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해석 2

반야심경 해석 2

나무와 까치 2019. 10. 22. 07:12


□ 般若波羅蜜多心經반야바라밀다심경 해석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유전연기의 십이연기 첫 번째 지분인) 무명도 없고 (환멸연기 십이연기의 첫 번째 지분인) 무명의 멸함도 역시 없으며, 그로부터 (유전연기 십이연기의 마지막 지분인) 노사도 없고 (환멸연기 십이연기의 마지막 지분인) 노사의 멸함까지도 역시 없다.

 

[注] 여기의 ‘무명無明’에서 ‘노사老死’까지를 십이인연 혹은 십이연기라고 하는데 수행을 통하여 이 십이인연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내지 못하면 윤회의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이 부분은 십이연기 역시 공함을 알아야한다는 ‘법아法我(법집法執, 일체 현상의 법칙과 진리에 대한 집착)의 타파’를 말하고 있으며, 주로 연각승이 수행하는 법으로 성인법聖人法이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오온ㆍ십이처ㆍ십팔계는 모두 그 실체가 空한 것이라 하였는데 이는 인아人我의 타파를 의미하며, 범인법凡人法이라 하여 주로 중생들이 수행하는 법이다.

십이인연생기十二因緣生起(십이연기十二緣起): 『잡아함경雜阿含經』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및 『연기경緣起經』에서 고타마 붓다는 연기법緣起法(특히 유전연기)의 본질 또는 의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경전들에 따르면 연기법에 있어서 법法은 연緣과 기起를 뜻하는데, ‘연緣’이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는 것이고 ‘기起’란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차기고피기此起故彼起)는 것이다. 즉, 이것을 원인으로 하여 저것이 일어나고 존재한다는 것이다.

‘연緣’은 무명연행無明緣行ㆍ행연식行緣識ㆍ식연명색識緣名色ㆍ명색연육입名色緣六入ㆍ육입연촉六入緣觸ㆍ촉연수觸緣受ㆍ수연애受緣愛ㆍ애연취愛緣取ㆍ취연유取緣有ㆍ유연생有緣ㆍ생연노사生緣老死의 일련의 인과적 관계를 말하고, ‘기起’는 이 과정을 통해 추愁(걱정)ㆍ탄歎(한탄)ㆍ고苦(괴로움)ㆍ우憂(근심)ㆍ뇌惱(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즉, 그러한 무명으로부터 연기관계가 일어나고, 연기관계로 인하여 순전히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순대고취純大苦聚), 곧 5취온五取蘊이 형성(集, 집결集結)되는 것을 말하며, 5취온이 형성된다는 것은 생사윤회를 반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기緣起’는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준말로 산스크리트어 프라티티야 사무트파다(pratītya-samutpāda)의 한역이며 '말미암아 일어난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영어로는 ‘dependent arising(의존하여 생겨남)’, ‘conditioned genesis(조건 지워진 생성)’, ‘dependent co-arising(의존된 상호발생)’ 또는 ‘interdependent arising(상호 의존하여 생겨남)’ 등으로 번역된다.

인연因緣에서 인因은 결과를 낳는 내적ㆍ직접적인 원인을 의미하고, 연緣은 이에 작용하는 외적ㆍ간접적인 조건을 의미하여 양자를 합쳐서 원인의 뜻으로 쓴다.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인(因, hetu)과 조건(緣, pratyaya)의 상호 관계 속에서 성립되므로 독립ㆍ자존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저절로 발생하는 것도 창조신神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모든 원인과 조건이 서로 작용하여 결과가 나타므로 조건ㆍ원인이 없으면 결과(果, phala)도 없다. ‘인연’에 의하여 성립한 현상은 인연이 없어지면 소멸한다는 의미가 된다.

여러 형식의 연기설 가운데에서 가장 완성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12연기설이다. 이는 무명無明ㆍ행行ㆍ식識ㆍ명색名色ㆍ육입六入ㆍ촉觸ㆍ수受ㆍ애愛ㆍ취取ㆍ유有ㆍ생生ㆍ노사老死의 12개의 항목이 각각 순서에 따라 바로 전 항을 기초로 생기生起하는 관계를 서술한 것이다.

유전연기流轉緣起와 환멸연기還滅緣起: 무명無明에서부터 노사老死로 나아가면서 고苦가 생기生起하는 연기관계를 유전연기流轉緣起 혹은 순관順觀연기(순연기順緣起)라고 한다.

무명이 다함에 따라 노사가 없어지는 것과 같이 고뇌의 유전流轉이 멸해지고 열반계涅槃界로 돌아가는 연기의 관계를 환멸연기還滅緣起 혹은 역관逆觀연기(역연기逆緣起)라고 한다. 반야般若의 힘으로 무명을 없애고 열반에로 되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환멸이라 한다. 결국, 무명이 있기 때문에 노사가 있고(순관), 무명이 없다면 노사도 없다(역관)고도 말할 수 있다.]

≪십이연기설十二緣起說: 십이연기는 미혹된 현상세계를 인과의 관계로 설명한 것으로 십이인연十二因緣 또는 십이 유지十二有支라고도 하며 불교의 근본교리 중 하나이다.

12개의 각 항목은 윤회輪廻의 생존生存을 구성하는 부분이라는 의미에서 ‘유지有支’라 하는데, 그 십이 유지(십이지十二支)로는 무명無明ㆍ행行ㆍ식識ㆍ명색名色ㆍ육입六入ㆍ촉觸ㆍ수受ㆍ애愛ㆍ취取ㆍ유有ㆍ생生ㆍ노사老死가 있다.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오온五蘊, 즉 순전히 큰 고통 무더기가 집적集積ㆍ형성되고 그로써 생사윤회가 반복됨을 말한다.(위키피디아 참고)

1) 무명無明: ‘무명無明’은 산스크리트어 아비드야avidyā(팔리어 아비야avijjā)의 의역(영어 ignorance)으로 어떤 대상 혹은 현상의 진면목을 인식할 수 없게 만드는 어리석음을 뜻하며, ‘(반야의) 밝음이 없음’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이는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煩惱이며,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에 대한 직관을 방해하여 일체의 차별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이다.

‘무명無明’은 고제苦諦ㆍ집제集諦ㆍ멸제滅諦ㆍ도제道諦의 사제四諦에 대한 근본의根本義에 통달하지 못하고 일체의 분별과 그 연기관계緣起關係를 알지 못하는 부지不知의 상태를 말한다. 무명의 반대는 팔정도八正道 중의 정견正見으로 무명은 곧 반야의 밝음을 알지 못함을 뜻한다. 고타마 붓다는 정사유正思惟의 반대인 부정사유不正思惟(바르지 않은 사유)가 무명無明의 원인이라고 하였다.

‘무명無明’은 십이인연十二因緣의 연기관계에서 첫 번째 지분으로서 현상계의 모든 사물이 무상無常ㆍ무아無我함을 모르고 갈애渴愛를 일으켜 윤회輪廻ㆍ상속相續되는 근원요소이다.

무명연행無明緣行(또는 연무명행緣無明行)은 무명이 있음으로 인하여 행이 일어남을 뜻한다. 무명으로부터 연기관계가 일어나고 그로인해 5취온, 즉 고통의 무더기가 결집結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으로, 결국 윤회의 원인이 되는 무명을 멸각함으로써 인간의 고통은 소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잡아함경雜阿含經』의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에서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무명은 아래의 것들을 통칭한다.

여기의 ‘부지不知(알지 못함)’ 중 ‘지知(앎)’란 정지正知, 곧 바른 앎을 말하는 것으로 여실정행如實正行 또는 정행正行과 동의어이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앎(知)이란 불교의 진리, 즉 사제ㆍ십이연기 등의 이치에 대한 이론적인 앎에 실천이 더해져서 스스로 체득된 앎을 말한다.

반대로 바른 행위 또는 바른 실천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정확한 의미의 앎(知) 또는 정지正知가 아니다. 다만, 이론적인 앎이 실천적인 앎의 출발점 또는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는 넓게 보아 이론적인 앎도 실천적인 앎 또는 정지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즉, 세간의 지혜인 유루혜有漏慧의 삼혜三慧 (문혜聞慧ㆍ사혜思慧ㆍ수혜修慧) 가운데 문혜와 사혜도 비록 세간의 지혜이기는 하지만 정견에 포함될 수가 있는 것이다.

