.

(善: 2,8,15,20,27,30,41,49,50,54,58,62,65,66,68,73,79,81장)(제20장 善ㆍ惡 및 제15장 善爲士, 제27장 善人ㆍ不善人, 제62장 善人ㆍ不善人ㆍ不善 참조)

셋째, ‘者’는 옥편에 ‘어조사 자, 놈 자, 것 자, 이 자’ 등으로 나와 있는데, 『노자』에서는 주로 ‘~은(는)’, ‘~면’, ‘~것’ 등의 의미로 쓰인다.

‘者’는 본래 ‘가리어 숨기다’ 혹은 ‘덮다’라는 의미의 글자로서 사람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者’는 고대 금문金文에서 ‘왈曰(신에게 축원하는 말인 축고祝告의 문서를 넣어둔 용기)’ 위에 ‘(어떤 것을 가리어 숨기는) 무성한 수풀’의 모양을 더한 글자이다.

고대에는 이족의 신이나 악귀 등에 대하여 저주詛呪나 주술呪術을 행하는 일들이 상당히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者’는 그렇게 주술을 행한 축문을 나무로 무성하게 울타리를 둘러 숨긴다는 의미의 글자이다. 그로부터 대상을 저주한 그 축고의 문서, 즉 ‘가리어 숨겨둔 어떤 것’을 의미하게 되었던바 그것이 ‘者’의 본래 의미이다.(『한자의 세계(시라카와 시즈카)』 참고)

저주나 주술의 대상은 이족(적)의 장수나 우두머리가 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者’는 사람을 지칭하는 의미로도 쓰이게 되나, 그런 경우 ‘사악한 적’ 또는 ‘이족 포로’, ‘노예’ 정도의 뜻이 된다. 그 옛날에 ‘민民(백성)’은 정벌하여 복속시킨 ‘이족의 사람’을 의미했다. 처음에 ‘민’은 종속관계의 하등신분이었다가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씨족의 질서가 대중화되면서 점차 평민화한 것이다.

『노자』에서 ‘者’가 사람을 가리키는 용례는 어떤 형태로든지 제74장 이외에는 없으며, 제74장에서도 비록 사람에 대한 지칭으로 쓰이긴 하였으나 이를 비인격적인 상황으로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다.

(者: 1,3,7,15,22,23,24,27,29,30,31,33,61,68,70,74장)(27,33장 人ㆍ者 및 68장 士ㆍ者는 한 문장에 같이 쓰임)(1,61,73장 兩者 및 60장 兩 비교참조)

넷째, ‘’는 옥편에 ‘나 오’, ‘그대 오’, ‘글 읽는 소리 오’ 등으로 나와 있고, 『설문해자』에 ‘吾’는 ‘口(구)’+‘五(오)’로 된 글자로서 ‘口’는 뜻을, ‘五’는 소리를 나타낸다고 하며 ‘我(나)를 스스로 칭함이다’라고 하였다.

한편, 갑골문ㆍ금문에서 ‘吾’는 ‘口(신에 대한 축고祝告의 용기)’ 위에 ‘五(하늘에서 내려오는 신의 기운 혹은 신의 모습)’를 올려놓은 모양이다. 이는 ‘신의 뜻을 맞아 받들고 있는 상황’으로서, 그로부터 ‘(상대방에 대하여) 삼가는 나’로 인신引伸 혹은 가차假借된 것이라 이해된다.(『한자의 세계(시라카와 시즈카)』 참고)

실제로 ‘吾’는 대외적으로 자신을 삼가면서 상대방을 존대하는 의미의 ‘나’로 쓰이고 있음을 현존하는 고전의 다양한 구절에서 흔하게 발견할 수 있으며, 현재의 우리말에도 우리 집, 우리 아버지, 우리 선생님 등으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자신을 삼가는 의미가 남아있다.(『장자』 ‘인간세’ 편 제3-1절 ‘吾國ㆍ吾身’ 참고)

또, 『장자』 ‘제물론’편에 ‘吾子’라는 말이 나오며, ‘천운’편에는 노자와 공자의 대화를 소개하는 내용 중에서 노자가 공자와 대화하면서 공자를 ‘오자吾子’라 부르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吾子’는 ‘우리 선생님’ 혹은 ‘거기 선생님’ 정도의 어투로서 한 학문學門의 스승인 상대방을 친근하게 예우하는 어투이다.

