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위무위爲無爲
불상현 사민부쟁 불귀난득지화 사민불위도 불현가욕 사민심불란
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임금이) 현명함을 높이 받들지 아니하여 백성들이 다투지 않게 하고, 얻기 어려운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서 백성들로 하여금 도적질을 하지 않게 한다. (부귀공명의) 욕망이 가당함을 내보이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의 마음이 어지럽지 않게 한다.
- 不貴難得之貨使民不爲盜: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음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도적질을 하지 않게 한다. 여기서 ‘얻기 어려운 재화’는 일상의 생활용품이 아닌 진귀한 보물이나 문채비단, 이색적인 외래품 등의 사치품을 말한다. 사치품을 귀하게 여기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이 진귀한 물건을 얻기 위해 다투지 않고 일상의 용품을 소중히 생각하며 생업에 충실하게 되는 것이다.(제64장 不貴難得之貨 및 제12장 ‘難得之貨’ 참고)
여기서 ‘民’은 ‘백성’으로 새길 수 있다. 고대 금문에 ‘民’은 시력을 빼앗긴 사람을 표현한 모양의 글자인데, 정복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 씨족과 종속관계에 있는 ‘이족의 사람’ 곧 피정복 인을 뜻하는 글자이다. 이들은 여러 변방의 다양한 백성百姓으로서 처음엔 ‘人’과 종속관계의 하등신분이었다가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씨족적 질서가 대중화되면서 점차 평민화한 것으로 보인다.(民: 제3,10,19,32,57,58,64,65,66,72,74,75,80장)
한편, 상商(은殷의 정식명칭)나라 때의 갑골문에 ‘人’은 사람의 옆모습을 형상한 것이다. ‘人’은 본래 씨족의 공동체를 함께 구성하는 집단 내부의 사람인데, 이후 집단의 세력이 커지고 규모가 조직화되면서 民과 구별되는 제후나 귀족 등을 의미하게 된다.(제57장 ‘人多伎巧 奇物滋起’에 대한 「하상공장구」 ‘人 謂人君百里諸侯也’ 참고)
- 不見可欲: ‘불현가욕’으로 읽으며, ‘(부귀공명에 대한) 욕망이 가당함을 (스스로) 내보이지 않는다.’가 된다. 임금이 공명功名을 귀중히 여기면 백성은 서로 앞 다투어 공명을 얻고자 나서게 된다.
사람들이 부귀영화의 권력을 좇음으로써 그 성정은 거칠어지고 마음이 영악해져 결국 전쟁 등의 극단적인 일에 앞장서게 되므로 이는 백성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된다.(제36장 ‘國之利器 不可以示人’ 참조)
‘欲’은 자의가 ‘하고자할 욕’으로 ‘욕구欲求’ 또는 ‘욕망欲望’으로 새길 수 있으며, 여기서는 ‘부귀권세와 명예에 대한 욕망’이 된다. 『노자』에서 ‘欲’은 대부분 ‘부귀권세나 명예에 대한 욕구’ 혹은 ‘사사로운 욕망’을 의미한다. ‘무욕無欲’은 ‘사사로운 욕망이 없음’이다.(無欲: 제1,34,57장)(不欲: 제39,64장)
시이성인지치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
그래서 성인의 다스림은 (스스로) 마음을 비우고 그 배를 건실하게 하며, (부귀공명의) 의지를 약하게 하고 뼈대를 강하게 한다.
- 是以聖人: 『노자』에서 ‘聖人’은 주로 요순 그 이전의 참된 왕들을 가리키고 있으나, 상당부분은 대화상대자인 왕을 예우하여 과거의 성인을 지칭하듯이 3인칭으로 칭하는 어법이다.
-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 (스스로 사사로움이 없도록) 마음을 비우고 배(내장)를 튼실하게 하며, 부귀공명에 대한 의지를 약하게 하되 (심신의 근간인) 뼈대를 강하게 한다. 뼈대를 강하게 함으로써 얻어지는 건강한 심신과 씩씩한 기개는 스스로의 수양과 즐겁고 행복한 일상에 있어서 필수적 요건이다.