- 과거(전제前際)를 알지 못하는 것(不知), 미래(후제後際)를 알지 못하는 것, 과거와 미래(전후제前後際)를 알지 못하는 것.

- 안(內)을 알지 못하는 것, 밖(外)을 알지 못하는 것, 안팎(內外)을 알지 못하는 것.

- 업業을 알지 못하는 것, 과보(報)를 알지 못하는 것, 업과 과보(業報)를 알지 못하는 것.

- 불보佛寶(佛)를 알지 못하는 것, 법보(法)를 알지 못하는 것, 승보(僧)를 알지 못하는 것.

- 고제(苦)를 알지 못하는 것, 집제(集)를 알지 못하는 것, 멸제(滅)를 알지 못하는 것, 도제(道)를 알지 못하는 것.

- 원인(因)을 알지 못하는 것, 원인이 일으키는 법法 즉 결과를 알지 못하는 것.

- 선善(참됨)과 불선不善(참되지 않음)을 알지 못하는 것.

- 죄가 됨(有罪)과 죄가 되지 않음(無罪), 익혀야 할 것(習)과 익히지 않아야 할 것(不習), 열劣(저열함)과 승勝(뛰어남), 염오染污와 청정清淨 그리고 이들의 분별分別(식별)과 연기緣起 관계를 알지 못하는 것, 그리고 이들 모두를 남김없이 완전하게 알지 못하는 것.

- 6촉입처六觸入處(곧 6입六入, 6처六處, 6근六根)를 여실히 깨달아 알지 못하는 것. 즉 안근ㆍ이근ㆍ비근ㆍ설근ㆍ신근ㆍ의근의 6근을 진실(實)에 계합契合토록 제어(覺知)하지 못하는 것.

-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알지 못하는 것(不知),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보지 못하는 것(不見),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의 앎에 대해서라도 간격 없이 동등함’이 없는 것(無無間等),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어리석고 컴컴한 것,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밝음이 없는 것,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크게 어두운 것.

※ 앞의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는 무명에 대한 설명에서 ‘부지不知(알지 못함)’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반면, 『연기경緣起經』에서는 ‘무지無知(앎이 없음)’를 사용하고 있다.

- 과거(전제前際)에 대해 앎이 없는 것(無知), 미래(후제後際)에 대해 앎이 없는 것, 과거와 미래(전후제前後際)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안(內)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밖(外)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안팎(內外)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업業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이숙異熟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업과 이숙(業異熟)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불보佛寶(佛)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법보(法)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승보(僧)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고제(苦)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집제(集)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멸제(滅)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도제(道)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원인(因)에 대해 앎이 없는 것, 결과(果)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원인이 일으켜 생겨나는 온갖 법法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선善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불선不善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죄가 됨(有罪)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죄가 되지 않음(無罪)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반드시 닦아 익혀야 하는 것에 대해 앎이 없는 것, 결코 닦아 익혀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저열한 것(하열下劣)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뛰어난 것(상묘上妙)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흑黑, 즉 흑업黑業(나쁜 행동, 악업)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백白, 즉 백업白業(참된 행동, 선업)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위에서 언급한 것들에 있어서 차이와 분별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연緣(인연), 이생已生(그치고 생겨남, 즉 생겨나서 지금 존재함), 6촉처六觸處(즉 6입, 6처, 6근)에 대해 여실히 통달하여 앎이 없는 것. 곧 연, 이생 및 6촉처를 진실(實)에 계합契合토록 제어하지 못하는 것.

-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여실한 앎이 없는 것(여실무지如實無知),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바른 견해가 없는 것(무견無見),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현관이 없는 것(무현관無現觀),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어리석은 것(우치愚癡),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밝음이 없는 것(무명無明),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몹시 캄캄한 것(흑암黑闇).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무명은 명明, 즉 지혜가 없는 것으로서 연기의 도리를 알고 있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2) 행行: 행行은 산스크리트어 संस्कार saṃskāra(팔리어 saṅkhāra)의 의역 <영어 (mental) formations>이다. 『잡아함경』과 『연기경』에 ‘행行’은 신행身行ㆍ구행口行(어행語行)ㆍ의행意行의 삼행三行을 뜻하며, 삼행은 필연적으로 윤회輪廻의 원인이 되는 삼업三業(산스크리트어 trīṇi karmāṇi), 즉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짓는 신업身業ㆍ구업口業ㆍ의업意業과 동의어이다.

‘무명연행無明緣行(혹은 연무명행緣無明行)’, 즉 무명無明이 으로 인하여 행行이 일어난다는 것은 무명이 있기 때문에 그릇된 삼행三行(곧 그릇된 신업ㆍ구업ㆍ의업의 삼업三業)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며, 또한 이미 발생한 그릇된 삼업이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무명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5취온이 형성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경험은 어떠한 것이라도 그 행위 이후에 그대로 소멸되거나 사라져버리지 않으며 반드시 그 여력을 남긴다. 그것들은 몸속에 보존, 축적되어 결국 지능이나 성격 등의 소질로 습관이 되고 인격으로 남는다. 무지무명을 인연으로 하여 그릇된 몸과 말과 마음의 삼업을 일으키는 것이 행인데 이 행은 그릇된 어떤 행위뿐 아니라 그 행위로 인한 여력인 습관력도 포함되는 것이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행行’은 행위와 그 행위 경험의 축적蓄積을 말한다. 학자들에 따라 ‘행行’은 조건 지워진 상태 또는 현상을, 특히 정신적인 기질 또는 성향을 의미한다.>

3) 식識: ‘식識’은 산스트리트어 विज्ञान vijñāna(팔리어 viññāṇa)의 의역(영어 consciousness)이다. ‘식識’은 감각작용으로서의 안식眼識ㆍ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의 오식과 인식작용으로서의 의식意識, 즉 제육식第六識인 의식意識을 말한다.

행연식行緣識(또는 연행식緣行識), 즉 행行이 있음으로 인하여 식識이 있다는 것은 그릇된 3행三行, 즉 신업ㆍ구업ㆍ의업의 3업三業이 있기 때문에 그릇된 6식신<시각적ㆍ청각적ㆍ후각적ㆍ미각적ㆍ촉각적ㆍ(제6의식으로서의) 정신적 의식>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또한 이미 발생한 그릇된 6식신六識身이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그릇된 행, 곧 신업ㆍ구업ㆍ의업 가운데 그릇된 하나 혹은 다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하여 최종적으로 5취온이 집적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잡아함경』에 따르면 ‘식識’은 안식신眼識身ㆍ이식신耳識身ㆍ비식신鼻識身ㆍ설식신舌識身ㆍ신식신身識身ㆍ의식신意識身의 6식신六識身을 말하며, 『연기경緣起經』에서는 안식眼識ㆍ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의식意識의 6식六識(곧 6식신六識身)을 말한다.

여기서 신身(산스크리트어 kāya)은 일반적 의미인 신체의 뜻으로 사용된 경우가 아니라 복수ㆍ집합을 뜻하는 복수형 접미사 '~들'로서 사용된 경우이다. 따라서 ‘안식신’은 안식들 또는 안식들의 집합을 뜻하며 온갖 시각적 의식들의 집합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이식신ㆍ비식신ㆍ설식신ㆍ신식신은 각각 온갖 청각적ㆍ후각적ㆍ미각적ㆍ촉각적 의식들의 집합을 말하며, 의식신은 온갖 정신적 의식들의 집합을 말한다.

초기불교에서의 6식은 곧 마음(心, 산스크리트어 citta, 팔리어 citta)을 말하며, 부파불교에서 6식은 심의식 또는 심心ㆍ의意ㆍ식識이라고도 한다. 부파불교에서는 6식을 하나의 마음의 여섯 가지 다른 모습 또는 작용일 뿐이라고 보는데 이러한 견해를 심체일설 또는 식체일설이라 한다. 대승불교에서도 마음을 심의식 또는 심ㆍ의ㆍ식이라고 하는데, 대승불교에서는 초기불교의 6식은 더 심층의 의식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 마음이 6식에 마나스식과 아뢰야식이 더해진 8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교학을 가지고 있다.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서 주목할 사항은 ‘마음(의식)은 행위(行, 業) 또는 운동을 바탕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근원적 연기관계에서 볼 때 마음이 행위를 낳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마음을 낳는다는 것이다. 즉,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정이 행하는 행위(몸ㆍ말 또는 뜻)는 단순히 행위 그 자체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그 유정 속에서 어떤 마음(의식)을 낳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식識은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의 전5식前五識에 의한 감각작용과 제6의식에 의한 지각知覺ㆍ추리推理ㆍ기억記憶ㆍ판단判斷 등 일체의 의식작용 및 이러한 작용을 하는 주체적 존재를 총칭하는 것으로서, 과거의 모든 행위(行)가 잠재의식이 되어서 작용하는 것이다.