그처럼 ‘吾’는 자기를 낮추면서 상대방을 대접하여 ‘나’를 칭하는 것이 본래의 쓰임인데, 가족이나 특정 집단 등 몇 명의 무리를 대표하여 대외적으로 ‘나’를 칭할 때는 ‘우리’가 된다.

한편, 대화상대자를 우호적으로 대접하는 의미에서 ‘나’와 함께 ‘우리(吾)’라 칭하며 ‘나’라는 1인칭을 대신하거나, 혹은 그런 식으로 대화상대자를 예우하여 ‘그대(You)’의 2인칭을 대신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용례를 제49장 및 제74장에서 볼 수 있다.

『노자』에서 ‘나 여(予, 余)’ 혹은 ‘너 여(汝)’가 전혀 사용되지 않은 것도 이처럼 노자 스스로가 자신을 대단히 삼가고 절제하는 입장 때문이다.

≪참고: ‘아’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자아自我의 정체’로서 ‘나’이다.<『설문해자』중 ‘我, 施身自謂也(‘我’는 시행하는 몸을 스스로 일컬음이다.)’ 및 갑골문ㆍ금문의 ‘我(‘我’는 제사에 희생으로 쓰이는 양을 손질하는 톱니모양의 절단도구의 형태이며, 지금의 ‘我’는 그로부터 가차假借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

이에 대해 ‘기’는 외형적으로 타인과 구별되는 존재로서 ‘자기’ 혹은 ‘그’가 된다. 또 ‘자’는 코로 숨을 쉬며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생활의 주체로서 ‘자신’이며 몸의 생리적 작용으로서 의미가 강하다. ‘신’은 몸을 펴고 구부리며 물리적으로 작용하는 ‘자신’으로서 신체의 물리적인 기능과 관련이 있다.(『설문해자 주(단옥재)』 참고)

한편, ‘子’는 상商왕조의 무정武丁 때 아我ㆍ여余 등과 함께 왕자의 호칭으로 사용되었던 글자이다. 갑골문에서 ‘子’는 신을 대신하여 제사를 받는 사람(후대의 시동尸童)의 정면모습을 본뜬 글자이다.≫

(吾: 4,13,16,21,25,29,37,42,43,49,54,57,69,70,74장)(我: 17,20,42,53,57, 67,70장)(己: 81장)(自: 22,23,24,32,33,34,37,39,57,64,72,73장)(身: 9,13, 26,44,52,54장)

다섯째, 귀鬼와 신神의 의미나 도道와 덕德에 관한 명확한 개념이 중요하다. 『노자』나 『주역(십익)』, 『논어』 등에서 ‘神’은 대체로 천지대자연과 같은 천연한 정신 즉 지극히 맑고 순수한 정신을 의미하며, 그로부터 성인의 지극한 정신이나 청정淸靜한 정신精神 등으로 사용된다. 이는 오늘날 한의학의 교과서로 통하는 『동의보감(허준)』이나 한의학에서 쓰고 있는 정精, 기氣, 신神, 정기精氣 등의 개념과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神’이란 본래 상제上帝(또는 천제天帝)의 사자使者를 뜻하는 글자로서 바람이나 비, 번개, 큰 산과 강과 호수, 계곡 등처럼 대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자연물을 지칭하였다. 이는 특별한 동식물이나 거대한 자연물을 하늘로부터 특별한 생명력을 부여받은 독립적 유기체로 보는 관점이며, 그 독립적 생명활동을 주관하는 ‘대자연의 신성한 정기精氣(곧 신령神靈)’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에 있어서 그것은 곧 천연한 그대로의 정신精神이며, 맑고 순수한 성품性品(천성天性)이자 영靈(영혼靈魂)인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신神을 정신精神이라 하고, 죽어서는 그것을 영靈이라 한다. 즉,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다가 죽어서 내가 왔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영혼靈魂(상나라 때 왕조의 선대 조상의 영혼은 귀鬼)인 것이다.

여섯째, 대부분의 『노자』 주석들이 ‘有’와 ‘無’의 의미를 형이상학적으로 풀이하는바, 이는 『장자화한 노자』에서 비롯한 해석이다. 『노자』에서 ‘無’는 마음의 빔을 의미하는 ‘허虛’와도 정확히 구분되며, ‘공空(텅 빔)’이란 용어는 애초에 사용되지 않았다.

