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장. 도법道法
유물혼성 선천지생 적혜료혜 독립불개 주행이불태 가이위천하모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뒤섞여 이루어진 (어떠한) 물질이 있는데 천지보다 먼저 생겼다. 고요하고 그윽한 상태로 독립하여 있으며 (스스로 운행함에) 다시 고침이 없다. (그렇게) 두루 행하나 위태롭지 않으니 그로써 천하의 어미가 된다고 할 수 있다.
- 寂兮寥兮 獨立不改: 고요하고 그윽하게 (스스로) 독립하여 (유기적 상태로) 있으며 (스스로의 운행을) 다시 고침이 없다. 이는 상자연常自然하며 고요하고 그윽한 상태로 독립하여 존재하는 ‘도의 실질’을 말하고 있다.
도는 이 세상 깊숙이에서 늘 끊임없이 유기적으로 작용하고 있는바, 세상 어떤 일이든 하지 못함이 없고 또 하지 않음이 없으나 그 작용은 완전하여 다시 고침이 없다.
≪참고: 보고 있으되 보지 못하고 듣고 있으되 들을 수 없으며 쥐고 있으되 가질 수 없는 어떤 것이 (함께) 섞이어 하나로 되어있는데, 하늘과 땅이 있기 이전이다.
그것은 한없이 크고 심원하여 밝고 어두운 형체로 드러나는 어떤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이어져 (어떻게 구별하여) 이름을 이를 수가 없다. 결국, (그것은) 다시 ‘無物(물질이 없음)’로 돌아간다. 이를 정상情狀 없는 정상이며 물질이 없는 형상形象이라 하는데, 있는 듯 없는 듯 홀연하고 경이롭다.
앞에서 맞아 그 머리를 보지 못하고, 좇아도 그 후미를 보지 못하는바 그 실체를 온전히 인식할 수는 없으나 실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반의 지각으로는 확인할 수 없으므로 이를 ‘無(없음)’라고 한다.
결국, ‘한데 섞이어 하나로 이루어진 그것’이 ‘無’이며, 그 ‘無’의 존재가 바로 ‘도의 근본바탕(도기道紀)’인 것이다.(제14장)≫
- 周行而不殆: 도는 미동도 않고 가만있는 것이 아니라 늘 유기적으로 작용하며 세상 모든 것을 두루 운행하나 그 행위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어 완전하므로 위태로움이 전혀 없다.
오부지기명 자지왈도 강위지명왈대 대왈서 서왈원 원왈반 고도대 천대 지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故道大 天大 地
대 왕역대
大 王亦大
나는 그 (실질을 이르는) 이름을 알지 못한다. (다만) 문자로는 道라 하고, 굳이 (그 실상을) 일러서 말한다면 대大(큼)라 한다.
큼(大)은 운행하여 감을 말한다. 운행하여 감은 멀리 간다는 것이고, 멀리 간다는 것은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는 大이고, (도를 그대로 따르는) 하늘이 大이고 땅이 大이며 왕 역시 大이다.
-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나는 그 (실질을 일컫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데, (다만) 문자로는 ‘道’라하고 굳이 (그 실상을) 일러서 말한다면 ‘大(큼)’라 한다. 즉, 여기서 ‘道’는 사회일반의 정형화된 문자로서 표현이며, ‘大’는 우주대자연의 심원한 실상을 일컫는다.
고대 금문金文에 보이는 ‘道’는 길에 있는 사악한 영靈을 깨끗이 하여 없애고 나아가는 계행啓行(열어나감, 곧 선도先導)의 의례를 뜻하는 문자로서 그로부터 ‘사람이 가는 참된 (삶의) 길’을 의미한다.
-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故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큼(大)’은 ‘운행하여 감’을 말한다. ‘운행하여 감(逝)’은 멀리 간다는 것(遠)을 말하며, ‘멀리 간다는 것’은 되돌아옴(反)을 말한다. 즉, ‘되돌아온다는 것’은 한없이 멀리 가서 끊고 넘어가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가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는 ‘큼(大)’이다...
여기서 ‘大(거대함)’는 천문天文 등 우주대자연의 운행(逝)을 말하며, 이는 곧 ‘운행하여 감이 크다’는 것이다.(『논어』 ‘옹야雍也’편 제6-25장에도 ‘君子可逝也<군자는 스스로 (도의 밝은 길을) 갈 수는 있으되...>’ 및 ‘자한子罕’편 제9-16장 ‘逝者如斯夫<(세상의 큰 이치가 운행하여) 가는 것이 이와 같도다!>’라 하여 유사한 ‘逝’의 용례가 보인다.)
