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장. 무사無事
이정치국 이기용병 이무사취천하 오하이지기연재 이차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吾何以知其然哉 以此
바름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며 기묘하게 군사를 쓰는데, (사실은) 일을 벌임이 없음으로써 천하를 취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러한 지를 내가 어떻게 아는가? 이로써 안다.
- 以正治國: 바름으로써 나라를 다스린다. 여기서 ‘바름(正)’은 법령 등으로 옳은 기준을 획일적으로 규정하여 백성을 세밀히 감찰하고 통제하는 것을 일컫는다. 참된 덕이란 임금이 백성의 마음으로 내 마음을 삼아 백성의 생각을 일일이 함께 헤아리고 섞이며 더불어 동화하는 것이다.
- 以奇用兵: 기묘하게 군사를 쓴다. 군사는 나라를 튼튼히 방어하고 백성을 지키는데 쓰는 것이 본래의 용도이다. 이를 기묘하게 쓴다는 것은 하늘을 대리한다는 정벌征伐의 명분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권력자의 사사로운 욕망을 위해 백성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함을 말한다.
- 吾何以知其然哉 以此: 그것이 그러한 지를 내가 어떻게 아는가? 이로써 안다. 여기서 ‘其然’은 ‘以無事取天下’를 말하며, ‘以此’는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의 네 가지 사례 ‘天下多忌諱而民彌貧..’를 가리킨다.(제54장 吾何以知天下然哉 참고)
- 제57장에서는 吾ㆍ我ㆍ自ㆍ民ㆍ人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 ‘吾’는 자기를 낮추면서 상대방을 대접하여 ‘나’를 칭하는 것이 본래의 쓰임인데, 가족이나 특정 집단 등 몇 명의 무리를 대표하여 대외적으로 ‘나’를 칭할 때는 ‘우리’가 된다.
한편, 대화상대자를 우호적으로 대접하는 의미에서 ‘나’와 함께 ‘우리(吾)’라 칭하며 ‘나’라는 1인칭을 대신하거나, 혹은 그런 식으로 대화상대자를 예우하여 ‘그대(You)’의 2인칭을 대신하기도 한다.
한편, ‘아我’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자아自我의 정체’로서 ‘나’이다. 이에 대해 ‘기己’는 외형적인 형태로 타인과 구별되는 ‘나’로서 ‘자기’ 혹은 ‘그’가 된다. 또 ‘자自’는 코로 숨을 쉬며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생활의 주체로서 ‘자신’이며 몸의 생리적 작용으로서 의미가 강하다. ‘신身’은 몸을 펴고 구부리며 물리적으로 작용하는 ‘자신’으로서 신체의 물리적인 기능과 관련이 있다.
고대 금문에 ‘民’은 시력을 빼앗긴 사람을 표현한 모양의 글자인데, 정복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 씨족과 종속관계에 있는 ‘이족의 사람’ 곧 피정복 인을 뜻하는 글자이다. 이들은 여러 변방의 다양한 백성百姓으로서 처음엔 ‘人’과 종속관계의 하등신분이었다가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씨족적 질서가 대중화되면서 점차 평민화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상商(은殷의 정식명칭)나라 때의 갑골문에 ‘人’은 사람의 옆모습을 형상한 것이다. ‘人’은 본래 씨족의 공동체를 함께 구성하는 집단 내부의 사람인데, 이후 집단의 세력이 커지고 규모가 조직화되면서 民과 구별되는 제후나 귀족 등을 의미하게 된다.(뒤의 ‘人多伎巧 奇物滋起’에 대한 「하상공장구」 ‘人은 군주로서 백리제후이다’ 참고)
(吾: 4,13,16,21,25,29,37,42,43,49,54,57,69,70,74장)(我: 17,20,42,53,57, 67,70장)(己: 81장)(自: 22,23,24,32,33,34,37,39,57,64,72,73장)(身: 9,13, 26,44,52,54장)(民: 제3,10,19,32,57,58,64,65,66,72,74,75,80장)
천하다기휘이민미빈 민다리기국가자혼 인다기교기물자기 법령자창도적다유
天下多忌諱而民彌貧 民多利器國家滋昏 人多伎巧奇物滋起 法令滋彰盜賊多有
천하에 금기가 많으면 백성은 더욱 가난하고, 백성이 (삿된) 이기를 많이 가지면 나라에 어두움이 많다. 사람들이 교묘한 재주가 많으면 기묘한 물건이 많이 생기며, 법령이 (많이) 불어나면 도적이 많다.
- 天下多忌諱而民彌貧: 당시에는 농사에 적절한 토지를 임금의 수렵이나 어업, 취미를 위한 장소로 지정하는 등 여러 가지 금기사항이 많았는데, 흉년에 굶주린 백성들이 이를 어기고 침범하여 고기를 잡거나 하게 되면 중벌에 처해졌던바 그 때문에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빈곤하게 되었다.
- 民多利器國家滋昏: 백성들이 이익을 짓는 기구를 많이 가지면 나라에 어두움이 많다. 당시 이윤을 짓는 기구라면 주로 저울, 되 등의 도량형을 말하는데, 당시의 중원에는 각 나라와 지방마다 도량형이 달라서 사람들이 되와 저울을 속이는 부정한 상거래로 서로가 삿된 이익을 취하므로 천하의 질서가 매우 어지러웠다.