『노자』에서 ‘有’와 ‘無’는 글자그대로 어떤 현상이나 물체의 ‘있음’과 ‘없음’을 뜻하는 형이하학적인 개념이다. 특히 제14장에서 ‘無’는 ‘有’가 아직 현상이나 물체로 드러나기 이전의, ‘보이지 않는 상태로 존재하는 어떤 실질’을 뜻하여 ‘도의 근본바탕(道紀)’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소위 ‘노장사상’이라 하며 장자를 노자의 도를 계승ㆍ발전시킨 인물로 꼽고 있다. 또한 그러한 『장자』를 두고 혹자는 학술적 입장에서 미흡한 『노자』를 뛰어난 철학적 경지로까지 승화시킨 천재라 극찬하기도 한다.

마음의 빔을 지극하게 하여 자연무위를 추구하며, 만물의 근본은 하나로 같은바 모두가 고르고 평등하다는 민본주의적 입장 등 『장자』는 얼핏 『노자』와 매우 흡사한 모습으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노자와 장자 그 두 사람이 의도하는 도의 원리와 그에 접근하는 방식, 추구하는 궁극의 목적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장자』는 맹자와 거의 동시대 사람인 장주가 지은 책으로 『노자』에 비해 전체적으로 선도仙道적 요소가 다분하며, 그 중에서 ‘제물론’편은 특히 형이상학적인 논리로 전개된다. 『장자』에서 선도적 요소를 중심으로 『노자』를 해석하면 그대로 『하상공 주 노자』가 되며, 또 『장자』 제물론에 왕필의 ‘玄’의 개념을 합성한 논리로 『노자』를 해석하면 곧 『왕필 주 노자』가 된다. 사실 왕필의 ‘현학玄學’은 그렇게 기초하였던 것이다.

가령, 『노자』제42장의 원문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에 대하여 왕필은 ‘萬物萬形 其歸一也 何由致一 由於無也 由無乃一 一可謂無 已謂之一 豈得無言乎 有言有一 非二如何 有一有二 遂生乎三 從無之有 數盡乎斯 過此以往 非道之流’라고 주석하였는데, 이는 『장자』 ‘제물론(제1-18절)’편의 ‘天地與我竝生 而萬物與我爲一 既已爲一矣 且得有言乎 既已謂之一矣 且得無言乎 一與言爲二 二與一爲三 自此以往 巧歷不能得 而況其凡乎 故自無適有 以至於三 而況自有適有乎 無適焉因是已’ 부분과 그 내용이나 형식이 매우 닮아있다.

또한, 『하상공장구 노자』에서 선도의 부분을 제외하고 그 자리를 현학의 논리로 대체하면 곧 『왕필 주 노자』가 된다. 『하상공장구 노자』를 펴놓고 거기에서 하상공 주석의 선도적 개념을 모두 제거한 후 그 자리에 ‘숭본식말崇本息末’이나 ‘이무위본以無爲本ㆍ이무위용以無爲用’ 등의 현학 논리를 대입해보면 정확하게 왕필의 주석이 된다는 것이다.

『하상공 주 노자』나 『왕필 주 노자』는 본래의 『노자』를 『장자』의 논리로 해석한, 곧 『장자화한 노자』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일곱째, 중국을 중심으로 한 한자 문화권에서는 귀鬼와 신神 그리고 도道와 덕德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서 다양한 삶의 문제들에 접근한다면 동양철학의 뿌리와 줄기는 그대로 넝쿨째 드러난다.

노자는 우주대자연의 천연한 운행원리를 자연과학적인 시각으로 통찰하며 물아일체의 입장에서 도와 덕을 파악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문리文理적 사변이나 형이상학적 추론에 의한 상대적 분별지로 『노자』에 접근한다. 명리名利를 추구하는 세속의 통념이나 학문적 사변으로는 『노자』를 관통하는 소박ㆍ검소ㆍ상자연ㆍ자유ㆍ평등ㆍ자율ㆍ화광동진의 참된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 개인의 사사로움을 온전히 내려놓음으로써 천연한 본성으로 스스로를 경계할 수가 있고, 그러한 물아일체의 입장에서 만물의 근본바탕을 천연한 그대로 직시하여 ‘도의 밝음’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의 빔을 지극하게 하고 성정을 고요히 함으로써 스스로 참된 본성을 닦아 사물의 근본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있는 것이며, 그 물아일체의 바탕에서 한 치 어김도 없는 무한한 섭리로 도도히 운행하는 우주대자연의 유기적 실체를 통찰하였던바, 이것이 곧 ‘도道(의 실체)’이다.

