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61장~70장)

노자 도덕경 제67장

나무와 까치 2014. 7. 21. 08:12

제67장. 삼보三寶

 

 

 

천하개위아도대사불초 부유대 고사불초 약초구의 기세야부

天下皆謂我道大似不肖 夫唯大 故似不肖 若肖久矣 其細也夫

천하가 다 일컫기를 나의 도는 커서 (다른 어떤 道와도) 닮지 않은 것 같다고 한다. 오로지 (그 뜻과 형체가) 크기 때문에 닮지 않은 것 같다. 만약 닮아서 오래되었다면 (이미) 세상의 자잘한 도일 것이로다.

 

- 天下皆謂 我道大似不肖: 천하가 다 말하기를 나의 도는 커서 (다른 어떤 道와도) 닮지 않은 듯하다고 한다. ‘不肖’는 자의가 ‘(무엇을) 닮아 있지 않다’이다. 즉, 같은 부류의 그 무엇에 비해 그만큼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가 강하며, ‘변변치 못하여 뭔가 없어 보인다.’는 어감을 가진다.(『장자』 ‘인간세’편 제1-3절 및 제2-5절 ‘不肖’ 용례 참고)

노자는 제1장에서 도라고 다 도가 아니라 했으며, 제41장에서는 일반의 사람들이 도를 듣고 크게 웃지 않으면 도로서 부족하다고 하였고, 제70장에서는 나의 말은 매우 알기 쉽고 매우 행하기 쉬운데, 천하가 알지 못하고 행하지도 못한다고 하였다. 또한 제32장에서는 명분이나 상대적 관념에 의한 기존의 제도(결국, 이는 기존의 도를 말한다)의 답습을 그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始制有名 名亦旣有 夫亦將知止).

나의 도는 세상에서 너무도 흔한 자애, 검소, 천연함 같은 것들은 귀중히 여기면서 천하가 선망하는 부귀영화나 명에 같은 것들은 오히려 하찮게 여기는바, 세상에서는 그러한 나의 도는 화려하고 번듯한 기존의 유능한 道와 닮지 않은듯하다고 말한다.(我: 제17,20,42,53,57,67,70장)

참고: 주나라가 개국할 당시는 귀와 신(당시 귀신은 곧, 천제나 천신과 동의어)이 우주를 지배하는 세계였던바 천하를 지배하는 지도자는 그러한 신과 직접 교통하는 왕王이나 그 이하 제후들이었다. 이후 서주시대에서 동주시대로 변전되면서 하늘의 아들인 왕의 권위는 바닥에 떨어지고, 신성한 권위가 무색해진 기존의 그 자리는 신선神仙이나 잡귀신 등이 대신하며 현실에서 실력을 발휘하게 된다.

노자가 활동하던 당시에도 ‘도’라는 것이 이미 성행하고 있었다. 다만 그 도라는 것은 여전히 그러한 귀신이나 천제, 천신, 신선 등이 주재하는 전통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한 채 혼융되어 그 연장선상에 있거나 그로부터 파생한 것으로서 다분히 신비롭고 주관적인 모습의 소위 ‘신선도神仙道’였으며, ‘각자 저마다의 도’였던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노자가 제시한 것이 ‘도덕사상’이다. 노자』는 우주대자연의 천연한 그대로를 (물아일체의 관점에서) 사실적인 시각으로 관찰하고 기술하는 자연과학적 방식으로 도와 덕을 파악한다.

마음의 빔을 지극하게 하고 성정을 고요히 함으로써 노자는 스스로 참된 본성을 닦아 사물의 근본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였고, 그 물아일체의 바탕에서 한 치도 어김이 없는 무한한 섭리로 도도히 운행하는 우주대자연의 어떤 실체를 통찰하였던바, 이것이 곧 ‘도道(의 존재)’이다.≫

 

- 若肖久矣 其細也夫: 만약 (화려하고 번듯한 기존의 유능한 道와) 닮아서 오래되었다면 그것은 (이미 세상의) 여느 자잘한 도일 것이로다. 지금 말하는 나의 도는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도 흔한 자애, 검소, 천연함 같은 것만을 귀중히 여기는바 일반의 화려하고 번듯한 가치를 그대로 공유하고 있는 기존의 도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아유삼보 지이보지 일왈자 이왈검 삼왈불감위천하선

我有三寶 持而保之 一曰慈 二曰儉 三曰不敢爲天下先

내게 세 가지 보물이 있어 지켜 보전해오고 있는데, 하나는 자애로움이고, 둘은 검소함이며, 셋은 감연히 천하의 앞에 서지 않는 것이다.

 

- 三寶: 도의 밝음을 그대로 좇아 참되게 이행할 수 있는 가장 근본이 되는 세 가지 귀중한 것으로 ‘慈(자애)’, ‘儉(검소)’, ‘不敢爲天下先(천연함)’을 가리킨다.