<아뢰야식阿賴耶識: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알라야 비즈나나ālaya vijñāna의 음역으로 거주지ㆍ저장ㆍ집착을 뜻하며, 줄여서 뇌야賴耶 혹은 뇌야식賴耶識이라 한다. 일체 법의 종자種子를 갈무리하고 일으키는 근본 심리 작용을 말하며, 근대 심리학에서 파악된 ‘무의식’과 비슷한 개념이다.

아뢰야를 a(무無)+laya(몰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으로 번역하며,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한다. 과거의 인식ㆍ행위ㆍ경험ㆍ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ㆍ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 의식이다.

불교의 유식론唯識論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생긴 것인가를 여덟 가지 단계로 분석 설명하는데 이 가운데에서 마지막의 제8식에 해당한다. 8식인 아뢰야식은 숙장宿藏ㆍ장식藏識ㆍ습장習藏이라 하며 겉으로 나타나지 않고 맨 밑바닥에 숨어 있는 잠재의식으로서 무의식이라 할 수 있다. 7식이 기억하고 담아 두었던 것을 언제라도 필요하면 기억해내고 습관 반사적으로 바로 바로 쓸 수 있게 작용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8식이다.

인간은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의 여섯 가지 감각적 기관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앞의 다섯 가지를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여섯 번째의 식識을 제6의식意識이라고 한다. 전5식은 자체로서 판단ㆍ유추ㆍ비판의 능력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다만 ‘나’라는 주관이 외부의 객관과 교통할 수 있는 통로일 따름이다. 전5식은 제6의식에 의하여 통괄되며 자신이 수집한 갖가지의 정보를 이 제6의식에 보고하는 기능을 가졌다.

제6의식은 흔히 ‘마음’이라고 부르는 존재인데, 그 단계는 다음과 같은 셋으로 나누어진다. 첫째가 제6의식, 둘째가 제7마나스식(Manas識), 셋째가 제8아뢰야식이다. 현대 심리학에서의 구분방법에 따르면 제6식은 의식의 세계이며, 제7식과 제8식은 무의식의 세계로 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근원적인 마음을 아뢰야식이라고 보았다.

진眞과 망妄이 함께 있다고 하여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이라고도 하며, 본래 깨끗한 것이 드러나 있지 않고 감추어져 있다고 하여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제8식까지만 말할 때에는 아뢰야식을 제8식이라 하고, 제9식까지 말할 때에는 제9식을 아마라식阿摩羅識이라 하여 청정무구식淸淨無垢識이라고도 한다.>

4) 명색名色: ‘名色’은 산스크리트어 nāmarūpa(팔리어 nāmarūpa)의 의역이다(영어 name and form). 『잡아함경』에 명색名色은 명名과 색色, 즉 정신과 물질 또는 마음(心)과 육체(身)를 통칭한다. 명名(정신 또는 마음)은 5음五陰 가운데 수음ㆍ상음ㆍ행음ㆍ식음의 4무색음四無色陰을 말하며, 여기서 5음五陰은 5온五蘊의 구역舊譯이다. 색色(즉, 물질 또는 육체)은 5음五陰 가운데 색음을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4대종四大種(물질계를 구성하는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4가지 원소)과 4대종의 소조색所造色(4대종에 의해 만들어진 물질)을 말한다.

『연기경』에서 ‘명색名色’은 명名과 색色을 통칭한다. 명名은 5온 가운데 수온ㆍ상온ㆍ행온ㆍ식온의 4무색온四無色蘊을 말하고, 색色은 5온 가운데 색온色蘊을 말한다. 색온은 제소유색諸所有色 즉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4대종과 4대종의 소조색을 말한다.

식연명색識緣名色(또는 연식명색(緣識名色), 즉 식識이 있으므로 명색名色이 있다는 것은 그릇된 6식의 의식이 있기 때문에 심신心身의 부조화<즉, 정신(名)과 육체(色)의 그릇된 상태>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또한 이미 발생한 심신의 그릇된 상태가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그릇된 식이 하나 혹은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서 명색名色은 정신적인 것(名)과 물질적인 것(色)으로서 현상세계의 존재를 가리킨다.

5) 육입六入: 6입六入(산스크리트어 ṣaḍāyatana, 팔리어 saḷāyatana, 영어 six sense gates or six sense bases)은 6처六處ㆍ6입처六入處ㆍ6내입처六內入處ㆍ내6입처內六入處ㆍ내6입內六入ㆍ6정六情ㆍ제입諸入ㆍ6촉입처六觸入處ㆍ6촉처六觸處ㆍ6갱락처六更樂處 또는 6근六根라고도 한다. 육근六根은 눈ㆍ귀ㆍ코ㆍ혀ㆍ몸 등의 오근五根과 의근意根을 말하며, 곧 감각과 지각의 작용을 말한다.

명색연6입名色緣六入(또는 연명색6입緣名色六入), 즉 명색이 있으므로 6입六入(곧 6처六處, 곧 6근六根)이 있다는 것은 심신의 그릇된 상태(즉 심신의 부조화)가 있기 때문에 6입(곧 6처, 곧 6근)이 있다는 것이고, 또한 이미 발생한 6입(곧 6처이며 6근)의 그릇된 상태가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심신의 그릇된 상태(심신의 부조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5취온이 집적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되는 것이다.

『잡아함경』에서는 6입六入을 6입처六入處라고 부르며 안입처眼入處ㆍ이입처耳入處ㆍ비입처鼻入處ㆍ설입처舌入處ㆍ신입처身入處ㆍ의입처意入處의 6내입처六內入處를 말한다. 입처入處의 입入은 섭입涉入(끌어들임) 또는 촉입趨入(추구하여 받아들임)의 뜻으로 6근六根과 6경六境이 서로를 거두어들이는 것을 가리킨다. 처處는 소의所依, 즉 발동근거, 의지처, 도구라는 뜻으로 6경에 대하여 6식이 생겨날 때 6근이 발동근거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입처入處’는 6식의 수동적 작용이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6근과 6경이 서로를 끌어들여서 6식이 생겨나게 됨을 의미하며, 6식의 능동적 작용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6식이 6근을 통해 6경을 거두어들임으로써 6경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식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앎 또는 분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관련된 여러 가지 마음작용들이 일어나는 것도 포함하는 말이다.

<※ 『잡아함경』에 의하면 6내입처六內入處는 6가지 내적인 입처入處로서 6식이 6경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 도구이자 6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내적인 어떤 것을 의미한다.

- 안입처眼入處: 눈(眼)이라는 입처이며 안식의 입처이다. 안식이 색경(색깔과 형태)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 도구이자 안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이다.

- 이입처耳入處: 귀(耳)라는 입처이며 이식의 입처이다. 이식이 성경(소리)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 도구이자 이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이다.

- 비입처鼻入處: 코(鼻)라는 입처이며 비식의 입처이다. 비식이 향경(냄새)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 도구이자 비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이다.

- 설입처舌入處: 혀(舌)라는 입처이며 설식의 입처이다. 설식이 미경(맛)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 도구이자 설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이다.

- 신입처身入處: 몸(身)이라는 입처이며 신식의 입처이다. 신식이 촉경(감촉)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 도구이자 신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이다.

- 의입처意入處: 뜻(意)이라는 입처이며 의식의 입처이다. 의식이 법경(법, 명색의 명, 곧 정신적 존재)을 비롯한 6경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 도구이자 의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이다.

※ 『연기경』에서는 ‘6입六入’을 6처六處라고 하여 안내처眼內處ㆍ이내처耳內處ㆍ비내처鼻內處ㆍ설내처舌內處ㆍ신내처身內處ㆍ의내처意內處의 6내처六內處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6내처六內處는 6가지 내적인 처處로서 6식의 내적인 처處이며, 6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6가지 내적인 어떤 것을 말한다.

- 안내처眼內處: 눈(眼)이라는 내적인 처處이며, 안식의 내적인 처處이다. 안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내적인 것이다.

- 이내처耳內處: 귀(耳)라는 내적인 처處이며, 이식의 내적인 처處이다. 이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내적인 것이다.