 

5. 道와 德 그리고 無와 一

가. 『노자』의 道와 德

노자의 도는 한마디로 ‘천지자연이 순행하여가는 법도, 즉 우주대자연의 천연한 순행원리’를 말한다. 노자는 이를 물아일체의 입장에서 관찰하였고, ‘대도大道’ 또는 ‘천지도天之道’라고 하였다.

머리의 텅 빔을 지극히 하고 마음의 고요함을 독실하게 지킴으로써 노자는 스스로 참된 본성을 닦아 사물의 근본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였고, 그러한 물아일체의 바탕에서 한 치도 어김이 없는 무한한 섭리로 엄연하게 운행하는 우주대자연의 어떤 유기적인 실체를 통찰하였던바, 이것이 곧 ‘도道(의 존재)’이다.(제14장 및 제16장 靜ㆍ命ㆍ常ㆍ明, 제25장 道法自然ㆍ獨立不改 참고)

개인의 사사로움을 온전히 내려놓음으로써 천연한 본성으로 스스로를 경계할 수가 있고, 그러한 물아일체의 입장에서 ‘도의 밝음’에 다가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로써 왕(곧 성인)은 모든 것을 긍정하고 포용하며 천하를 무위로 아우르게 되는바 바야흐로 세상의 질서는 천지자연의 섭리처럼 조화롭게 안정되는 것이다.

덕德이란 그러한 도의 밝음을 인간이 그대로 좇아 참되게 이행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직접 도를 행할 수는 없다. 도의 밝음을 사람이 그대로 좇아 행하는 그것이 사람(성인)이 행하는 도이며, 이는 곧 참된 덕(上德)이다. 상덕이야말로 천하를 아우르는 성군의 본분이며, 만물이 나서 늙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모두 德의 운영에 따른다. 성군은 그러한 섭리를 참되게 따를 뿐이며, 이를 현덕이라 이른다.(제10,51장 玄德 참고)

그로써 왕은 천지자연의 섭리 같은 조화로운 질서 속에서 모든 것을 긍정하고 포용하며 백성과 더불어 자유롭게 살아가고, 백성은 모두가 부귀권세를 모른 채 그저 생업에 충실하며 소박하나마 맛나게 먹고 맵시 있게 입으며 화목하게 이웃과 마음껏 자유로운 일상을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게 사람은 자유롭게 천수를 누리다가 다시 道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도덕사상’이다.

참고 1. 주역의 道: 『주역』에서 ‘道’는 (하늘이 시작하는 바로서) 우주대자연이 순행하여가는 법도, 즉 우주대자연의 순행원리를 말한다.(주역 계사상전 제5장 一陰一陽之謂道: 한 번은 음, 한 번은 양으로 하여 가는 것을 도라 일컫는다. 즉, 밤이나 가을ㆍ겨울 등은 음에 해당하고, 낮ㆍ봄ㆍ여름 등은 양에 해당한다. 밤이 지나면 낮이 되고 봄이 되면 여름이 오며 가을이 되어 겨울로 가는 등으로 한 번은 음, 한 번은 양으로 하여 가는 이치를 ‘도’라 한다.)

德’은 ‘천지대자연의 천연한 속성이나 작용과 같은 도의 밝음에서 비롯한 행동’, 즉 도의 밝음을 인간이 참되게 좇아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다.

2. 경문의 사례: 보고 있으되 보지 못하고 듣고 있으되 들을 수 없으며 쥐고 있으되 가질 수 없는 어떤 것이 (함께) 섞이어 하나로 되어있는데, 하늘과 땅이 있기 이전이다.

그것은 한없이 크고 심원하여 밝고 어두운 형체로 드러나는 어떤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이어져 (어떻게 구별하여) 이름을 이를 수가 없다. 결국, (그것은) 다시 ‘無物(물질이 없음)’로 돌아간다. 이를 정상情狀 없는 정상이며 물질이 없는 형상形象이라 하는데, 있는 듯 없는 듯 홀연하고 경이롭다.