 

- 不敢爲天下先: 직역으로는 ‘감연히 천하의 앞에 서지 않음’이다. 즉, 세상에 앞장서서 이끌며 부추기지 않는 것으로, ‘천연한 그대로의 무위無爲’를 뜻한다.(제73장 勇於敢則殺 勇於不敢則活 참고)

 

- 慈: ‘慈’는 ‘愛’와 그 쓰임에 다소 차이가 있는데, 그러나 소박한 본성에서 비롯하는 뿌리는 서로 다르지 않다. ‘慈’는 긍정하고 배려하며 모든 것을 용납하여 널리 베푼다는 관용과 이타의 의미가 강하고, ‘愛’는 농부가 곡식을 보살피고 아끼듯 내 몸과 이웃을 보살피고 아낀다는 의미로서 ‘색嗇’과 통한다.(慈: 제18,67장)(愛: 제10,13,27,44,72장)

 

 

자고능용 검고능광 불감위천하선고능성기장

慈故能勇 儉故能廣 不敢爲天下先故能成器長

자애로우므로 (백성이) 용기를 낼 수가 있고, 검소하므로 (그 덕이) 널리 미칠 수 있으며, 감연히 천하에 앞장서 나서지 않으므로 (천하라는) 기구를 길게 (평화로운 상태로) 이루어갈 수가 있다.

 

- 慈故能勇: 자애로우므로 (백성이 전쟁에 임하더라도) 용기를 낼 수 있다. 상자연한 덕의 입장에서 본다면 전쟁은 백성의 삶에 관한 최악의 수단이다. 그러나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득이 전쟁을 피할 수가 없어 하게 된다면 그것은 자애로 행하여야한다.

자애란 천지자연의 본성과 같은 것이다. 천지자연의 본성 같은 청정淸靜한 정신과 겸허한 마음으로 기꺼이 백성을 포용하고 배려한다면 백성은 가족과 나라를 위해 어떤 경우에도 좌절함이 없이 떳떳하고 당당하게 참된 용기를 낼 수가 있는 것이다.

 

- 儉故能廣: 검소하므로 (그 덕이) 널리 미칠 수 있다. 임금이 스스로 검소하면 나라의 재물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고, 그로써 조세나 공역 등을 과중하게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임금이 재물이나 양곡을 사사로이 가져서 쌓아두지 않음으로써 신하들 역시 본받아 그것들은 순박한 백성들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것인바 이로써 그 덕의 베풂이 천하에 널리 미치는 것이다.(제81장 聖人不積 旣以爲人 참고)

 

- 不敢爲天下先故能成器長: 감연히 천하에 앞장서 나서지 않으므로 (천하라는) 기구를 오래도록 (평화롭게) 이루어갈 수가 있다.

성인은 천하를 아우름에 있어서 천연한 그대로 무위無爲로 행하되 세상의 앞에 나서서 이끌며 부추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하라는 기구의 조화로운 질서는 길게 이루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의 ‘器’와 ‘神器(제29장)’, ‘國之器(제36장)’, ‘大器(제41장)’의 ‘器’는 모두 의미가 비슷한데, 여기서는 ‘천하라는 국가사회로서 기구’ 혹은 ‘국가권능으로서 기구’를 뜻한다.(器: 제11,28,29,31,36,41,57,67,80장)

 

 

금사자차용 사검차광 사후차선 사의

今舍慈且勇 舍儉且廣 舍後且先 死矣

지금 자애를 버린 채 (백성이) 용감하며, 검소함이 없이(부귀권세와 영예를) 널리 떨치려하고, (몸을) 뒤로함을 버리고 (천하의) 앞에 나서면 죽는다.

 

- 舍後且先: (임금이) 몸을 뒤로하여 스스로를 온전히 보전함으로써 천연한 덕의 속성을 그대로 좇아 무위로 처신할 수가 있는 것이나(제7장 聖人後其身而身先 참고) 그것을 버리고 천하의 앞에 나서서 백성을 부추기며 획일적으로 이끈다면 (결국은 자신이) 죽는다.

 

 

부자이전즉승 이수즉고 천장구지 이자위지

夫慈以戰則勝 以守則固 天將救之 以慈衛之

무릇 (부득이 전쟁에 임하여) 자애로써 전쟁을 한다면 곧 이길 것이고, 자애로써 지킨다면 견고할 것이다. (이는 곧) 하늘이 장차 구원하며 자애로써 방위하는 것이다.

 

- 天將救之 以慈衛之: (이는 곧) 하늘이 장차 구원하며 자애로써 방위하는 것이다. ‘天將求之’는 하늘이 장차 구원한다는 것인데, 이는 하늘이 직접 신묘한 조화를 부리어 구원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기서 ‘하늘’은 ‘천지자연’이며, 이는 곧 우주대자연의 천연한 섭리를 의미한다.

자애란 천지자연의 본성과 같다. 천지자연의 본성 같은 청정淸靜한 정신과 겸허한 마음으로 기꺼이 백성을 포용하고 배려한다면 백성은 가족과 나라를 위해 참되게 용기를 내므로 그러한 전쟁은 반드시 승리한다. 이는 곧 하늘의 섭리이며, 그러한 자애로써 방위한다면 나라는 틀림없이 굳건하다.