이 구절은 우주대자연의 도(즉, 대도大道)가 인간의 도(즉, 상덕上德)로 이어지는 이치를 설명하고 있다.
≪참고: 마음의 빔을 지극하게 하고 성정을 고요히 함으로써 노자는 스스로 참된 본성을 닦아 사물의 근본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였고, 그 물아일체의 바탕에서 한 치도 어김이 없는 무한한 섭리로 도도히 운행하는 우주대자연의 어떤 실체를 통찰하였던바, 이것이 곧 ‘도道(의 존재)’이다.(제14장 및 제16장 靜ㆍ命ㆍ常ㆍ明, 제25장 道法自然ㆍ獨立不改 참고)
개인의 사사로움을 온전히 내려놓음으로써 천연한 본성으로 스스로를 경계할 수가 있고, 그러한 물아일체의 입장에서 ‘도의 밝음’에 다가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로써 왕은 모든 것을 긍정하여 만물을 포용하며 말없이 모범을 보이어 천하를 (자연의 섭리처럼) 무위로 아우르게 되는바, 바야흐로 세상은 하늘의 질서처럼 조화롭게 안정되는 것이다.
덕德이란 그러한 도의 밝음을 인간(왕)이 그대로 좇아 참되게 이행하는 것이다. 인간이 직접 도를 행할 수는 없는바 도의 밝음을 사람이 그대로 좇아 행하는 것을 참된 덕(上德)이라 하며, 상덕이야말로 천하를 아우르는 성군의 본분이다. 만물이 나서 늙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모두 德의 운행을 따른다. 성군은 그러한 섭리를 참되게 따를 뿐이며, 이를 일러 현덕이라 한다.(제10,51장 是謂玄德)
그로써 왕은 천하를 자연의 섭리처럼 조화롭게 다스리며 백성과 더불어 화광동진和光同塵하여 자유롭게 살아가고, 백성은 모두가 부귀권세를 모른 채 이웃을 배려하며 순박한 본성으로 생업에 전력함으로써 소박하나마 맛나게 먹고 맵시 있게 입으며 마음껏 자유롭게 천수를 누리다가 다시 道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도덕사상’이다.≫
- 遠曰反: ‘멀리 간다는 것’은 되돌아옴(反)을 말한다. 즉, ‘되돌아온다는 것’은 한없이 멀리 가서 끊고 넘어가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멀리가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밤낮, 사계절, 천문의 움직임 등 대자연의 어김없이 진행ㆍ순환하는 이치를 말한다.(제40장 反者道之動 참고)(反: 제25,40,65,78장)
- 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도를 좇아 천하 만물을 운영하는 천지자연처럼 뭇사람의 삶을 맡아 책임지는 왕 역시 그 본분이 천지자연의 그것과 같아서 크게 운영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우주대자연의 섭리로서 ‘도’가 ‘사람의 도’로 이어지는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하늘의 도가 사람의 도, 곧 (왕의) 참된 덕(상덕上德)으로 연결되는 이치이다.
- 吾: 여기서 ‘吾’는 대화상대인 왕을 존중하여 나를 삼가 칭하는 말이다. (吾: 4,13,16,21,25,29,37,42,43,49,54,57,69,70,74장)
역중유사대이왕거기일언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
域中有四大而王居其一焉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세상에는 4大가 있어서 왕이 그 하나에 있는데, (이는)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고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자연을 따른다는 것이다.
- 域: ‘域’은 ‘지경 역’ 혹은 ‘나라 역’으로 ‘경역境域’을 말하며, ‘천하’ 혹은 ‘세상’으로 새길 수 있다. ‘국國’의 고자는 ‘역或’이다.
- 域中有四大而王居其一焉 人法地..道法自然: 세상에는 크게 행하는 네 가지가 있어서 왕이 그 하나에 있다는 것은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고.. 도는 자연을 따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왕’은 땅을 따르는 ‘사람’의 대표이며, ‘法’은 ‘법칙法則’ 혹은 ‘법식法式’, ‘모범’ 등의 뜻으로 ‘법칙으로 따른다.’로 새길 수 있다. 또한, ‘自然’은 우주대자연의 ‘자연계’를 말하며, ‘道法自然’은 ‘도는 우주대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따른다.’는 정도로 새길 수 있다.