앞에서 맞아 그 머리를 보지 못하고, 좇아도 그 후미를 보지 못하는바 그 실체를 온전히 인식할 수는 없으나 실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반의 지각으로는 확인할 수 없으므로 이를 ‘無(없음)’라고 한다.

결국, ‘한데 섞이어 하나로 이루어진 그것’이 ‘無’이며, 그 ‘無’의 존재가 바로 ‘도의 근본바탕(도기道紀)’인 것이다.

‘無(도의 근본바탕)’에서 ‘有(天ㆍ地)’가 생겨나오고, 만물은 ‘有(天ㆍ地)’에서 생겨난다. ‘有(天ㆍ地)’에서 상象ㆍ물物ㆍ정精이 생겨나 그 셋은 만물을 구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有’는 곧 天ㆍ地를 뜻하며, ‘천ㆍ지’는 도를 그대로 좇아 만물을 낳아 먹여 기르는 ‘德’을 의미한다.

도는 덕으로 하여금 만물을 이루게 하고, 덕은 도를 그대로 좇아 생명의 생성에 직접 관여한다. 도에서 비롯한 덕이 만물을 생기게 하며, 도를 그대로 따르는 덕만이 만물을 낳아 먹이고 기르고 오로지 도를 온전히 이행할 수 있다(上德). 만물이 나서 늙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모두 德의 운행에 의한다.

도에서 나와 ‘有(천지만물)’가 되면 이는 이미 도가 아니므로 도에서 나온 만물은 즉시 덕의 범주에 귀속된다. ‘도를 잃은 후에는 덕’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과정들을 말하는 것이다.

(제1장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제4장 象帝之先, 제10장 生之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제21장 孔德之容 唯道是從, 제38장 失道而後德, 제40장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제41장 道隱無名 夫唯道 善貸且成, 제42장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제51장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ㆍ是謂玄德 참고)

뒤섞여 이루어진 (어떠한) 물질이 천지보다 먼저 있었는데, 고요하고 그윽하게 독립적으로 있으며 다시 고침이 없고, 두루 행하나 위태롭지 않으니 이는 천지의 어미라 할 수 있고 천하 만물초목이 존재하는 근본이 되는 ‘道’이다.(제25장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도는 크고 광원하여 멀리 (운행하여) 가고 가면 되돌아오며 늘 한결같은 작용으로 스스로 그러하게 있는 ‘常自然한 존재’이다.(제25장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故道大.. 및 道法自然)

ㆍ 도는 (세상의) 깊숙이에 있으면서 (늘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으나 (사람들은 그것이) 가득차지 않은 것으로 의심한다(제4장 道沖而用之或不盈). 도의 작용은 미약한 듯하다.(제40장 弱者道之用) 도는 (분별하는) 이름이 없이 숨어 있다(제41장 道隱無名).

ㆍ 크게 가득 찬 도는 (너무도) 깊이 있는듯하나 그 작용은 (언제까지고) 다함이 없다(제45장 大盈若沖 其用不窮). 도의 작용은 심오하고 느긋하여 천하를 운용함에 있어서 바쁘지 않고 차근차근 순리에 따라 때가 되어야 이룬다(제41장 大器晩成). 도는 만사를 느긋하게 진행하여 길게 늘어진 듯하나 한 치도 어김없이 참되게 도모한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성글지만 아무리 은밀한 일도 놓치지 않는다(제73장 繟然而善謀 天網恢恢 疎而不失).

도는 이 세상 어떤 일이든 하지 못함이 없고 또 (도가) 하지 않음이 없다(제37장 道常無爲而無不爲). (상대적 관념으로 분별하는) 이름(명)이 없는 박(樸, 소박한 근본바탕)이야말로 도에 이르는 유일한 방편이다(제1,37장 ‘名’ 및 제16장 참고).

ㆍ 도의 작용은 부지런하지 않다. 도는 담담하여 아무 맛이 없으며, 보고 있으되 완전하게 볼 수 없고 충분히 들을 수도 가질 수도 없다. 도의 작용은 흡족하지도 않다. 도는 인간이 사사로이 도구나 기술처럼 명리를 위해 소유하거나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道는 무한한 섭리에 의하여 스스로 독립적으로 지극히 크고 심원하게 작용하는 것이다.(제6장 用之不勤, 제35장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旣, 제25장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ㆍ 도는 만물이 태어난 속이며, 의지하여 돌아가는 근본이다(제62장 道者萬物之奧). 덕의 운행에 따르던 만물은 죽으면 다시 도로 돌아간다(제34장 萬物歸焉而不爲主, 제40장 反者道之動, 제50장 出生入死).