여기서 ‘志’는 ‘의지意志’이다. ‘의지’란 자기가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며,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나의 욕구’가 작용한다. 『노자』에서 ‘意志’란 대부분 부귀권세나 명예에 대한 의지이다.
‘그 의지를 약하게 한다’는 것은 부귀공명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버리고 검소하며 겸손한 본래의 심신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로써 천연한 그대로의 본성을 닦아 사물의 근본을 직시하며 물아일체의 입장에서 ‘도의 밝음’에 다가갈 수가 있는 것이다(志: 제3,31,33장).]
상사민무지무욕 사부지자불감위야 위무위즉무불치
常使民無知無欲 使夫智者不敢爲也 爲無爲則無不治
항상 백성들로 하여금 (머리만의) 앎과 (사사로운) 욕구가 없도록 한다. 무릇 사람들로 하여금 감연히 지혜를 행하지 않도록 한다. (그렇게) 무위로 위한다면 곧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
- 常使民無知無欲: 백성들로 하여금 (머리만의) 지식과 (부귀공명 등의 사사로운) 욕망을 갖지 않게 함으로써 백성이 서로 다투지 않고 생업에 충실하게 된다.
- 使夫智者不敢爲也: 무릇 사람들(곧, 귀족이나 관료)로 하여금 ‘지혜’라는 것을 감연히 행하지 않도록 한다. 여기서 ‘智’는 ‘지혜智慧’이며, 순박하고 천연한 도의 밝음이 아닌 문리文理적 사변과 형이상학적 추론 등 상대적 분별에 의한 ‘지혜’이다.(智: 제3,19,27,33,65장)(제5장 ‘不仁’ 및 제8장 ‘與善仁’ 참조)
노자가 활동하던 춘추시대 말기는 가히 말세라 할 정도로 천제(천신)와 천자(왕)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귀족정치가 붕괴되면서 바야흐로 혹세무민의 제자학파나 미신이 급속히 확산하였다. 그런 한편으로, 특권층에 진입하는 문호가 일반에게도 개방되고 이에 대한 열망이 첨예하면서 지금까지는 귀족의 전유물이던 학문이 급속히 대중화하는 때이기도 했다.
학문學文과 지혜로 인해 천하는 사악함이 넘치고, 이에 임금은 조세와 법령으로 교묘하게 백성을 감찰하는바 인간은 누구나 근본적으로 차등이 없음에도 학문學文과 지혜를 숭상함으로 인하여 선악과 귀천으로 차별되는 것이다. 그럴수록 세상은 더욱 어지럽고 위태로워진다. 임금은 당연히 지혜를 숭상하여 떠받들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제10장 愛民治國 能無知乎, 제18장 大道廢 有仁義 慧知出 有大僞, 제19장 絶聖棄智, 제20장 絶學無憂, 제52,56장 塞其兌 閉其門 참고)
- 夫: ‘夫’는 ‘지아비 부, 배필 부, 벼슬이름 부, 저(其) 부, 어조사 부’ 등의 자의가 있다. 대체로 불특정의 ‘세상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주로 지도층의 귀족이나 고위관리를 의미하고 있다.
- 者: ‘者’는 옥편에 ‘어조사 자, 놈 자, 것 자, 이 자’ 등으로 나와 있으며, 『노자』에서는 주로 ‘~은(는)’, ‘~면’, ‘~것’ 등으로 쓰인다. ‘者’는 본래 사람을 의미하는 글자가 아니라 ‘어떠한 것’을 뜻하는 글자이다.
어떤 형태로든지 『노자』에서 ‘者’가 사람을 의미하는 예는 제74장 이외는 없으며, 제74장에서도 사람의 의미로 쓰이긴 하였으나 비인격화한 상황으로 표현하였다.