여기서 ‘自然’을 ‘스스로 그러함’으로도 풀이할 수도 있으나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으로 이어지는 흐름으로 본다면 ‘自然’은 人ㆍ地ㆍ天ㆍ道와 같이 어떤 구체적인 대상을 일컫는 명사인바 ‘우주대자연 그 자체’로 풀이하는 것이 적절한 해석이다.
노자가 굳이 ‘하늘의 도(제9장 天之道)’나 ‘큰 도(제18장 大道)’를 소위 ‘자잘한 도(제1장, 제67장)’와 구분하는 의미도 『노자』의 도가 이처럼 ‘우주대자연의 섭리로서 큰 도’라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다.
[章注] 제25장은 우주대자연의 섭리로서의 도가 사람의 도로, 즉 (왕의) 참된 덕(상덕上德)으로 연결되는 이치로서 완결판이다. ‘사람의 도’란 결국 ‘참된 덕(上德)’을 의미한다.
[道法自然(도는 우주대자연을 그대로 따른다)]
뒤섞여 이루어진 (어떠한) 물질이 있는데 천지보다 먼저 생겼다. 고요하고 그윽한 상태로 독립하여 있으며 (스스로 운행함에) 다시 고침이 없다. (그렇게 이 세상 모든 일을) 두루 행하나 위태롭지 않으니 그로써 천하의 어미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 (실질을 이르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데, (다만) 문자로는 道라 하고, 굳이 (그 실상을) 일러서 말한다면 대大(큼)라 한다. ‘大(큼)’는 ‘운행하여 감’을 말한다. ‘운행하여 감’은 멀리 간다는 것이고, ‘멀리 간다는 것’은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는 大이고, (도를 그대로 따르는) 하늘이 大이고 땅이 大이며 왕 역시 大이다.
세상에는 4大가 있어서 왕이 그 하나에 있는데, (이는) 사람(왕)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고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우주대자연을 따른다는 것이다.
원문 周行而不殆에서 ‘하상공’은 ‘道通行天地 無所不入 在陽不焦 託蔭不腐 無不由穿 而不危怠也<도는 천지를 두루 다녀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태양 속에 있어도 타지 않으며, 그늘진 곳에 있어도 썩지 않는다. 뚫고 지나지 못함이 없지만 위태롭지 않다.>’라고 주석하고,
원문 可以爲天下母에서는 ‘道育養萬物精氣 如母之養子<도가 만물의 정기를 기름은 어미가 자식을 양육함과 같다.>’라고 주석하며,
원문 逝曰遠은 ‘言遠者 窮於無窮 布氣天地 無所不通也<멀다는 것은 끝없는 곳까지 다 이르고 천지에 기를 펼쳐서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말이다.>’라고 하며 선도의 입장을 보인다.
또, ‘하상공’은 원문 遠曰反에서 ‘言其遠不越絶 乃復反在人身<그 멂은 단절하여 넘어가버리지 않고 곧 다시 되돌아와 사람의 몸에 있게 된다는 말이다.>’이라 주석하여 ‘몸은 곧 하늘과 하나로 통한다.’는 선도의 관점을 보인다.
원문 王亦大에서는 ‘王大者 無所不制<왕이 크다는 것은 제어하지 못함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해석하여 전제군주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황로학의 입장을 보인다.
원문 天法道는 ‘道法淸靜不言 陰行精氣 萬物自然生長<도는 맑고 고요하며 말이 없음을 따른다. 가만히 정기를 운행하므로 만물이 스스로 그러하게 나고 자란다.>’이라 주석하며 선도의 입장에서 풀이한다.
한편, 왕필은 원문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를 두고 ‘是以篇云 字之曰道 謂之曰玄 而不名也<이렇게 『노자』에서 말하기를 글자로는 도라 하고, 일컬어서는 현이라 하나 이름 붙여 이를 수 없다.>’라고 ‘노자지략’에서 설명하는데, ‘大’를 ‘玄’으로 바꾸어 풀이함으로써 이를 현학의 기반으로 하고 있다.(제1장에서는 ‘無’를 ‘玄’의 의미로 풀이한다)
본장 전체를 ‘하상공’은 선도의 입장에서 해석하며, 왕필은 전체를 현학의 논리로 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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