<도道란 결국, 한 치도 어김이 없는 무한한 섭리로 도도히 운행하는 우주대자의 상자연한 어떤 존재를 말한다. 다만 피아이분의 상대적 관념으로 인식하고 규정하는 객체로서의 무한한 섭리가 아니라 내가 그 자연(우주)의 일부로서 서로 상관하고 있다는 물아일체의 입장에서 인식하는 무한한 자연력이다.

‘道’는 천지만물초목이 존재하는 근원이며 나 역시 그 일부로서 끊임없이 서로 상관ㆍ교류하고 있으나 우리는 다만 그것을 일상의 현실로 의식을 못할 뿐이다. 결국, 『노자』에서 ‘天之道’는 우주 대자연의 운행섭리로서 길(道)이며, ‘大道’ 또한 같은 개념이다.>

<덕은 도가 행하는 바를 그대로 좇아 행한다(제21장 孔德之容 唯道是從). 눈에 보이는, 덕의 운행모습은 오직 도 그것이 행하는 바를 그대로 좇는다. (즉, 덕이 도를 그대로 좇아 행하는 그것은) 도가 만물을 이루는 일로서 오직 경이롭고 오직 홀연하다. 홀황하여 그 중에 상象(형상形象)이 있고, 황홀하여 그 중에 물物(물질物質)이 있으며, 고요하고 어두운 중에 정精(생명)이 있다. 그 정은 매우 질진質眞하여 그 가운데 미더움이 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세상은 처음에 붙여진 그 ‘이름’으로 중보(뭇사람)를 인식한다. 나는 어떻게 중보의 실상實狀을 아는가? 바로 정精(천연한 그대로의 정기精氣, 곧 천연한 생명력) 이것으로 안다.>≫

 

나. 『노자』의 無와 一

『노자』에서 ‘有’와 ‘無’는 글자그대로 어떤 현상이나 물체의 ‘있음’과 ‘없음’을 뜻하는 형이하학적 개념이다. 특히 제14장에서 ‘無’는 ‘有’가 아직 현상이나 물체로 드러나기 이전의, ‘보이지 않는 상태로 존재하는 어떤 실체’를 뜻하는 ‘도의 근본바탕(道紀)’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즉, ‘無’는 엄연한 현실의 존재로서 도의 근본바탕인 것이다.

無’란 결국 무한한 우주대자연의 천연한 그대로의 존재이며, 이는 또 천지만물이 함께 존재하는 ‘근본바탕’을 의미한다. 그래서 천지만물은 도의 근본바탕에서 하나(一)로 있다고 하는 것이다.

『노자』에서 ‘一(하나)’은 만물의 근본바탕으로서 無(제14,42장) 혹은 천연한 본성(제10,22,39장) 등의 의미로 쓰이는데, 즉 피아가 구분 없는 물아일체의 순수한 정신으로서 하나(一)인 것이다.

제11장의 ‘一’은 단순한 하나의 숫자로서 一이다(제11,25,67장). 제14장의 ‘一’은 도의 근본바탕으로서 ‘無’를 뜻하며, 제16장에서 ‘常’은 결국 ‘一’을 뜻하는 말이다.(一: 제10,11,14,22,25,39,42,67장)

한편, 『노자』에서 ‘虛’는 단순히 마음의 빔을 의미하며, ‘有’로 드러나기 이전의 존재인 ‘無’와는 정확히 구분된다. ‘공空(텅 빔)’이란 글자는 『노자』에서 용례가 없다.

참고: 『노자』에서의 ‘無’만큼이나 불교원리에서 근본적 위치에 있는 글자는 ‘空’이다. ‘空’은 본래 그 뜻이 ‘혈穴(구멍)’이며, 공간적 개념으로의 ‘텅 빔’을 의미하는 문자이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에서 ‘空’은 물리적 공간개념으로서 ‘아무것도 없음’, 즉 ‘텅 빔(허공虛空)’의 의미이다. 그리고 그 뒤의 ‘제법공상諸法空相’에서 ‘空’은 정신적ㆍ심리적 공간개념으로서 ‘텅 빔(虛)’, 즉 ‘허무虛無’의 의미이다.