- 비내처鼻內處: 코(鼻)라는 내적인 처處이며, 비식의 내적인 처處이다. 비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내적인 것이다.

- 설내처舌內處: 혀(舌)라는 내적인 처處이며, 설식의 내적인 처處이다. 설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내적인 것이다.

- 신내처身內處: 몸(身)이라는 내적인 처處이며, 신식의 내적인 처處이다. 신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내적인 것이다.

- 의내처意內處: 뜻(意)이라는 내적인 처處이며, 의식의 내적인 처處이다. 의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내적인 것을 말한다.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6입六入’은 6처六處 또는 6근六根이라고도 하며 6개의 감각기관을 가리킨다. 이 감각기관을 통해 식識이 작용하게 되어 명색을 인식한다.>

6) 촉觸: ‘觸’은 산스크리트어 sparśa(팔리어 phassa)의 의역으로(영어 contact) 6근六根ㆍ6경六境ㆍ6식六識의 접촉을 의미하며, 이들의 화합으로 감각과 지각에 의한 인식조건이 성립됨을 뜻한다.

『잡아함경』에 ‘觸’은 안촉신眼觸身ㆍ이촉신耳觸身ㆍ비촉신鼻觸身ㆍ설촉신舌觸身ㆍ신촉신身觸身ㆍ의촉신意觸身의 6촉신六觸身을 일컫는다. 여기서 촉觸은 마음작용들 가운데 하나로 근根ㆍ경境ㆍ식識 3사三事의 화합을 말하며, 신身(산스크리트어 kāya)은 일반적 의미인 신체(몸)의 뜻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복수ㆍ집합을 뜻하는 복수형 접미사 '~들'로서 사용된 경우이다.

『잡아함경』에서 6입연촉六入緣觸(또는 연6입촉緣六入觸), 즉 6입六入이 있으므로 촉觸이 있다는 것은 6입(곧 6처, 곧 6근)의 그릇된 상태가 있기 때문에 촉의 그릇된 상태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진실에 계합하도록 제어되지 못한 상태의 안근ㆍ이근ㆍ비근ㆍ설근ㆍ신근ㆍ의근의 6근(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이 있기 때문에 그릇된 상태의 근ㆍ경ㆍ식의 3사 화합이 일어나는데, 특히 마지막의 의근(뜻, 意思)은 과거 경험의 총체를 말한다.

이와 같이 과거의 행위들은 누적이 되어 현재의 6근의 상태를 형성하거나 6근 작용의 발동근거가 되며, 현재의 그릇된 상태의 6근은 그릇된 상태의 3사 화합이 생겨나게 한다. 그리고 그 그릇된 상태의 3사 화합은 대상에 대해 현행하는 인식이 대상에 진실한 인식, 즉 대상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인식이 아님을 뜻한다.

또한, 이미 발생한 촉觸의 그릇된 상태, 즉 그릇된 상태의 3사 화합이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6입(곧 6처, 곧 6근)의 그릇된 상태, 즉 진실에 계합하도록 제어되지 못한 상태의 6근의 하나 혹은 다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하여 최종적으로 5취온이 형성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됨을 뜻한다.

<※ 『잡아함경』에서 6촉신六觸身은 6가지 촉觸들 또는 6가지 촉觸의 집합을 말하며, 6촉신六觸身과 6촉六觸은 사실상 같은 말이며, 6촉은 6촉신의 줄임말이라 할 수 있다. 6근ㆍ6경ㆍ6식의 화합의 상태는 인식대상에 대한 6가지 인식이나 분별에 있어서 개별 혹은 다수가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 안촉신眼觸身: 안촉들 혹은 안촉의 집합을 말한다. 안촉眼觸은 안근ㆍ색경ㆍ안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안식, 즉 인식대상의 색경(색깔과 모습)에 대한 인식 또는 변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눈으로 대상의 색깔과 모습을 보고 있는 상태이다.

- 이촉신耳觸身: 이촉들 혹은 이촉의 집합을 말한다. 이촉眼觸은 이근ㆍ성경ㆍ이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이식, 즉 인식대상의 성경(소리)에 대한 인식 또는 변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귀로 대상의 소리를 듣고 있는 상태이다.

- 비촉신鼻觸身: 비촉들 혹은 비촉의 집합을 말한다. 비촉鼻觸은 비근ㆍ향경ㆍ비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비식, 즉 인식대상의 향경(냄새)에 대한 인식 또는 변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코로 대상의 냄새를 맡고 있는 상태이다.

- 설촉신舌觸身: 설촉들 혹은 설촉의 집합을 말한다. 설촉舌觸은 설근ㆍ미경ㆍ설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설식, 즉 인식대상의 미경(맛)에 대한 인식 또는 변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혀로 대상의 맛을 감별하고 있는 상태이다.

- 신촉신身觸身: 신촉들 혹은 신촉의 집합을 말한다. 신촉身觸은 신근ㆍ촉경ㆍ신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신식, 즉 인식대상의 촉경(촉감)에 대한 인식 또는 변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몸으로 대상의 촉감을 감촉하고 있는 상태이다.

- 의촉신身觸身: 의촉들 혹은 의촉의 집합을 말한다. 의촉身觸은 의근ㆍ법경ㆍ의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의식, 즉 인식대상의 법경(정신적 측면)에 대한 인식 또는 변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의식으로 대상의 정신적 측면을 감지 또는 변별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의식 즉 제6의식은 의근을 통해 단지 법경만을 변별하지 않으며 의근을 통해 5경에 대해서도 변별하는데, 이 경우 의촉은 의근ㆍ6경ㆍ의식의 화합을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인식대상에 대한 제6의식의 전체적ㆍ종합적 인식 또는 변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제6의식이 대상을 전체적ㆍ종합적으로 감지 또는 요별하고 있는 상태이다.

※ 『연기경』에 촉觸은 안촉眼觸ㆍ이촉耳觸ㆍ비촉鼻觸ㆍ설촉舌觸ㆍ신촉身觸ㆍ의촉意觸의 6촉六觸을 뜻한다.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촉觸을 6입과 명색과 식이 접촉하는 것이다.>

7) 수受: ‘受’는 산스크리트어 vedanā(팔리어 vedanā)의 의역으로(영어 sensation, feeling), 『잡아함경』에 따르면 ‘수’는 고수苦受ㆍ낙수樂受ㆍ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을 감수感受하는 3수三受를 말한다.

촉연수觸緣受(또는 연촉수緣觸受), 즉 촉觸을 인연으로 하여 수受가 일어난다는 것은 촉의 그릇된 상태가 있기 때문에 수의 그릇된 상태가 생겨나게 됨을 뜻한다. 즉, 현행하는 인식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있기 때문에 그릇된 상태의 고수ㆍ낙수ㆍ불고불락수의 3수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또한 이미 발생한 수의 그릇된 상태, 즉 전도된 3수가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촉의 그릇된 상태인 그릇된 상태의 3사三事화합, 즉 현행하는 인식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즉 그릇된 상태의 안촉ㆍ이촉ㆍ비촉ㆍ설촉ㆍ신촉ㆍ의촉이 하나 혹은 다수로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릇된 상태의 3수는 전도된 상태의 3수를 말하는 것으로, 고라고 느껴야 할 대상을 낙 또는 불고불락의 대상이라 여기고, 낙이라고 느껴야 할 대상을 고 또는 불고불락의 대상이라 느끼며, 불고불락이라고 느껴야 할 대상을 고 또는 낙의 대상이라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이는 인식(촉) 후에 생기는 고락 등의 감수로서 동일물同一物을 인식하여도 탐욕자는 즐거움으로 느끼고, 성난자는 괴로움으로 느끼는 차이가 있다. 그 까닭은 인식 주체로서의 식이 백지와 같은 것이 아니라 과거의 무명과 행, 식 등에 의하여 탐욕과 진에瞋恚 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파불교와 대승불교 등에서 수受는 마음작용들 가운데 하나로 촉觸, 즉 근根ㆍ경境ㆍ식識 3사三事의 화합을 바탕으로 하여 일어난다.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하여 최종적으로 5취온이 형성되고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연기경』에 따르면 ‘수受’는 낙수樂受ㆍ고수苦受ㆍ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의 3수三受를 말한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수受’는 6입과 명색과 식의 접촉 위에서 생기는 고락 등의 감수 작용이다.

