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61장~70장)

노자 도덕경 제64장

나무와 까치 2014. 6. 30. 07:54

제64장. 종사從事

 

 

 

기안이지 기미조이모 기취이반 기미이산 위지어미유 치지어미란

其安易持 其未兆易謀 其脆易泮 其微易散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안정된 것은 유지하기 쉽고, 조짐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도모하기 쉽다. 연하면 풀려 부스러지기 쉽고, 미소하면 흩어지기 쉽다. (모든 일은 그 조짐이) 있기 전에 위하고, 어지럽기 전에 다스린다.

 

- 其安易持: 안정되어 있는 것은 (그 상태로) 유지하기가 쉽다. 안정된 상태에서도 변함없이 정성을 다한다면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모든 일은 그 조짐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 (미리 자연스럽게) 조치한다. 천하의 질서가 어지럽게 된 이후에 백성을 감찰하고 통제하며 획일적으로 다잡는 것은 정치 중에서도 최후의 정치이다. 그런 것으로는 예전의 유기적 자생력을 가진 순박하고 조화로운 사회질서로 되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합포지목 생어호말 구층지대 기어루토 천리지행 시어족하

合抱之木 生於毫末 九層之臺 起於累土 千里之行 始於足下

아름드리나무는 가는 털끝에서 생겨나고, 구층 누대는 흙을 쌓아 일어나며, 천리행보도 (첫)발을 내딛음에서 시작한다.

 

- 合抱之木 生於毫末: 아름드리나무도 털끝 같은 새싹에서 생겨난다.

 

 

위자패지 집자실지 시이성인무위고무패 무집고무실

爲者敗之 執者失之 是以聖人無爲故無敗 無執故無失

(의도적으로) 위하면 무너지며, (정치를) 다잡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러한바 성인은 (사사로운) 위함이 없으므로 무너짐이 없고, 다잡음이 없으므로 잃음이 없다.

 

- 爲者敗之: 천하 만물의 상자연한 본성을 무시한 채 사사로운 욕심으로 백성을 부추기고자 의도적으로 위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실패한다.(爲者敗之 執者失之: 제29장)

 

 

민지종사 상어기성이패지 신종여시 즉무패사 시이성인욕불욕 불귀난득지화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愼終如始 則無敗事 是以聖人欲不欲 不貴難得之貨

학불학 복중인지소과 이보만물지자연이불감위

學不學 復衆人之所過 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

백성이 정사를 (잘) 따르고 있는데 (그것이) 거의 완성되는 과정에서는 늘 (임금이 스스로) 그르친다. 끝까지 삼가 조심하며 처음같이 하면 일을 그르침이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인은 (사사로운) 욕심을 갖지 않고자 하며,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중히 여기지 않는다. 학문을 배우지 않음을 배워 뭇사람의 지나침을 되돌린다. (그렇게) 만물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도록 돕되, 굳이 (사사로이) 위하지 않는다.

 

- 從事: ‘從事’라 함은 본래 ‘(참되게) 일을 받듦’인데, 여기서는 ‘(임금의) 정사를 따름’으로 새길 수 있다.(從事: 제23,64장)

 

-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임금의 노력으로) 백성이 정사를 (참되게 잘) 따르고 있는데 (그것이) 거의 온전히 이루어지는 단계에 이르러서는 늘 (임금의 욕심과 교만으로 스스로 일을) 그르친다.

 

- 是以聖人欲不欲 不貴難得之貨: 이 때문에 성인은 (부귀권세나 명예 등 사사로운) 욕심을 갖지 않고자 하며,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중히 여기지 않는다.

‘欲’은 자의가 ‘하고자할 욕’으로 ‘욕구欲求’ 또는 ‘욕망欲望’으로 새길 수 있으며, 여기서는 ‘부귀권세와 명예에 대한 욕망’이 된다. 『노자』에서 ‘欲’은 대부분 ‘부귀권세나 명예에 대한 욕구’ 혹은 ‘사사로운 욕망’을 의미한다. ‘欲不欲’은 ‘사사로운 욕망을 갖지 않고자 함’이며, ‘무욕無欲’은 ‘사사로운 욕망이 없음’이다.(無欲: 제1,34,57장)(不欲: 제3,39,64장)

또한, ‘얻기 어려운 재화’는 일상의 생활용품이 아닌 진귀한 보물이나 희귀하고 이색적인 재화를 말한다.

 

- 學不學 復衆人之所過: 학문을 배우지 않음을 배워 뭇사람의 지나침을 되돌린다. ‘學’은 ‘학문을 배움’이다. 당시에 ‘학문’이라 함은 주로 시ㆍ서ㆍ예ㆍ악ㆍ역 등을 말하며, 자연과학이나 실용적인 기술 같은 것은 학문이라 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천연한) 도의 밝음에 장애가 되는 문리文理적 사변이나 형이상학적 추론 등 상대적 분별인 ‘학식’을 일컫는다.

過’는 ‘지나침’이며, 여기서는 (부귀영화나 명예에 대한) 과도한 욕심과 그로인한 다툼을 말한다.

 

- 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 천하의 사람들이 자연스런 상태로 자생하도록 도울 뿐 굳이 (사사로운 의도를 가지고) 위하지 않는다. 여기서 ‘만물’은 ‘사람들’로 새길 수 있다.

 

 

[章注] 원문 其脆易泮은 하상공본에 ‘泮’이 ‘破’로 되어있고, ‘禍亂未至萌 情欲未見於色 如脆弱易破除也<화란이 싹틈에 이르지 않고 정욕이 색(외양)으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는 취약하여 쉽게 깨져버리는 상태와 같다.>’라고 주석하여 선도의 입장으로 풀이한다.

원문 治之於未亂에서 ‘하상공’은 ‘治身治國 於未亂之時 當豫閉其門<몸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아직 어지러워지지 않을 때 마땅히 미리 그 문을 닫아야 한다.>’라고 주석한다. 여기서 ‘문’은 ‘욕망의 문’을 말한다.

원문 執者失之에서는 ‘執利遇患 執道全身 堅持不得 推讓還及<이득을 움켜잡으면 근심을 만나지만 도를 잡으면 몸이 온전해진다. 굳게 가지면 얻지 못하고 (남에게) 미루고 사양하면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라고 주석한다.

원문 學不學에서 ‘하상공’은 ‘聖人學人所不能學 人學智詐 聖人學自然 人學治世 聖人學治身 守道眞也<성인은 사람들이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운다. 사람들은 지혜와 거짓을 배우지만 성인은 상자연함(스스로 그러함)을 배운다. 사람들은 세상 다스리는 것을 배우지만 성인은 몸을 다스리어 도의 참됨을 지키는 것을 배운다.>’라고 주석하며 본장 전체를 황로학의 입장으로 풀이한다.

원문 復衆人之所過에서는 ‘衆人學問皆反也 過本爲末 過實爲華 復之者 使反本實者也<많은 사람(人은 주로 公 등의 귀족)의 배우고 익힘은 모두가 (근본에) 반하는 것이다. 근본을 간과하고 말단을 위하며, 실질을 지나치고 화려함을 위한다. ‘되돌린다.’ 는 것은 근본과 실질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라고 주석하여 왕필보다 앞서 이미 ‘本末의 개념’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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