전자의 ‘空’은 제14장 ‘復歸於無物’의 ‘無’에 가깝고 후자의 ‘空’은 제16장 ‘致虛極守靜篤’의 ‘虛’와 통한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교의 원전이 한역된 것은 대체로 중국 수ㆍ당 시대로 알려져 있는데, 이때 불가에서 당시 사회의 유력한 주류사상으로 한 축을 이루고 있던 ‘도가’의 ‘無’ 및 ‘虛’와 차별화를 꾀하면서도 그 의미를 모두 포괄하며 유연한 여지를 보이는 ‘空’을 채용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반야심경』에서 ‘공’은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물체의 자성自性이 空하다는 것으로, 그 공성空性 혹은 공상空相을 말하는 것이다. ‘공’ 역시 하나의 실상이며 분명한 본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공’의 개념은 ‘색’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다. 도의 밝음에 접근하는 요체

[靜ㆍ命ㆍ常ㆍ明](제16장 참고)

노자는 사물의 천연한 그대로를 (맑고 순수한 정신을 바탕으로) 물아일체의 관점에서 사실적으로 관찰하고 기술하는 자연과학적 방식으로 도와 덕을 파악하였다.

머리의 텅 빔을 지극하게 하고 마음을 고요히 함으로써 노자는 스스로 참된 본성을 닦아 사물의 근본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였고, 그 물아일체의 바탕에서 한 치도 어김이 없는 무한한 섭리로 도도히 운행하는 우주대자연의 어떤 실체를 통찰하였던바, 이것이 곧 ‘도道(의 존재)’이다.

예로부터 노자 주석가 중 어느 누구도 이 부분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 뜻을 읽어낸 사람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없었다. 그 원인은 역시 (순수하고 천연한 도의 밝음이 아닌) 문리文理적 사변과 형이상학적 추론에 의한 상대적 분별이나 ‘장자莊子화’한 『노자』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자로부터 약 1100년이 지난 수ㆍ당 시기에 성립한 불교 선종에서 이 부분 정ㆍ명ㆍ상ㆍ명의 과정과 매우 유사한 수련방식이 보인다.

①. 靜: 정靜이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두고, 마음을 맑고 고요하게 하여 본래의 천연한 심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제12장에서의 사치와 향락, 기이한 취미, 진귀한 보화 그리고 제13장의 부귀권세의 야망 등) 사람의 마음을 얽어매어 판단을 흐리고 떳떳한 행동을 방해하며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 그런 것들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다 내려놓고 고요히 내 몸 본래의 천연함에 집중하는 단계이다.

- (검소하고 겸손한 일상으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한 점 나태함도 없이 자신을 철저히 경계함으로써 청정淸靜한 본래의 정신 상태로 되돌아간다.(歸根曰靜: 근본으로 돌아감을 靜이라 한다.)

②. 命: 여기서 ‘命’은 천지간에 존재하는 천연한 생명력이며, 정精의 조화가 지극한 갓난아이 같은 천연한 그대로의 생명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내장 각 기관의 자정기능이 극대화되고, 기운의 흐름은 천연한 그대로 자연스러워지며, 몸 안의 모든 세포가 활짝 열려 활성화되면서 심신이 순수한 생명 그 자체의 조화로운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是謂復命)

- (靜의 상태에서) 고요히 자연스럽게 몸 안 깊숙이 숨을 쉬면 (의식에는) 생명 그 하나만 남는다. 몸은 지극히 평온해지며 몸의 밑바닥에서 한없이 솟아나는 샘물처럼 뿌듯한 생명의 기운을 끊임없이 느끼게 된다. 입안에는 단 침이 고이고 신체 각 기관의 자정기능이 극대화되며 갓난아이 같이 정精의 조화가 지극히 조화로운 몸이 되는 것이다. 그처럼 지순한 자연그대로의 생명을 ‘명命’이라 한다.

참고 1: 고대 갑골문에서 ‘명命’은 ‘령令’과 유사한 모양이며, ‘무릎을 꿇고 하늘에 축원하여 그 뜻을 내려받는 상태’를 형상한 것이다. 이는 상제上帝로부터 내려진 신탁으로서 ‘명령’이며, 또한 하나의 생명生命을 받는 ‘수명受命’이기도 하다.