- 人多伎巧 奇物滋起: 사람이 기교가 많으면 기묘한 물건이 많이 생긴다. 여기서 ‘기이한 물건’은 실생활에 필요한 물품이외의 화려한 장식과 복식, 구조물, 이색적인 취미도구 등을 일컫는다. ‘人’은 제후나 귀족 등 지도층 인사를 말한다.
- 法令滋彰盜賊多有: 복잡하고 까다로운 법령이 많이 불어나면 도적이 많다.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경공(재위 BC599년-BC581년) 때의 상경 ‘사회士會’가 도적을 잡아들이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법조문을 모두 없애버리고 검소하고 실용적인 정치를 하였던바 그로써 도적이 된 백성들은 모두 양민으로 돌아왔으며, 도적의 수괴들은 결국 모두 이웃 나라로 달아나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제19장 絶巧棄利 盜賊無有 참고)
고성인운 아무위이민자화 아호정이민자정 아무사이민자부 아무욕이민자박
故聖人云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그러므로 성인은 “내가 무위함으로써 백성이 스스로 변화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여 백성이 스스로 바르게 되며, 내가 일을 벌임이 없으므로 백성이 스스로 풍부하고, 내가 (사사로운) 욕망이 없으므로 백성은 스스로 순박하게 된다.”고 말한다.
- 無爲: 자의는 ‘위함이 없음’이다. ‘無爲’는 한마디로 ‘천연한 그대로 자연스러운 위함’이며, 백성을 위하되 사사로움이 없이 은미하게 위함을 일컫는다.(無爲: 제2,3,43,57,63장)
- 我好靜而民自正: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여 백성이 스스로 바르게 된다.(제26장 重靜 및 제45장 淸靜爲天下正 참고)
- 無事: ‘無事’는 ‘일이 없음’ 혹은 ‘일을 벌임이 없음’이다. 사사로이 공역功役을 벌이거나 법령, 제도 등으로 백성을 획일적으로 통제함이 없음을 말한다.(無事: 제48,57,63장)(有事: 제48장)(事天: 제59장)(從事: 제23,64장)
- 無欲: ‘하고자 함이 없음’ 또는 ‘사사로운 욕구가 없음’이며, 여기서는 부귀권세와 명예에 대한 욕망이 없음이다.(無欲: 제1,3,57장)(不欲: 제64장)
[章注] 원문 以正治國에서 ‘하상공’은 ‘以 至也 天使正身之人 使有國也<‘이’는 '이르다'이다. 하늘은 몸이 바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라를 갖게 한다.>’라고 하며 황로학의 입장을 보인다.
원문 以奇用兵에서는 ‘奇 詐也 天使詐僞之人 使用兵也<‘기’는 ‘속이다’이다. 하늘은 속이는 사람을 시켜 군사를 쓰게 한다.>’라고 주석하고,
원문 以無事取天下는 ‘以無事無爲之人 使取天下爲之主<일을 만듦이 없고 무위로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취하여 주인이 되게 한다.>’라고 주석하며,
원문 天下多忌諱而民彌貧에서는 ‘天下 謂人主也··<‘천하’는 ‘군주’이다.··>’라고 주석하여 천하를 군주로 해석하며,
원문 人多伎巧 奇物滋起는 「하상공장구」에 원문 ‘伎’가 ‘技’로 되어 있고, ‘人 謂人君百里諸侯也··<‘인’은 ‘군주로서 백리제후’를 말한다.···>’라고 주석한다.
원문 法令滋彰 盜賊多有는 「하상공장구」에서 원문의 ‘令’을 ‘物’로 쓰며, ‘法物 好物也 珍好之物 滋生彰著 則農事廢 飢寒近至 故盜賊多有<‘범물’은 ‘좋아하는 물건’이다. 진귀하고 좋은 물건이 많이 생겨나고 널리 드러나면 농사가 폐하여 기근과 추위가 가까이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도적이 많다.>’라고 주석하여 황로학의 입장을 보인다.
그 다음엔 「하상공장구」 이외의 판본에서는 보이지 않는 원문 ‘我無情而民自淸’이란 구절이 나오고, ‘聖人言 我修道守眞 絶去六情 而民隨我而淸<성인은 말한다. ‘내가 도를 닦아 (심신의) 참됨을 지켜 여섯 가지 감정을 끊어버리니 백성이 나를 따라 맑아진다.>’이라 주석한다. 여기서 ‘6정’은 희ㆍ로ㆍ애ㆍ락ㆍ애ㆍ오의 여섯 감정을 뜻하는데, 하상공은 본장 전체를 황로학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한편, 왕필은 원문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에서 ‘···夫以道治國 崇本以息末 以正治國 立辟以攻末···<···무릇 도로써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근본을 귀중히 함으로써 말단을 쉬게 하는 것이며, 바름으로써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권위를 세워 말단을 다그치는 것이다.···>’이라고 주석하며 ‘崇本息末’의 논리로 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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