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상선上善
상선약수 수선리만물이부쟁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상선(지극히 참됨)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참으로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고 열악한) 곳에 거처하므로 도에 가깝다.
- 上善若水: 상선, 즉 지극히 참됨은 물과 같다. ‘無’에서 ‘有’로 드러난 만물 중에서 그 모습이 도와 가까운 것이 제6장의 ‘곡谷(골짜기)’과 여기의 ‘水(물)’이다. 스스로 나서지 않고 낮은 곳에 처하며 한없이 이어지는 물은 오직 참되게 움직일 뿐 다투지 않는바 도에 가깝다.
고대 금문金文에서 ‘善’은 양을 제물로 하여 하늘에 맹세하며 참되게 고한다는 의미의 글자로서 ‘(하늘에) 참되게 아뢰다.’는 뜻을 가진다. 이후 ‘善’은 인품과 학식을 갖춘 착한 사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면서 ‘유능한, 능통한, ~잘’ 등의 의미로 변하게 되고, 최근에는 ‘어리석은 착함’의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무능한’ 뉘앙스를 띠기도 한다.
‘善’은 본래 자기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나 행실, 성정性情 등을 (하늘에 맹세코) 꾸밈없는 그대로 드러내는 참됨이다. ‘眞’은 사물의 실질이나 대상이 되는 사물과 관련한 사람의 천연한 참됨이며, 지극한 것으로는 어린아이의 천진天眞함이 있다.(제21장 ‘其精甚眞’ 참고). ‘忠’은 (상대방에 대하여) 마음으로부터 정성을 다하는 참됨이다.
(善: 제2,8,15,20,27,30,41,49,50,54,58,62,65,66,68,73,79,81장)
- 處衆人之所惡: 뭇사람들이 꺼려하며 싫어하는 (낮고 열악한) 곳에 처신한다.
거선지 심선연 여선인 언선신 정선치 사선능 동선시 부유부쟁 고무우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政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그러므로) 참되게 지냄이 땅과 같고, 마음이 참됨은 깊은 연못과 같으며, 사람과 함께함이 참되어 어질고, 말함이 참되어 미덥다. 참되게 정사를 펴므로 (덕으로) 다스려지고, 참되게 일을 받들어 능통하며, 참되게 움직여 때에 맞고, 오로지 (사사로움을) 다투지 않으므로 원망이 없다.
- 與善仁: (물에 가까운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함께함이 참되어 어질다. 여기서 특히 ‘사람과 더불어’라는 ‘與’의 자의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무릇 노자에 대한 중대한 오해가 바로 노자가 유가의 ‘仁’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도는 천지만물초목을 어느 하나 특별하게 배려하거나 인자하게 대하지 않는다. 만약 어느 한 부분을 특별히 배려한다면 천지간의 절묘한 조화는 금방 균형을 잃고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의 일상에 필요한 생활의 지혜나 개인 간에 우러나오는 참된 마음의 仁ㆍ義는 인간사회의 돌아가는 윤리로서 행복한 일상에 여전히 소중한 가치라는 것이 또한 노자의 입장이다.(仁: 제5,8,18,19,38장)
도와 덕은 우주를 운행하는 근본원리이고 인仁ㆍ의義ㆍ예禮는 인간사회의 굴러가는 상대적 개념이다. 도와 덕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행해지는 상대적 가치인 仁ㆍ義와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어짊과 배려는 아무리 그것이 지극하더라도 우주대자연의 심원한 이치로서의 도와 덕에 비하면 너무나 미진微塵하고 임의적이며 주관적인 것이다. 당연히 도를 좇아 덕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성군은 不仁할 수밖에 없다.(제5장 ‘不仁’ 및 제18장 ‘大道’ 참고)
여기의 ‘與善仁(사람을 대함이 참되어 어질다)’은 백성을 대하는 성군의 본분으로서 입장이 아닌 개인과 개인 간의 참다운 인간관계로서 ‘仁(어짊)’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즉, 무위無爲, 무욕無慾, 불인不仁해야 하는 성군도 개인과의 사적인 관계에서는 인으로 어질게 대하여야한다는 것이다.
- 動善時: 그 움직임이 참되어 때에 적절하다. 이는 ‘시중時中’과도 의미가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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