8) 애愛: ‘愛’는 산스크리트어 तण्हा tṛṣṇā(팔리어 taṇhā)의 의역으로(영어 craving, desire, thirst), 애착愛著, 탐貪 또는 집착執著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대상에 대한 그릇된 좋아함을 욕구하는 것으로 특히 그 대상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 강한 욕구와 열망으로 괴로움을 피하고 항상 즐거움을 탐구함이 심하므로 갈애渴愛라고도 번역한다.

수연애受緣愛(또는 연수애緣受愛), 즉 수受가 있으므로 애愛가 있다는 것은 수의 그릇된 상태가 있기 때문에 번뇌혹은 불선인 애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욕계ㆍ색계ㆍ무색계 3계三界의 사물들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상태가 전도된 3수로부터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미 발생한 애愛가 있어서 3계의 어떤 사물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상태가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수受의 그릇된 상태, 즉 전도된 고수ㆍ낙수ㆍ불고불락수의 하나 또는 다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잡아함경』에서 고타마 붓다는 ‘애愛’에 대하여 욕애欲愛ㆍ색애色愛ㆍ무색애無色愛의 3애三愛를 말한다.

- ‘욕애欲愛’는 욕계의 애이다. 욕계의 법(즉, 욕계의 사물)을 애착하여 그 결과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고, 욕계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 ‘색애色愛’는 색계의 애이다. 색계의 법(즉, 색계의 사물)을 애착하여 그 결과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고, 색계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 ‘무색애無色愛’는 무색계의 애이다. 무색계의 법(즉, 무색계의 사물)을 애착하여 그 결과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고 무색계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애愛’의 자의에는 사랑이라는 뜻이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애愛는 기독교 등에서 말하는 사랑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기독교 등에서 말하는 사랑은 불교의 자비慈悲에 해당한다. 12연기설의 애愛, 즉 탐貪은 그 성질이 불선不善으로 본질적으로 번뇌이다. 이에 비해 자비의 자慈는 무진無瞋의 마음작용의 본성이고, 비悲는 불해不害의 마음작용의 본성으로서 둘 다 본질적으로 선善이다.

불교에서는 탐貪으로서의 애愛(갈애, 애착, 집착)는 증憎(증오, 미워함)과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고 본다.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애가 증을 낳기도 하며 반대로 증이 애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자비 또는 사랑으로서의 애愛에는 이러한 면이 없다.

그리고 12연기설의 12지분 가운데 제1지분인 무명無明과 제8지분인 애愛와 제9지분인 취取는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의 3성三性에 따라 살펴보면 그 성질이 본질적으로 불선이고 번뇌이다. 이에 비해 나머지 지분들은 그 성질이 무기無記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머지 지분들은 선이 될 수도 있고 불선이 될 수도 있다. 즉 바른 상태에 있을 수도 있고 그릇된 상태에 있을 수도 있으며, 청정한 상태에 있을 수도 있고 오염된 상태에 있을 수도 있다.

12연기의 유전연기는 이들 지분들이 그릇된 상태로 되는 것에 대해 특히 다루고 있는 것이며, 반면 12연기의 환멸연기는 이들 지분들이 바른 상태로 되는 것에 대해 특히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무명無明ㆍ애愛ㆍ취取는 그 성질이 본질적으로 불선 즉 악이기 때문에 이들이 바른 상태로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다만 끊음으로써 더 이상 마음이 이들과 계합하지 않는 상태가 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환멸연기에서 이들 3가지 지분은 변형과 전의轉依의 대상이 아니라 단멸斷滅, 즉 원리遠離(멀리 떨어짐)의 대상이다.

<삼계三界: 삼계三界(산스크리트어 trayo-dhātava, 영어 trailokya 또는 triloka)는 부처의 지위에 도달하지 못한 일체의 중생衆生이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의 세 가지 세계를 통칭하는 말로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의 삼유三有라고도한다.

삼계는 십법계十法界,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등과 함께 불교의 세계관 또는 우주론(Buddhist cosmology)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불교의 교의에 따르면, 부처의 지위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극복되지 못한 무명(無明)의 미혹(迷惑) 때문에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는데(생사유전生死流轉 또는 윤회 輪廻), 삼계는 이러한 아직 깨닫지 못한 상태인 미계迷界를 셋으로 분류한 것이다. 삼계는 비록 괴로움과 즐거움이 서로 간에 다르지만 삼계 모두는 탄생과 죽음이 반복되는 윤회를 벗어난 상태가 아니므로 생사生死라고도 한다.

삼계는 다시 이십팔천二十八天으로 세분되어 욕계는 육천六天으로, 색계는 십팔천十八天으로, 무색계는 사천四天으로 나뉜다. 이 중 욕계의 육천六天은 지옥도ㆍ아귀도ㆍ축생도ㆍ수라도ㆍ인간도ㆍ천신도의 욕계육도欲界六道 중 천신도의 여섯 하늘만을 따로 지칭하는 것이다. 삼계가 이십팔천으로 나뉘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의 불교 우주론을 흔히 삼계이십팔천三界二十八天이라고도 한다. 수행론과 번뇌론에서 삼계는 흔히 구지九地로 나뉜다.

가. 욕계欲界: 욕계(산스크리트어 kāma-dhātu)는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의 3계三界 가운데 하나로 3유三有의 욕유欲有와 동의어이다. 욕계는 식욕食欲ㆍ수면욕睡眠欲ㆍ음욕淫欲의 욕계3욕欲界三欲과 외적 대상인 5경에 대한 탐욕인 5욕五欲 등 각종 욕구와 탐욕이 지배적인 세계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욕계는 탐욕과 물욕에 이끌려서 정신없이 악업을 지으며 허덕이는 중생의 마음 세계로서 유정有情이 사는 맨 아래의 세계이다.

욕계에는 천계의 존재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여섯 하늘이 있는데 이 여섯 하늘을 육욕천六欲天(또는 욕계육천欲界六天)이라하며, 이에는 사왕천四王天ㆍ도리천忉利天ㆍ야마천夜摩天ㆍ도솔천兜率天ㆍ화락천化樂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있다. 여섯 하늘의 사람들은 비록 천신이지만 모두 욕락欲樂을 지니기 때문에 욕천欲天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특별히 다른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생명작용을 경계로 나누어서 밝힌 것이다.

6욕천六欲天에서의 천天(산스크리트어 deva)은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지옥취ㆍ아귀취ㆍ방생취傍生趣ㆍ인취ㆍ천취의 5취五趣(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와 상좌부불교 등의 우주론) 또는 지옥도ㆍ아귀도ㆍ축생도ㆍ아수라도ㆍ인간도ㆍ천상도의 6도六道(부파불교의 독자부와 대승불교 등의 우주론) 가운데 가장 상위의 상태인 천상도(곧 천취)에 태어나는 유정들을 말하며, 또는 그 유정들이 태어나 거주하는 처소(즉 기세간器世間)로서의 하늘들을 말한다. 한편으로는 이들 유정과 기세간 둘 다를 뜻하기도 한다.

천상도(곧 천취)의 유정들을 천인天人ㆍ천중天衆ㆍ비천飛天ㆍ제바提婆(산스크리트어 데바deva) 등으로 부르며 간단히 천天이라고도 한다. 천인天人이 거주하는 처소로서의 하늘(天)에 대하여 욕계에 여섯 하늘 즉 6욕천이 있다는 것에는 경전과 논서들 거의 대다수가 의견이 일치한다.

나. 색계色界: 색계(산스크리트어 rūpa-dhātu)는 욕계와 무색계의 중간 세계로 형상의 세계나 그러한 차원을 말한다. 욕계에서 벗어난 깨끗한 물질의 세계로 욕계에서와 같은 음욕ㆍ식욕 등의 탐욕은 끊어졌으나 아직 무색계처럼 순수한 정신적인 세계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아직도 물질적 가치인 형상에 얽매여 있는 세계이다.

색계의 ‘색色(rūpa)’은 물질을 뜻하는데, 불교에서 물질은 변괴성變壞性과 대애성對礙性을 가진 법, 즉 변하고 허물어지는 성질(변괴성)과 공간을 점유하고 있을 때 동일 유형의 다른 사물이 그 공간을 점유하는 것을 장애하는 성질(대애성)을 가진 사물이라고 정의된다. 대애성은 질애성質礙性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는 색계는 물질(色)로 이루어진 세계를 뜻한다.

욕계와 마찬가지로 색계도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라는 점에서 구분한다면 색계는 욕계의 물질보다 더 정묘한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와 그러한 정묘한 물질로 이루어진 육신을 가지고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유정들을 통칭한다.

