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1장~10장)

노자 도덕경 제5장

나무와 까치 2013. 4. 22. 07:52

 

제5장. 불인不仁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천지는 어질지 않아서 만물을 추구처럼 두고, 성인은 불인하여 백성을 추구처럼 둔다.

 

- 天地不仁: 천지는 어질지 않다. 마음의 빔을 지극하게 하고 성정을 고요히 함으로써 노자는 스스로 참된 본성을 닦아 사물의 근본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였고, 그 물아일체의 바탕에서 한 치도 어김이 없는 무한한 섭리로 도도히 운행하는 우주대자연의 어떤 실체를 통찰하였던바, 이것이 곧 ‘도道(의 존재)’이다.(제14장 및 제16장 靜ㆍ命ㆍ常ㆍ明, 제25장 道法自然ㆍ獨立不改 참고)

도는 만물의 각자 살아가는 삶을 특별히 차등하지 않는데, 이로써 만물의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는 지극히 평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당연히 도를 본받는 천지와 성인 또한 무위無爲ㆍ무욕無慾ㆍ불인不仁이 그 본분일 수밖에 없다.

덕德이란 그러한 도의 밝음을 인간이 그대로 좇아 참되게 이행하는 것이다. 인간이 직접 도를 행할 수는 없는바 도의 밝음을 사람이 그대로 좇아 행하는 것을 참된 덕(上德)이라 하며, 상덕이야말로 천하를 아우르는 성군의 본분이다. 만물이 나서 늙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모두 德의 운행을 따른다. 성군은 그러한 섭리를 참되게 따를 뿐이며, 그것을 일러 현덕이라 한다.

도와 덕은 우주를 운행하는 근본원리이고 인仁ㆍ의義ㆍ예禮는 인간사회의 굴러가는 이치이다. 그러므로 도와 덕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행해지는 상대적 가치인 仁ㆍ義와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어짊과 배려는 아무리 그것이 지극하더라도 우주대자연의 심원한 이치로서의 도와 덕에 비하면 너무나 미진微塵하고 상대적인 것이므로 당연히 도를 좇아 덕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성군은 不仁할 수밖에 없다. ‘不仁’과 ‘無爲’는 본질적으로 서로 통한다.

도는 천지만물초목을 어느 하나 특별하게 배려하거나 인자하게 대하지 않는다. 만약 어느 한 부분을 특별히 배려한다면 천지간의 절묘한 조화는 금방 균형을 잃고 무너질 것이다. 다만, 백성들의 일상에 필요한 ‘생활의 지혜’나 개인 간에 우러나오는 참된 마음의 仁義는 인간사회의 돌아가는 윤리이며, 행복한 일상에 여전히 소중한 가치라는 것 또한 노자의 입장이다.(제8장 ‘與善仁’ 참고)

 

- 芻狗: ‘추구’란 옛날에 제사를 지낼 때 별 의미가 없이 의례적으로 제사상에 올려두던 짚으로 대충 묶어 만든 개의 모형을 말하는데, 제사가 끝나면 아무렇게나 개의치 않고 버려졌다.

 

 

천지지간 기유탁약호 허이불굴 동이유출 다언삭궁 불여수중

天地之間 其猶槖籥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多言數窮 不如守中

하늘과 땅 사이는 그것이 풀무나 피리와 같도다. 비었으되 쭈그러짐이 없고 움직이면 더욱더 많이 나온다. 말이 많으면 (풀무나 피리처럼 말이 더욱 많아져) 궁색함이 잦으니 심중을 지키느니만 못하다.

 

- 多言數窮: 말이 많으면 이궁理窮이 잦다. 풀무나 피리가 불어댈수록 바람이 세어지듯이 말이 많으면 분분한 의견으로 오히려 말은 더 많아지고 그때마다 일은 더욱 궁색하게 막히는 것이다.

말이란 아무리 참되게 하더라도 일단 입 밖으로 나가게 되면 그것은 듣는 사람의 방식이나 생활습관, 가치관, 심신의 처한 환경 등에 따라 상대방의 주관적 입장에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不如守中: 가운데를 지키느니만 못하다. 여기서 ‘中’은 ‘심중心中’을 뜻한다. ‘心中’은 ‘마음의 한가운데’이며, ‘不如守中’은 ‘뜻을 지닌 채로 심중을 지키느니만 못함’으로 새길 수 있다. 여기서 ‘中’을 ‘맑고 순수한 정신精神’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수도 있으나 문맥상 ‘심중’으로 해석한다.

<참고: 『장자』 ‘인간세’편(제2-5절)에 ‘託不得已以養中(정신을 길러 모든 것을 부득이함에 맡겨두다)’이라 하여 ‘양중養中’의 용례가 있는데, 여기의 ‘中’ 역시 ‘心中’을 의미한다. ‘심중’이라 하면 ‘마음의 한가운데’이며, 곧 마음 중의 마음을 뜻한다. 마음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은 천연한 그대로의 맑고 순수한 마음이며, 이는 곧 ‘精神’을 일컫는다.

또한, 제72장 원문 ‘無狎其所居’에 대한 「하상공장구」의 풀이에 ‘謂人心藏神 常當安柔 不當急狹也(사람의 심장에 간직된 신은 늘 마땅히 안정되고 부드러워야하며, 조급하고 편협함은 온당치 않음을 일컫는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오늘날 한의학이나 한의학의 교과서라 하는 『동의보감(허준)』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정精이나 기氣, 신神, 정기精氣, 정신精神 같은 용어는 당시에도 일상화된 생활용어인 것이다.>

 

 

[章注] 원문 天地之間에서 ‘하상공’은 天地之間空虛 和氣流行 故萬物自生 人能除情慾 却滋味 淸五臟 則神明居<천지사이는 텅 비어있어 조화로운 기운이 흘러 다니므로 만물이 스스로 생겨난다. 사람이 사사로운 정과 욕구를 없애고 넘치는 진미를 물리어 오장을 깨끗이 한다면 신명이 머무른다.>라고 주석한다.

한편, 원문 槖籥에 대하여 왕필은 ‘탁약’을 풀무와 피리로 해석하고, ‘하상공’은 피리 같은 악기로 풀이한다. 여기서 ‘탁약’이 풀무가 되든지 피리로 되든지 그것이 주제를 표현하여 전달하는 데에는 그리 문제될 게 없는바 소모적 논쟁은 뒤로하고 ‘풀무’로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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