(者: 제1,3,7,15,22,23,24,27,29,30,31,33,61,68,70,74장)(제27,33장 人ㆍ者 및 제68장 士ㆍ者는 한 문장에서 같이 사용됨)(제1,61,73장 兩者 및 제60장 兩 참조)
- 爲無爲則無不治: (그렇게) 무위로 위한다면 곧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 이 구절은 無爲로 爲하며 순리로 천하를 다스리는 정치이전의 정치를 말하고 있다.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 개인의 사사로움을 온전히 내려놓음으로써 천연한 본성으로 스스로를 경계할 수가 있고, 그러한 물아일체의 입장에서 ‘도의 밝음’에 다가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로써 왕은 모든 것을 긍정하여 만물을 포용하며 말없이 모범을 보이어 천하를 (자연의 섭리처럼) 무위로 아우르게 되는바, 바야흐로 세상은 조화롭게 안정된다는 것이다.
이로써 왕은 백성과 동화同和하여 마음껏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으며, 백성은 부귀권세를 모른 채 소박한 이웃과 더불어 생업에 전력함으로써 마음껏 자유롭게 참된 일상을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소박하나마 맛나게 먹고 맵시 있게 입으며 즐겁게 천수를 누리다가 다시 道로 돌아가는 그것이 ‘도덕사상’이다.(제37,48장 ‘無爲而無不爲’ 참조)
- 爲無爲: ‘爲’는 ‘위함’이다. ‘爲’는 남을 위한다는 것이며, 이는 결국 남을 위해 줌으로써 그것이 재물이나 명예, 충성심 등으로 나에게 되돌아올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그 바탕에 작용하는 ‘人爲’가 된다. 그러나 성인은 상자연한 도의 밝음을 본받아 천연한 그대로 은미하게 드러남이 없이 만물을 無爲로 위한다.
‘無爲’는 ‘천연한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다. (왕이) 스스로 자신을 철저히 경계함으로써 天然한 본성으로 만물을 긍정하고 용납하되, (백성에게는) 말없이 모범이 되며 일부러 위함이 없음을 말한다. 또, 스스로 공명과 재물을 쌓아두지 않음으로써 이미 백성에게 그것을 나누어주는 것이 되고, 신하들은 그것을 본받음으로써 결국 백성을 위하는 것인바 곧 無爲로 위하는 것이 된다.
‘爲無爲’는 ‘천연한 자연스러움으로 위함’이며, 성인의 위함이다. 성인은 자연의 천연함으로 은미하게 無爲로 爲하므로 세상은 서로를 부추기거나 사사로이 명리名利를 좇아 다투지 않는다.(無爲: 제2,3,43,57,63장)(爲無爲: 제3,63장)]
[章注] 제3장에서는 최상의 정치로서 정치 이전의 정치인 ‘무위의 다스림’을 강조한다.
본장의 원문 是以聖人之治에 대하여 「하상공장구(이하 ‘하상공’)」은 ‘說聖人治國與治身<성인이 나라를 다스리고 자신을 다스림에 대하여 말한다.>’이라고 주석하며,
원문 實其腹에 대하여 ‘懷道抱一 守五神也<도를 품고 一(원기)을 안아 오신을 지킨다.>라고 주석하고, 원문 强其骨은 愛精重施 髓滿骨堅也<정을 아껴 신중히 쓰면 골수가 차고 뼈가 단단해진다.>’라고 주석한다.
여기서 ‘五神’은 사람의 오장(간장, 폐장, 심장, 신장, 비장)의 신(정신)으로 ‘오장에 존재하는 고유한 생명력(精氣)’을 말하며, 이는 『황제내경黃帝內徑』이나 도교서적에서 볼 수 있는 개념이다.
이와 같은 ‘하상공’의 해석은 성군의 치세를 위한 섭생으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전체 문맥으로 보면 본장을 仙道의 입장에서 풀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원문 爲無爲는 ‘不造作 動因循<(인위로) 조작하지 않고 ‘순환의 섭리’에 기인하여 움직인다.>’이라고 주석한다. 여기서 循은 ‘크게 순환하는 대자연의 섭리’를 말하며, ‘인순因循’은 황로학의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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