색계는 3유三有 중에서 색유色有와 동의어이다. 여기의 ‘유有’라는 의미에는 ‘윤회’, 즉 ‘아직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해 계속 윤회하며 배움(學)을 완성시켜야 하는 존재’라는 뜻이 강하다.

무색계無色界: 무색계(산스크리트어 ārūpya-dhātu, 영어 formless realm)는 3유三有 가운데 무색유無色有와 동의어이다. 오온五蘊 중 색色을 제외한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만으로 구성되어 형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물질을 완전히 초월한 순수한 정신적 영역의 세계이다.>

『연기경』에서도 역시 ‘애愛’에 대하여 욕애欲愛ㆍ색애色愛ㆍ무색애無色愛의 3애三愛를 말하고 있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애愛는 갈애渴愛라고 하여 맹목적인 애념愛念을 말한다. 고락 등의 감수 작용이 강하면 그만큼 애증愛憎의 염念도 강해진다. 쾌락이 크면 그 쾌락을 가지려는 염이 강해지고, 고통이 크면 그 고통을 피하려는 염이 강해지는 것이다.

9) 취取: ‘취取’는 산스크리트어 upādāna(팔리어 upādāna)의 의역으로, 한자의 자의는 ‘가지다’ 또는 ‘취하다’이며, 영어로는 ‘attachment’이다. 모니어 모니어 윌리엄스(Monier Monier-Williams)의 『산스크리트어-영어 사전』에 따르면 취取의 산스크리트 원어 우파다나upādāna의 일반적인 의미는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취하는 행위(the act of taking for one's self),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전용轉用(쓸 곳에 쓰지 않고 다른 곳으로 돌려씀)하는 행위(appropriating to one's self), 받아들임(accepting), 허용함(allowing), 취함(taking), 획득함(acquiring) 등이 있다.

불교 용어로서는 갈애, 즉 탐욕이 원인이 되어 존재를 꽉 붙잡는 것 또는 집착하는 것으로 유, 즉 새로운 태어남들의 원인이 되는 것(grasping at or clinging to existence caused by tṛṣṇā, desire, and causing bhava, new births)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러한 불교 용어로서의 정의는 애연취愛緣取와 취연유取緣有의 의미를 합쳐서 취取를 정의한 것이다.

현대의 불교 사전들에 따르면 ‘취取’의 일반적인 의미는 집지執持(잡아서 지니다), 집취執取(잡아서 가지다)이며, 좁은 의미로는 집착執著(붙잡고 들러붙음)을 말하고, 넓은 의미로는 모든 번뇌煩惱를 뜻한다. 4취四取라고 할 때의 취取는 넓은 의미로서 번뇌를 가리킨다.

‘취取’는 싫어하는 것을 버리고 좋아하는 것을 취하는 행동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에 집착하는 취착取著이다. 앞에서의 ‘愛’는 마음속에 생기는 심한 애증의 욕구와 생각인데 반하여 여기의 ‘取’는 생각 뒤에 생기는 실제행동이다. 몸과 말에 의한 취사선택의 행위로서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ㆍ욕설 등이 이에 속한다.

애연취愛緣取(또는 연애취緣愛取), 즉 애愛가 있으므로 취取가 있다는 것은 번뇌이며 불선인 애愛가 있기 때문에 108번뇌, 즉 근본번뇌와 수번뇌隨煩惱를 합한 온갖 번뇌나 불선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3계의 사물들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상태인 욕애欲愛· 색애色愛ㆍ무색애無色愛의 3애三愛가 원인이 되어서 그러한 들러붙음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또한 더욱 고착화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미 발생한 취取, 즉 3계의 갖가지 번뇌가 있고 3계의 사물에 아주 확고히 들러붙어 있어서 이들로부터 떠나는 것이 거의 기대도 되지 않는 상태가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욕애ㆍ색애 또는 무색애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5취온이 집적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 『잡아함경』에 ‘취取’는 욕취欲取ㆍ견취見取ㆍ계취戒取ㆍ아취我取의 4취四取(산스크리트어 catvāry upādānāni, 팔리어 cattāri upādānāni)를 말하는데 이는 모든 번뇌, 정확히 말하면 108번뇌를 취取의 관점에서 4그룹으로 분류한 것이다. 즉, 대상을 그릇되게 좋아하여(오욕惡欲)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한다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분류한 것이다.

이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견취見取는 그릇된 견해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고, 계취戒取(또는 계금취戒禁取)는 그릇된 계율과 그릇된 금지조항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며, 욕취欲取는 욕계의 사물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고, 아취我取(또는 아어취我語取)는 색계ㆍ무색계의 사물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다.

욕취에 34번뇌, 견취에 30번뇌, 계취에 6번뇌, 아취에는 38번뇌가 있어서 총 108번뇌를 이룬다. 이 가운데 계취는 계금취戒禁取, 아취는 아어취我語取라고도 하며, 4취를 구역에서는 4수四受라고도 한다.

가. 욕취欲取

욕취(산스크리트어 kāmopādāna, 팔리어 kāmopādāna)는 욕계의 5욕五欲의 대상을 그릇되게 좋아하여(惡欲)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로, 즉 욕계의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의 5경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번뇌들이다. 욕취에는 욕계의 6경 가운데 6번째인 법경(정신적 대상)에 대한 취取가 제외되는데, 이는 4취 가운데 견취見取ㆍ계금취戒禁取에 소속된다.

욕취에 속한 번뇌들이란 구체적으로 욕계의 탐貪ㆍ진瞋ㆍ만慢ㆍ무명無明ㆍ의疑ㆍ10전十纏을 말한다. 번뇌를 근본번뇌와 수번뇌로 구분할 때, 욕취에 속한 번뇌들 중 탐ㆍ진ㆍ만ㆍ무명ㆍ의는 근본번뇌에 속하고 10전은 수번뇌에 속한다. 10전은 무참無慙ㆍ무괴無愧ㆍ질嫉ㆍ간慳ㆍ회悔ㆍ면眠ㆍ도거掉擧ㆍ혼침惛沈ㆍ분忿ㆍ부覆를 말한다.

설일체유부의 ‘번뇌론’에서 모든 근본번뇌는 견고소단見苦所斷ㆍ견집소단見集所斷ㆍ견멸소단見滅所斷ㆍ견도소단見道所斷ㆍ수도소단修道所斷의 5부五部의 관점에서 나뉘는데, 각각의 근본번뇌마다 5부 모두가 있는 경우도 있고 특정한 몇 부만 있는 경우도 있다.

욕취에 속한 탐貪ㆍ진瞋ㆍ만慢ㆍ무명無明ㆍ의疑ㆍ10전十纏을 5부에 따라 나누면 욕계의 탐ㆍ진ㆍ만ㆍ무명에는 모두 5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총 20가지의 번뇌가 있게 되고, 의疑는 견소단見所斷의 번뇌이므로 수도소단을 제외한 4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4가지의 번뇌가 있게 된다. 10전은 수번뇌인데 비록 수번뇌에 대해서도 5부 분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108번뇌를 헤아릴 때는 수번뇌는 5부로 나누는 대상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10가지의 번뇌가 되어 총 34가지의 번뇌가 있게 된다. 이들 34번뇌를 전통적인 표현으로 34사三十四事라고 한다. 즉, 108번뇌 중 34번뇌가 욕취에 속한다.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는 산스크리트어 사르바스티바다(सर्वास्तिवाद sarvâsti-vāda)의 의역으로 부파불교 시대의 종파들 중에서 가장 유력한 부파이면서 부파불교의 사상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파이다. 줄여서 유부有部라고도 하며, 음역하여 살바다부薩婆多部라고도 한다.

‘설일체유부’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모든 법(一切法)이 존재한다(有)’라고 설명하는 부파(部)을 의미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걸쳐 법의 실체가 존재한다. 말하자면, 법의 실체는 항상 존재한다.’라는 의미의 ‘삼세실유법체항유三世實有法體恒有’는 설일체유부의 주장을 대표하는 명제이다.

나. 견취見取

견취(산스크리트어 drsty-upādāna, 팔리어 ditthi-upādāna)는 3계(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그릇된 견해를 그릇되게 좋아하여(惡欲)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번뇌로서의 견見, 즉 그릇된 견해를 이루는 5견五見(유신견有身見ㆍ변집견邊執見ㆍ사견邪見ㆍ견취견見取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 중 유신견ㆍ변집견ㆍ사견ㆍ견취견의 4견을 말한다. 즉, 욕계의 4견, 색계의 4견, 무색계의 4견을 통칭한다. 번뇌를 근본번뇌와 수번뇌로 구분할 때 4견을 포함한 5견五見은 모두 근본번뇌에 속한다.