 

 

[章注] ‘三寶’는 도의 밝음을 그대로 좇아 참되게 이행할 수 있는 가장 근본이 되는 세 가지 귀중한 것으로 ‘慈(자애)’, ‘儉(검소)’, ‘不敢爲天下先(천연함)’을 가리키는데, 이는 곧 임금으로서 참된 덕의 세 가지 조건이라 말할 수 있다.

 

원문 天下皆謂我道大似不肖는 「하상공장구」에 ‘道’가 빠진 채 天下皆謂我大似不肖로 되어 있으며, ‘老子言 天下皆謂我德大 我則佯愚似不肖<노자가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의 덕이 크지만 나는 어리석은 모습이어서 (지혜와 능력을 내세운 다른 덕과는) 닮지 않은 것 같다.>’라고 주석하여 왕필본의 ‘도’를 ‘덕’으로 풀이한다. 이 구절 이하의 내용도 마찬가지로 덕으로 설명이 이어지는데, 도를 참되게 이행하는 것이 덕이란 의미인 것으로 이해된다.

원문 夫唯大 故似不肖에서 ‘하상공’은 ‘夫自名德大者爲身之害 故佯愚似若不肖 無所分別 無所害截 不賤人而自貴<무릇 스스로 덕이 크다고 이르는 것은 몸에 해로움이 되므로 어리석은 모습이 마치 모자란 듯하다. (그러면서) (만물을) 차별하며 구분하는 바가 없고, (백성을) 단죄하여 내침이 없으며, 사람을 천시하면서 자신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라고 주석하며 어리석은 듯 겸손하게 처신하는 德을 설명하고 있다.

원문 若肖久矣에서는 ‘肖 善 謂辯慧也 若大辯慧之人 身自高貴 行察察之政 所從來久矣<‘초’는 ‘능통함’이며, 지혜를 능변함을 일컫는다. 크게 지혜를 변증하는 사람이 자신을 스스로 고귀하다고 여기며 (세세히) 감찰하는 정치를 시행하여 (그것을) 좇아 온 것이 오래되는 것과 같다.>’라고 주석하여 ‘善’을 ‘능통함’의 뜻으로 쓰고 있다.

한편, 왕필은 이 부분의 원문 若肖久矣 其細也夫에서 ‘久矣其細 猶曰其細久矣 肖則失其所以爲大矣 故曰若肖久矣 其細也夫<‘오래되었구나! 그 자잘함이여’는 ‘그 자잘함이 이미 오래되었다’고 하는 것과 같다. (무엇을) 닮아 있으면 (어떤 것이) 크게 되는 이유를 잃는다. 그러므로 ‘만약 (무엇을) 닮아 오래되었다면 세상의 자잘한 것일 뿐이다’라고 말한다.>’라고 주석하며 현학의 논리로 해석한다.

원문 慈故能勇에서 ‘하상공’은 ‘先以仁慈 故乃勇於忠孝<(임금이) 먼저 어질고 자애롭기 때문에 (백성이) 충효에 용기를 갖게 된다.>’라고 주석한다. 여기서 임금의 ‘仁慈’는 유가적 인식이다.

원문 不敢爲天下先 故能成器長에서는 ‘不敢爲天下首先 成器長 謂得道人也 我能爲道人之長也<감연히 천하의 맨 우두머리로 나서지 않는다. ‘성기장’은 ‘도를 이룬 사람(즉, 도를 체득하여 온전한 국가를 이룬 지도자)’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나는 도인의 수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주석하여 ‘스스로 도를 체득함으로써 (만 백성이 도인이 되고 그) 도인의 수장으로서 참된 군주가 된다.’는 선도의 입장으로 풀이한다.

여기서 ‘하상공’은 ‘成器長’의 ‘器’를 ‘根器’의 뜻으로 사용하여 ‘成器長’을 ‘근기를 온전히 완성한 지도자’로 풀이하고 있다.

원문 死矣에서 ‘하상공’은 ‘所行如此 動入死道<이와 같이 행하는 것은 움직여 사도(죽는 도)로 들게 된다.>’라고 주석하는데, ‘死道’는 선도의 개념이다.

원문 夫慈以戰則勝 以守則固에서는 ‘夫慈仁者 百姓親附 幷心一意 故以戰則勝敵 以守衛則堅固<무릇 (임금이) 자애롭고 어질면 백성이 친근히 따르며 한 뜻으로 마음을 함께 한다. 그렇게 하여 전쟁을 하면 적에게 승리하고, 그렇게 나라를 지키면 견고하다.>’라고 주석하며 ‘慈仁’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노자의 ‘慈’와는 차이가 있다.

원문 天將救之 以慈衛之는 「하상공장구」에 ‘天將救之以善 以慈衛之’로 되어 있고, ‘天將救助善人 必與慈仁之性 使能自營助也<하늘이 참된 사람(임금)을 구하여 돕고자하면 반드시 자애롭고 어진 성품을 부여하여 스스로 헤아려 도울 수 있도록 한다.>’라고 주석하며 전반적으로 선도의 입장에서 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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