참고 2: (갓난아이는) 뼈가 약하고 힘줄은 연하나 (손을) 굳게 쥔다. 암수의 교합을 알지 못하나 온전히 (성기의 모양을) 짓는데, (이는) 정精(생명의 기운)이 (참되어) 지극한 것이다.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데, (이는 기운의) 조화가 지극한 것이다. (갓난아이 같은 천연한) 조화를 아는 것을 상(늘 한결같음)이라 하고, 상을 아는 것을 명(도의 밝음)이라 한다.(제55장 骨弱筋柔而握固 未知牝牡之合而全作 精之至也 終日號而不嗄 和之至也 知和曰常 知常曰明)

참고 3: 여기 ‘靜ㆍ命’의 뜻은 불교의 선종이나 인도의 명상 수련 등에서 쓰는 ‘깨어있다’는 표현과도 통한다. 즉, ‘깨어있다’는 의미는 여기서처럼 ‘심신이 온전히 정ㆍ명의 상태로 있다’는 말로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③. 常: ‘常’은 ‘늘 한 결 같이 일정함’이다. 전혀 미동도 없이 가만있는 것이 아니라 늘 한결같은 형태로 어김없이 순환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갓난아이 같은 천연한 심신의 상태로 온전히 命(생명)을 회복하여 한결같은 일상이 늘 이어지는 것을 ‘상常’이라 한다(曰常). 이 ‘常’은 ‘늘 한결같이(常) 스스로 그러함(自然)’ 즉 상자연常自然이며, 천연한 그대로 물아일체의 상태이다.(復命曰常)

- (자연그대로의 순수한 생명으로 일상을 살아감에) 온 몸을 활짝 열어젖히고 마음껏 기꺼이 숨을 쉰다. 스스로에 비정하리만큼 자신을 철저히 경계하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 몸으로 대자연의 기운(정기)을 호흡한다. 개운한 몸 깊은 곳에서 건강한 삶의 즐거움이 한없이 솟아난다.

그러한 삶이 계속되면서 어느 날, 길가의 풀 한포기ㆍ나무ㆍ벌레ㆍ시냇물ㆍ아침햇살 등 만물이 모두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모습으로 또한 나와 다름없이 그렇게 진정한 삶을 이어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건강한 심신의 무한한 뿌듯함’ 그것이야말로 삶의 진수이고 삶의 실질이다. 그렇게 살고 죽고 다시 후세가 이어지고, 해는 아침에 다시 뜨고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오며 모든 것은 늘 그렇게 이어진다.(常: 영원한 속성)

참고: 너와 내가 구분 없이 모두 함께 어우러져 같은 근본바탕에서 同和하여 있는 것을 ‘상자연常自然’이라 한다. 천지만물은 각자 자기 위치에서 천연한 그대로 모두가 함께 하나로 존재하는 것이다.(제51장 常自然 참고)

‘상자연常自然’은, 욕심과 집착은 물론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그 사실조차도 인식함이 없는, 나아가 나 자신의 존재조차도 생각함이 없는 천연한 그대로의 의식 상태이다. 곧 내가 만물과 차등 없이 하나로 되는 물아일체의 입장이다. 자기 스스로 상자연함으로써 그 천연함으로 피아의 구분 없이 어우러져 끊임없이 이어지는 ‘천지만물의 常自然’ 또한 보게 되는 것이다.

④. 명明: (그러한) ‘常’을 (온전히) 아는 것을 ‘지상知常’이라 하며, ‘知常’을 ‘明’이라 한다. 천연한 기운으로 피아의 구분 없이 어우러져 끊임없이 이어지는 ‘천지만물의 常自然’을 안다면, 그것이 곧 도의 밝음(明)이다(知常曰明). 결국 도의 심원하며 한 치도 어김없이 무한히 이어지는 상자연한 섭리를 아는 것을 ‘明(도의 밝음)’이라 한다.

- 도의 밝음(明)을 앎으로써 세상의 모든 것을 긍정하게 되고, 모든 것을 긍정하게 되면 다 용납하게 된다. 모든 것을 용납함은 천하를 다스리는 왕의 무위한 행위이며, 곧 왕의 본분이다. 왕이 상자연한 밝음(즉, 도의 이치)을 알고 매사 자연다운 본성을 지키어 무위無爲로 근본을 위하므로 몸이 다하도록 (천하의 질서가) 위태롭지 않다.(제16장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