견취에 속한 3계의 유신견ㆍ변집견ㆍ사견ㆍ견취견을 5부에 따라 나누면 총 30가지의 번뇌가 있게 되고, 이들 30번뇌를 전통적인 표현으로 30사三十事라고 한다. 즉, 108번뇌 중 30번뇌가 견취에 속한다. 구체적으는, 유신견有身見은 4성제 가운데 고苦, 즉 5취온에 대해 미혹하여 생겨난 견해이기 때문에 5부 가운데 오직 견고소단이다. 따라서 3계 각각에 유신견이 있으므로 유신견으로는 총 3가지의 번뇌가 있다.

변집견邊執見 또한 5취온이라는 현행(현재행위)의 결과에 대해 영원한 것 혹은 영원히 소멸되는 것으로 주장하는 견해이기 때문에 5부 가운데 오직 견고소단이다. 따라서 3계 각각에 변집견이 있으므로 변집견으로는 총 3가지의 번뇌가 있다.

사견邪見은 인과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곧 4성제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견고소단ㆍ견집소단ㆍ견멸소단ㆍ견도소단의 4부가 존재한다. 따라서 3계 각각에 사견이 있으므로 사견으로는 총 12가지의 번뇌가 있다.

견취견見取見은 유신견ㆍ변집견ㆍ사견 등의 저열한 견해를 진리라고 주장하는 견해이기 때문에 견고소단ㆍ견집소단ㆍ견멸소단ㆍ견도소단의 4부가 존재한다. 따라서 3계 각각에 견취견이 있으므로 견취견으로는 총 12가지의 번뇌가 있다.

이상과 같이 유신견에 3가지, 변집견에 3가지, 사견에 12가지, 견취견에 12가지의 번뇌가 있어서 견취는 총 30가지의 번뇌로 이루어져 있다.

다. 계취戒取

계취(또는 계금취戒禁取, 산스크리트어 śīla-vratopādāna, 팔리어 sīla-bbata-upādāna)는 3계의 그릇된 계율이나 그릇된 금지조항을 그릇되게 좋아하여(惡欲)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번뇌로서의 견見, 즉 그릇된 견해를 이루는 5견五見 가운데 계금취견戒禁取見을 말한다. 즉, 욕계의 계금취견, 색계의 계금취견, 무색계의 계금취견을 통칭한다. 번뇌를 근본번뇌와 수번뇌로 구분할 때 계금취견을 포함한 5견五見은 모두 근본번뇌에 속한다.

계금취에 속한 3계의 계금취견을 5부에 따라 나누면 총 6가지의 번뇌가 있게 되고, 이들 6번뇌를 전통적인 표현으로 6사六事라고 한다. 즉, 108번뇌 중 6번뇌가 계금취에 속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계금취견戒禁取見은 한편으로는 자재천自在天(힌두교의 시바 신의 불교식 명칭) 등이 5온과 세계의 참된 원인이 아님에도 그것을 참된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그릇된 견해이기 때문에 현행의 결과 즉 4성제 가운데 고苦(즉, 5취온)에 대한 바른 관찰(즉, 고제현관苦諦現觀)이 있을 때 바로 끊어지는 그릇된 견해이기 때문에 견고소단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계금취견은 불 속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고행이 참된 길(道)이 아닌데 그것을 해탈과 열반에 이르는 참된 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그릇된 견해이기 때문에 견도소단이다. 따라서 3계 각각에 계금취견이 있으므로 계금취견으로는 총 6가지의 번뇌가 있다.

라. 아취我取

아취(또는 아어취我語取, 산스크리트어 ātma-vādopādāna, 팔리어 atta-vādupādāna)에서 아취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나를 취하는 것’으로서 ‘나에 대한 집착’을 뜻한다. ‘아어취我語取’의 한자 자의는 ‘나의 말을 취하는 것’으로 ‘나의 말에 대한 집착’을 뜻한다.

‘아취(또는 아어취)’는 색계ㆍ무색계의 사물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로, 색계ㆍ무색계의 소의신所依身(의신依身, 곧 육신肉身)의 뛰어난 상태를 ‘나’라고 여겨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즉, 색계ㆍ무색계의 소의신의 뛰어난 상태를 그릇되게 좋아하여(惡欲)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을 통칭한다.

구체적으로는 색계와 무색계의 탐貪ㆍ만慢ㆍ무명無明ㆍ의疑를 말한다. 번뇌를 근본번뇌와 수번뇌로 구분할 때 이들은 모두 근본번뇌에 속한다. 욕취의 경우와는 달리 아취(또는 아어취에)는 진瞋이 포함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진瞋은 욕계에만 존재하는 번뇌이기 때문이다.

아취(아어취)에 속한 색계와 무색계의 탐ㆍ만ㆍ무명ㆍ의를 5부에 따라 나누면 색계와 무색계의 탐ㆍ만ㆍ무명에는 모두 5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색계에 15가지 번뇌가 있고 무색계에 15가지의 번뇌가 있어 총 30가지의 번뇌가 있다.

의疑는 오직 견소단見所斷의 번뇌이기 때문에 5부 가운데 수도소단이 제외되므로 색계에 4가지가 있고 무색계에 4가지가 있어서 총 8가지의 번뇌가 있다. 따라서 아취 또는 아어취에는 총 38가지의 번뇌가 있게 된다. 이들 38번뇌를 전통적인 표현으로 38사三十八事라고 한다. 즉, 108번뇌 중 38번뇌가 아취(아어취)에 속한다.

※ 『연기경』에도 ‘취取’는 욕취欲取ㆍ견취見取ㆍ계금취戒禁取ㆍ아어취我語取의 4취四取를 뜻한다.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취取는 집착執着 또는 번뇌煩惱를 의미한다. 제8지분인 애愛에 연하여 일어나는, 대상에 대한 강한 취사선택의 행동을 말한다. 다른 견해에 따르면, 취는 번뇌가 강화되고 이에 따라 아집我執 즉 번뇌장煩惱障이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아집은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는 견해로 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함으로써 열반(또는 해탈)을 가로막아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윤회를 반복케 하는 장애라는 뜻에서 번뇌장이라고도 한다.>

10) 유有: ‘유有’는 산스크리트어 bhava(팔리어 bhava)의 의역이다(영어 becoming). ‘유’는 넓은 의미에서 현상적 존재를 가리키므로 행과 유위有爲를 포함하는 일체의 존재개념이며, 여기에서 말하는 ‘유’는 취에 의한 취사선택의 실제행위가 그 여력을 남긴 것으로 과거 행위의 습관력의 축척인 동시에 그것은 미래의 행위를 규정하는 것이다.

즉, 애ㆍ취에 의한 여러 행위가 만든 업, 즉 선악업이 축적되어 의식과 행동력을 결정짓는 잠재력으로 자리 잡게 됨으로써 미래의 결과를 만드는 작용이다. 우리의 현 존재는 과거의 행위경험이 축적된 것인바, 우리의 현 존재가 ‘유’이므로 현 존재로서의 인격이 기본이 되어 우리의 미래를 규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잡아함경』에 ‘유有’는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의 3유三有를 말한다. 3유三有는 세계라는 측면에서는 3계를 뜻하고, 유정이라는 존재의 측면에서는 욕계의 유정ㆍ색계의 유정ㆍ무색계의 유정을 뜻한다. 유정이란 명색의 화합체, 즉 5온의 화합체를 말하는 것으로 유전연기의 관점에서는 취取, 즉 온갖 번뇌에 물들어 있는 5온(5취온)을 말한다. 따라서 유전연기의 관점에서는 유有는 5취온을 말하며, 번뇌로 인해 생사윤회를 피할 수 없이 윤회할 수밖에 없는 상태의 삶을 말한다.

이와 관련된 내용으로 『잡아함경』 「음근경陰根經」에는 5온으로 하여금 5취온이 되게 하는 근본 요인은 욕탐欲貪이다. 5온이 곧 취取인 것은 아니나 5온이 취取와 다른 것도 아니다. 5온에 욕탐欲貪이 있으면 5온이 곧 5취온이 된다(非五陰即受 亦非五陰異受 能於彼有欲貪者 是五受陰)라고 한다.

취연유取緣有(또는 연취유緣取有), 즉 취取가 있으므로 유有가 있다는 것은 욕취欲取ㆍ견취見取ㆍ계취戒取ㆍ아취我取의 4취四取, 즉 108번뇌에 물든 상태가 있기 때문에 5취온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갖가지 번뇌가 있기 때문에 욕계의 유정으로서의 존재이건, 색계의 유정으로서의 존재이건, 무색계의 유정으로서의 존재이건 생사윤회를 피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미 발생한 유有, 즉 욕유欲有ㆍ색유色有 또는 무색(無色有로서의 존재가 있고, 이러한 존재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취取가 존재한다는 것이며, 곧 갖가지 번뇌에 물든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연기경』에서 역시 ‘유有’는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의 3유三有를 뜻한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서 ‘유有’는 현 존재 또는 현재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애愛와 취取의 행위가 잠재의식화 되는 것, 즉 애와 취의 행위가 자신의 성품ㆍ마음ㆍ습관ㆍ체질의 일부가 되는 것에 의해 현 존재인 유有가 규정된다고 한다.

11) 생生: ‘생生’은 산스크리트어 jāti(팔리어 jāti)의 의역으로 ‘태어남’을 뜻한다(영어 birth). ‘생’은 유정有情이 어떤 유정의 부류에 태어나는 것이기도 하고, 일상생활에서 어떤 경험이 생기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 그 유정의 과거 모든 경험의 여력으로서의 지능ㆍ성격ㆍ체질 등을 지니고 태어나게 된다. 각 개인이 각기 일정한 소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그 사람의 소질(有)을 기초로 하여 새로운 경험이 생기는 것이다. 결국 ‘생’은 유라는 소질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여 새롭게 생이 발생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내세의 생’이라 할 수도 있다.

『잡아함경』에서 ‘생生’은 각각의 중생衆生이 각각의 몸의 종류로 한 번의 생을 넘어 화합하여 태어나서는 음陰을 득하고, 계界를 득하고, 입처入處를 득하고, 명근命根(목숨 뿌리, 생명력, 생명활동)을 득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각 낱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 ‘각각의 중생(彼彼衆生)’은 유정有情의 구역으로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삼계(즉, 삼유)의 세계 가운데 어느 하나에서 소의신所依身(의신依身, 곧 육신肉身, 육체肉體)을 가지고 살고 있는 개개의 유정을 말한다. 육신(신체)은 마음과 마음작용이 그 의지처가 되기 때문에 ‘의지하는 바의 육신’이라는 뜻에서 소의신이라고 한다.

- ‘각각의 몸의 종류(彼彼身種類)’는 중동분衆同分, 즉 유정의 동류상사성同類相似性을 말한다.

- ‘한 번의 생을 넘어 화합하여 태어나는 것(一生超越和合出生)’은 5온의 화합이 한 번의 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으로 상속相續되고 유전流轉하는 것을 말한다.

- ‘음陰을 득하는 것(得陰)’은 5온이 갖추어지는 것을 말한다. ‘계界를 득하는 것(得界)’은 18계가 갖추어지는 것을 말한다. ‘입처入處를 득하는 것(得入處)’은 12처가 갖추어지는 것을 말한다.

- ‘명근命根을 득하는 것(得命根)’은 생에서 생으로 윤회할 때, 즉 5온이 생에서 생으로 상속되고 유전할 때 전생前生에 쌓은 원인에 따라 일정한 수명을 부여받는 것을 말한다. 또한 그 수명 동안 살아가는 것, 즉 한 생애를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한 생애를 살아가는 것이란, 그 생애 동안 무명無明에서 유有, 즉 5취온으로 이어지는 유전연기를 행하거나 무명無明을 단멸시키고 나아가 유有, 즉 5취온을 5무루온으로 변형시키는 환멸연기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유연생有緣生(또는 연유생緣有生), 즉 유有가 있으므로 생生이 있다는 것은 욕유ㆍ색유ㆍ무색유의 3유 가운데 어느 하나의 존재(즉, 5취온의 상태)가 있으므로, 즉 생사윤회를 피할 수 없는 상태가 있으므로 태어남이 생겨난다는 것(즉, 다른 일생을 받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또한 5취온(유有 또는 유정有情)은 죽음으로 그냥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으로 상속되고 유전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미 발생한 생이 있다면, 즉 생사윤회를 벗어나지 못하여 받은 삶이 있다면, 즉 자신이 3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라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유有가 존재한다는 것, 즉 5취온의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연기경』에서 생生은 각각의 유정有情이 각각의 유정의 종류로 갖가지 생에서 6취六趣 (육도六道) 가운데 태어나서는 온蘊을 일으켜 나타내고, 계界를 득하고, 처處를 득하고, 모든 온蘊을 득하고, 명근命根(목숨 뿌리, 생명력, 생명활동)이 생기고 나타나는 것을 뜻한다.

<‘육취六趣’는 곧 육도六道를 말하며, 일체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인業因에 의해 필연적으로 이르는 여섯 가지의 미계迷界이다. 중생이 깨달음을 증득하지 못하고 윤회할 때 자신이 지은 업業에 따라 태어나는 세계를 6가지로 나눈 것인데, 삼악도三惡道인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와 삼선도三善道인 아수라도阿修羅道(또는 수라도),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의 여섯 가지를 말한다. 여기에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삼계를 더하여 삼계육도라고 부른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서 생生은 유有에 의해서 있게 된다고 한다.

12) 노사老死: 산스크리트어 jarā-maraṇa(팔리어 jarā-maraṇa)의 의역으로(영어 aging, decay and death) 인간이 태어나 반드시 늙고 죽음을 뜻한다. 老死의 본래 자의는 이러한 자연적인 사실을 말하나 여기서는 그러한 노사와 관련된 고통을 가리킨다.

사람은 태어난 이후부터 시작하여 늙고 죽는 그 순간까지 수많은 괴로움을 겪게 되는데, 그 일체의 고뇌가 노사에 의해 생긴다는 입장에서 ‘노사’를 모든 인간고의 총칭으로 보는 것이다.

『잡아함경』에 노사老死는 노老와 사死, 즉 늙음과 죽음을 통칭하는 말이다. ‘노老(늙음)’는 털이 하얗게 세고 정수리가 벗겨지며, 가죽이 늘어지고 5근根이 문드러지며, 4지支가 약해지고 등이 굽어지며, 머리를 떨어뜨리고 끙끙 앓으며, 숨이 짧아져 헐떡이며,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몸이 검게 변하며, 온몸에 저승꽃이 피며, 정신이 희미해져 멍청히 있으며, 거동하기 어려울 정도로 쇠약해지는 것을 말한다.

‘사死(죽음)’는 각각의 중생衆生이 해당되는 무리로부터 사라지고 천이遷移하며, 몸이 무너지고, 수壽가 다하고, 따뜻한 기운(火)이 떠나고, 명命이 소멸하여 음陰(5온)을 버릴 때가 온 것을 말한다.

생연노사生緣老死(또는 연생노사緣生老死), 즉 생生이 있으므로 노사老死가 있다는 것은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늙음과 죽음이 있다는 것으로, 열반에 이른 상태가 아닌 한 생사윤회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미 발생한 노사老死, 즉 늙음과 죽음이 있다면 반드시 그 기본 전제가 되는 생生, 즉 태어남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5취온 상태의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연기경』에서 ‘노老(늙음)’는 머리카락이 빠지고 변하며, 피부가 늘어지고 쭈그러지며, 온몸이 쇠약해지고 제 모습을 잃어가며, 몸과 등은 구부러지고 굽으며, 검버섯이 몸의 여기저기에 피어나며, 숨결은 가빠지며, 몸의 모양은 구부정해져서 지팡이에 의지하며, 정신은 혼미하고 몸은 파리하여 줄어들고 쇠퇴하며, 5근이 노화하여 기능을 상실해가며, 모든 행동이 부자연스러우며, 몸의 형태가 무너져 가는 것을 말한다.

‘사死(죽음)’는 각각의 유정有情이 해당되는 무리로부터 마침내 사라지고 없어지며, 수壽와 난煖(온기)을 버리고, 명근命根(생명작용)이 다하여 없어지고, 모든 온蘊(5蘊)을 버리고 죽을 때가 되어서 그 운運(운용運用)이 다한 것을 말한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는 노사老死의 고苦가 유有와 생生에 의해서 있게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